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 우종학 교수 인터뷰

최초입력 2017-12-06 15:05

최종수정 2017-12-06 15:07


 

 
올가을 한동대 안팎은 창조과학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도화선이었다. 박 전 후보자가 “지구의 나이는 신앙적 나이와 과학적 나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지구의 나이’를 둘러싼 논란이 촉발됐다. 창조과학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증폭됐다. 결국, 박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귀결됐으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동대와 창조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은 한국창조과학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교내 창조과학연구소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창조과학자로 알려진 이들을 초빙하여 특강을 주최했다. 2013년에는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가 한동대에서 이틀간 열리기도 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는 ‘지구의 나이’ 논란 이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창조과학에 날 선 비판을 이어왔다. 동시에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쪽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우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창조과학 논쟁과 한동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0월 28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 직업은 과학자, 정체성은 그리스도인
 
 
Q 최근 한국 사회가 창조과학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내 직업은 과학자이고,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입장에서 박성진 전 후보자를 보면 상당히 씁쓸하다. 일단 과학자로서 볼 때, *지구 6,000년 설은 너무나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박 전 후보자가 지구 6,000년 설을 주장하는 밑바탕엔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Q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첫 번째는 성서신학적인 비판이다. 성경은 수천 년 전에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권에서 쓰인 책이다. 그래서 성경책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없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이 대기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해석이 들어가야 한다. 성경의 목적과 대상, 그리고 그 대상이 갖고 있었던 문화적인 양식이나 상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건 성서신학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거다.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과학 교과서처럼 믿고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성서신학자들이 비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과학의 **젊은 지구론은 성서신학자들에게 상당히 비판을 받는다.
 
두 번째는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고, 근본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는 정신은 좋다. 문제는 너무 극단으로 간 거다. 본인들이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아니면 다 틀렸다’고 하는 굉장히 경직된 태도다. 독선은 용납하기 어렵다.
 
 
성경은 창조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Q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처럼 읽는 것 같다.
 
성경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이 들어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과정을 신학적 메시지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과학적 언어로 읽으면 절대 안 된다. 과학적 언어로 읽으면 문자적 표현 안에 하나님을 가두게 된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근본을 지킨다고 하면서 거꾸로 성경 텍스트를 약화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보겠다는 접근 자체가 신학적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Q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과 성경은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이 진화론과 반대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경이 진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을 기술하지 않는다. 성경은 창조의 방법에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 비유적인 표현들을 포함하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조의 역사를 담은 거다. 그 표현들을 구체적인 과학적 기술이라고 읽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성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방법을 알려주려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경에 안 나와 있으니까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했을 수는 없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다.
 
 

 
 
창조과학자들에게 제대로 된 비판 받아본 적 없다
 
 
Q 일각에서는 ‘성경을 부정한다’며 교수님을 비판한다.
 
인격 모독과 신앙에 대한 정죄 말고,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은 파이값도 못 맞힌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쓴 책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에서 무신론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모르는 거냐. 성경은 수학책도 아니고, 파이값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이런 비판은 말도 안 된다’라고 썼다. 그런데 창조과학자가 이를 두고 내가 ‘성경은 파이값도 못 맞힌다’고 말한 것처럼 썼다. 그리고 ‘우종학 교수는 성경을 상대화시키고 성경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건 글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그런 거다. 읽다가 오해해서 그랬든, 의도적으로 했든 이건 비판이 아니다. 인신공격이다. 창조과학 신봉자들이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닌다. 주기적으로 검색하는데 대부분 내용 파악을 못 하거나 왜곡하는 이야기들이다. 진화적 창조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비판하면 좋겠다.
 
 
창조과학은 한동대가 벗어나야 할 우물
 
 
Q 한동대에 강연하러 오실 생각은 없는가.
 
2015년에 총학생회에서 초청한 적이 있었다. 초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초청 행사는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지 물었더니, ‘총학생회 전체 회의를 했는데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이 있어서 취소하게 됐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학생은 ‘외부 압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학교의 압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취소했으면 더 큰 문제다. 학생들끼리 회의를 하다가 ‘우종학 교수를 초청하면 한동대에 위험할 수 있겠다’고 초청 행사를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한동대는 대학이고, 대학은 학문의 성지다. 자유롭게 사상들을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바를 펼치고, 토론하고,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검토하는 곳이 대학이다.
 
 

 
 
Q 한동대에 ‘창조와 진화’라는 교과목이 있다. 창조과학 특강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는 일반 세상과 다르게 창조과학적인 관점을 가르친다’. 이게 문제다. 한동대 안에는 끈끈한 사제관계나 신앙적인 공동체와 같이 기독교적인 문화가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적인 문화에 노출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는 문화일 뿐이다. 가르치는 내용이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창조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과학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인문계 학생들은 과학 과목을 대학에서 보통 한 번 듣고 졸업한다. 대학에서 제대로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창조와 진화’라는 수업과 창조과학자의 강의를 듣는 것은 불행인 데다 학교의 무책임이다. 한동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과학교육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도 비판적 사고를 한다.
 
Q 한동대 학생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넓게, 멀리 보면서 우물 안을 벗어날 생각을 해라. 우물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물 밖을 볼 생각을 하기 바란다.
 
 
*지구 6,000년 설: 창조과학의 대표적인 주장으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등장인물의 족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합산하여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지구론: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지구의 나이가 6,000-12,000년이고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허윤 기자 h12h13@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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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이 될까?

기사/대학 2017.12.04 16:52

‘HIM’이 될까?

최초입력 2017-12-04 16:52

최종수정 2017-12-04 16:54


 

 
지진이 지나가고 한동대 총학생회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제23대 총학생회장단 단독 후보 ‘HIM’의 정회장후보 김광수(법 10, 이하 김)와 부회장후보 이지혜(국제어문 15, 이하 이)에게 다양한 사안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지난 3일 포항 양덕 포라(fora)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선거캠프 ▲인권 ▲교내 ▲역사 ▲정치로 사안을 나눠 질문했다.
 
 

제23대 총학생회장단 단독 후보 'HIM'

 
 
왜 당신이 총학생회장단이어야 하는가?
 

김: 왜 저여야 하냐는 질문에는 ‘저였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드리고 싶다. 한동의 원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싶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를 인간이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모른다고 확신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목실과 교수님, 선배님,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동대가 기독교 정체성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정회장후보의 비전에 공감했다. 그리고 한동대 10대 비전인 통일을 총학이 구체적으로 준비해 나가자는 비전에 공감했다. 1학년 때부터 한동대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했고 선배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총학으로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싶어 출마했다.
 
 
HIM을 둘러싼 논란들: 추천인 명단과 의결 무효화 시도
“충분하지 못했지만 설명했다”
“투표지를 숨기진 않았고 내지 않았다”

 

 
최근 SNS에서 추천인 논란이 있었다. 추천인 서명인지 모르고 서명했다가 명단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김: 저와 부회장후보가 같이 다니면서 서명을 받았다. 글을 올리신 분은 설명이 부족했다고 평가한 것 같다. 충분히 설명 드리지 못했던 점은 죄송하지만, 총학 서명이었다고는 분명하게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충분하지 못했지만 설명했고, 그 점에 있어서 글 쓴 분이 직접 누군지 말해주시면 좋겠다.
 
추천인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다던데.
 

김: 두 명 있었다. 그런데 이미 추천인 명부를 제출한 다음이라 이미 출력된 한글판 공약집에서는 빼지 못했다.
 
출력 후에도 이름은 따로 지울 수 있다. 그런 노력은 했나?
 

김: 그런 조치는 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는 해봤나?
 

김: 하지 않았다.
 
정회장후보는 2015년 평의회 부의장 당시, 의결을 위해 모인 회의에서 투표지를 숨겨 의결 무효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왜 그랬는가?
 

김: 투표지를 숨기진 않았고 내지 않았다. 내지 않았다는 걸 밝혔기 때문에 숨긴 것은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당시 의결은 총학 집행부의 집행정지에 관한 의결이었고, 개인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투표지를 내지 않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절차가 중요하고 지켜야 할 건 분명하지만, 총학의 선거과정이 문제라면 지금 제가 투표지를 숨긴 것도 선거과정의 문제이므로 이 의결도 안 되는 것은 아닌가를 공감시키고 싶었다.
 
 

 

정회장후보 김광수

 
 
HIM의 인권감수성
“(혐오가)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한다”

 

 
지난 학기 *A교수는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입장과 대책은?
 

김: 교수님도 인정하셨듯, 발언 자체는 실책이라 판단한다. 우리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번과 같이 조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이 부분이 ‘여성혐오’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 분명히 실책성 발언이고 고인에 대한 실례가 될 순 있지만, 혐오까진 아닌 것 같다. 많은 문제에 혐오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게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엔 보통 더러운 것에 쓰는 단어였는데, 어느새 사람을 향해 쓰는 단어가 되어버린 현실이 좀 아쉽다.

 
이: 정회장후보 의견에 동의한다. 당시 여자로서 듣기 불편한 점이 있었다. 성교육 시간인데 교수님이 남자와 여자의 균형을 잡지 않고 여자에 대해서만 언급하셨다. 교수님께서 균형 있는 성교육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난 2일,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있었다.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생각은?
 

김: 문재인 정부의 답변을 듣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됐다. 대표적으로 미혼자보다 기혼자의 낙태가 많다는 통계에 놀랐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적 근거와 지식으로는 생명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낙태 문제에 대해선 공부를 더 해보고 학내에서 토론의 장을 열고 싶다.

 
이: 생명을 존중하기에 낙태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이 강간을 당했을 때 같은 경우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회장 후보는 ‘동성결혼 허용 개헌반대 대학생청년연대’ 소속으로 알고 있다.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는가?
 

김: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 가운데 법적인 처벌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동성애는 우리나라 법 제도 안에서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고 말한 것이다.
 
한동대에도 당연히 성 소수자가 있다. 이들에게 할 말이 있나?
 

김: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저희가 그들을 미워하거나 혐오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에게 맹세하고 말씀드리는 것은 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그분들을 혐오하는 순간 저희는 엄청난 잘못을 하는 거다. 저희는 감히 혐오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를 원하실지 모르겠지만, 누가 어떻게 계신지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저희가 더 가난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다.
 

이: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하지만 성 소수자 분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나 고통은 함께 겪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학내 장애인 수와 시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김: 지금 알고 있는 내용은 없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기 불편하다는 사실은 한동신문사 기사를 통해 본 적 있다. 오늘 이후로 실태를 파악하고 조사해서 학생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준비하겠다.
 
 
한동을 진단하다: 개선점과 회칙개정
현재 교목실 위상 다소 낮아, 방향성 제시 원해…
“학생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한동대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김: 한동대의 가장 큰 가치는 ‘하나님의 대학’이다. 하나님의 대학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원래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논의되기 어려운 현실이 한동대의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교목실의 역할이 원래 한동대에서 있어야 할 위상보다 조금 낮다고 평가한다. 신학의 종류가 다양하게 있고, 신앙의 스펙트럼도 넓은데 그것들이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것에 근거하고 있는지 학생들이 공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교목실에서 어떤 것이 복음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지 구별해주고 어떤 것이 한동대에 적합한지 방향을 알려주면 좋겠다.
 
5일, 회칙개정을 위한 학생총회가 열린다. 이번 개정안에서 잘된 점과 아쉬운 점은?
 

김: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 구조가 바뀌고 여러 위원회가 생긴다. 학생들이 실제 전학위원이 아닌 이상 이전과의 차이점을 알기가 어렵다. 임명직을 대폭 줄이고 선출직으로 구성된다고 했을 때, 학교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30명이라는 인원은 좀 많아 보인다. 회칙개정은 법의 영역이고 정해진 룰이기 때문에 저희는 그것을 따르는 입장이지 평가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학생대표 후보자로서 의견은 없는가?

 
김: 잘된 점이라면, 기존에 없었던 학부들이 전학대회 위원으로서 입장이 격상된 것과 RC협력회들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쉬운 점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부회장후보 이지혜

 
 
HIM의 역사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일성이다”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 총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김영길 총장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총학생회장이 되어서 그분이 설립한 학교에서 하나님의 대학으로서의 가치를 더욱더 발전시키고 싶다.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일성이다.
 

이: 대한민국 땅에 완전한 통일과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힘썼던 김구 선생님을 존경한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뉴데일리에 쓴 칼럼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희망을 이야기하는’ 좋은 인물로 평했다. 독재자들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헌법 개정은 독재자의 길로 이어질 수 있기에 위험하고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를 권위주의적 체제라는 조금 더 순화된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분들이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의 다른 면을 보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고, 6·25전쟁을 잘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 발전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로 인해 4·19혁명으로 하야하게 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리하게 유신 개헌을 해서 암살당했다.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한 게 아니라 독재를 해서 존경심이 좀 덜해졌다.
 
 
HIM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지지하는 정치 세력은 없었으면 좋겠다”
“태극기 집회에만 간 적은 없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김: 학내에서 정치적인 논의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만, 지지하는 정치 세력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지하는 정치의 가치들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됐으면 좋겠고, 더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는 경우에는 우리가 하나 될 수 없고 지향점을 찾아낼 수 없다. 제가 헌법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조항은 헌법 3조다. 영토조항인데, 북한에 있는 2천 5백만의 우리 동포들이 헌법 3조로 인해 우리 국민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분들의 비참한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정당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다. 아직까지 그런 준비가 없는 것 같아서 기도하고 있다.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저도 없다.
 
정회장후보가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인가?
 

김: 태극기 집회에만 간 적은 없다. 촛불 집회에도 갔고 태극기 집회도 갔다. 그 안에서 무엇이 어떠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했다.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고 기로였기 때문에 같이 보고 싶었다. 촛불 집회에서 가수들 공연하는 것도 봤고 태극기 집회에서 군가 부르는 것도 봤다.
 
 
* A교수의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 지난 4월 한동대 A교수는 수업 중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지 자식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다”, “아빠가 때리는 거를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다”, “특별히 여자들이 귀찮다고 그러는(남편과 성관계를 맺지 않는) 거다”, “(이것은) 결론적으로는 그 남편이 다른 사람과 자기가 채우지 못한 성적 욕구를 다른 데 가서 채울 수밖에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도운 거다” 등의 발언을 했다. (참고: 한동대 교수, 여성혐오 발언 논란 http://newdam.com/33)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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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동성애 혐오'하면 하루에 10만원

   최초입력 2017-09-29 15:52

최종수정 2017-09-29 15:52


 

 

 

 

 

 

929일 한동대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동성애 혐오 전단지를 배포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왔다. "추석 명절에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동성애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전단지를 배포해줄 수 있는 스포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혐오의 대가는 1일 10시간 10만원. 모집인원은 제한이 없으며 활동기간은 102일부터 6일까지로 예고돼 있다. 동성애 혐오가 ‘5 50만원이란 꿀 알바로 둔갑한 것이다. 해당 공지를 게재한 한동대 J교수에게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해당 공지가 게재된 히즈넷은 한동대 교직원, 교수, 학생 모두가 확인하는 사이트다.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posted by 뉴담 Newdam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최초입력 2017-09-21 10:35

최종수정 2017-09-21 10:40


 
비기독교인은 ‘비기’, 기독교인은?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을 표방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를 가진 사람은 특이한, 혹은 소수의 존재가 된다. 이를 드러내는 단어가 ‘비기(비기독교인의 줄임말)’다. 한동대 밖에서는 듣기 어려운 이 단어는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정체성이 제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동대에서 그들은 ‘비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 마치 동등한 인간 이전에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으로 판단되고 규정되는 것처럼.

 
 ‘비기’라는 말은 한동대 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향한 기독교인의 일방적인 잣대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 신앙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된다. 16년 7월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대 대신전해드림에 익명으로 게시된 A 씨의 이야기는 한동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비기’)의 삶을 토로하고 있다. A 씨의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는 새내기OT(한스트) 기간 중 새내기에게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A 씨는 손을 들었고, 새섬은 그 자리에서 “비기네 비기”라며 A 씨를 규정했다. A 씨는 자신에게 ‘비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비기’라는 독특한 그룹에 강제로 속해진 이후 한동대에서 시간은 좋지 못했다”라며 한동대에서 비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스트 이후에도 A 씨의 학교생활은 ‘비기’와 연결됐다. A 씨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섬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A 씨가 비속어나 험한 말을 쓸 때면 새섬은 ‘비기’라는 말을 꼭 끼워 넣어 그를 몰아세웠다. 심지어 새섬은 A 씨에게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며 ‘비기’인 A 씨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와서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믿음으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대에 온 첫날부터 ‘비기’로 불리며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반수를 결정했다. A 씨는 “기독교 대학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하루하루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그 나날들을 버리고자 다른 학교로 도망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오자마자 ‘비기’라는 말에 갇히면서,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개종과 전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비기’라는 단어는 ‘대상화’의 일종이다. ‘대상화’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과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특정 목적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인 ‘인간의 대상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인간의 대상화’라 함은 인간을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대상화는 상대방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에서 시작해 상대를 규정하고 통제하기까지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상대방을 특정한 의미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가사노동이 여성이 감당해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규정하는 대상화의 대표적인 예다. 개별적인 여성을 ‘여자’라는 범주에 가두고, ‘여자’가 있어야만 하는 위치가 있다고 규정하는 발화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개개인을 ‘성(性) 역할’이라는 범주 안에 가둔다. 쉽게 말해 대상화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사람은 ‘비기’라는 범주 안에 묶인다. ‘비기’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드러나는 두 대상 간의 경계는 명확하다.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기독교 신앙의 유무다. 한동대에서 다수인 기독교인은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의 경계를 단 하나의 단어로 구분 짓고 그들을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개인들의 특성은 쉽게 지워진다. 예컨대 ‘비기’로 묶인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동일하게 불린다. 설령 그들 중 하나가 불교를 믿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더라도 표현은 바뀌지 않는다. ‘비기’란 애초에 기독교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표현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은 한동대에 왔으면 기독교인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중심적 사고가 만연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편의대로 구성된 주장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B 씨(15 전산전자)는 ‘비기’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때가 많다”라고 말한다. B 씨는 새섬이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라고 말했을 때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라고 토로했다. B 씨도 A 씨와 마찬가지로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춰진 자신은 “선교의 대상, 전도의 대상,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한동대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인식되고 곧바로 전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17년 새섬 지원서는 '비기독교인'과 음주/흡연/일탈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비기’라는 단어는 그저 서로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한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에게만 편의를 제공한다. B씨는 16년 12월에 새섬을 지원하려 했다. B 씨는 지원서의 질문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17년 새내기 섬김이 위원회(이하 새섬위)가 만든 열송학사 새섬 지원서 자기소개서 란에는 “만약 비기독교인 새내기가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과도한 음주 흡연 일탈 생활을 이어간다면 새섬으로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비기독교인’과 음주, 흡연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B 씨는 “저런 문항이 새섬 지원서에 있다는 것과 새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떻게 답변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교회 안 나가니까 거리낌 없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경향성을 일반화한 오류다.
 
 한동대 기독교인은 ‘비기’라는 단어를 기준으로 기독교인을 동질감을 느끼는 ‘우리’로 묶는 반면, 기독교를 종교로 두지 않은 한동대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끼는 ‘너희’로 구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C 씨(15 법)는 “(기독교인 친구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이 선을 못 넘으면(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방인이다. 그게 좀 서럽고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우리’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그저 먼 이방인일 뿐이다.

 
 B 씨는 한동대 슬로건인 “Why not change the world?”가 “우리 같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가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와 ‘우리’라는 표현 안에 나는 속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비기’라는 단어는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비기’로 묶인 사람들의 선행은 “비기치곤 착하네”로 평가된다. 한편, 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비기라서 그래”로 낙인 찍는다.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산정된 사람들의 삶은 동일한 정체성으로 일반화된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의 말로(末路)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D 씨(15 콘융디)는 기독교인 룸메이트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독교인이 아닌 D 씨는 “돌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기독교인에게 ‘비정상적’이며 ‘틀린’ 사람이었다.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대상을 명명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정상’혹은 ‘옳음’으로 여기고, 대상화되는 자를 ‘비정상’ 혹은 ‘그름’으로 여긴다. ‘비기독교인(非基督敎)’이란 단어에는 ‘아닐 비(非)’가 들어간다. ‘비기(非基)’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것(異)을 틀린 것(非)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대상화가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대상화는 진행되고 대상을 옥죈다.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대상화는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 물었던 A 씨의 새섬은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는 말로 새내기를 강요했다.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학기 목표”라 말했던 B 씨의 새섬은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비기’를 향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태도를 일면 보여준다.

 
 한동대 ‘비기’들이 겪는 불편함은 단순히 그들의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의 수많은 A, B, C 씨 그리고 D 씨는 여전히 대상화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명백한 차별과 혐오로써 게이나 레즈비언, 장애인, 흑인 등의 단어를 누군가를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동대에서 ‘비기’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옥죄는 단어가 되고 만다. 발화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기’의 정체성은 ‘비정상’으로 전락한다.

 
 대상화의 언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상화된 말로 ‘비기’라는 단어는 특정인을 ‘비정상(非正像)’으로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차별과 배제의 대상화 언어를 지양해야 한다. 언어를 바꾸며 일상의 습관을 고치는 노력은 대상화가 지닌 폭력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차별과 배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차별로 규정하는 대상화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선 각자의 진실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고의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든 유형의 행동과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늘 폭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 15년 한동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채플에 앉아있는 당신에게’)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동대 학생 1,466명 중 90.8%(1331명)이 기독교인인 반면 비기독교인은 9.2%(135명)에 불과했다.

 
**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 한동대학교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과 편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한동대 학생(2학년부터 지원 가능)을 일컫는다.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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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기사 2017.09.11 22:28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최초입력 2017-09-11 22:28

최종입력 2017-09-11 22:47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로 사는 삶이 당연한 행복이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하는 *달란트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로 솜이 든 고무장갑을 산 적이 있다. 한 분기 동안 열심히 모은 달란트를 가지고 가판대 앞에 섰을 때, 엄마의 튼 손이 떠올랐다. 고무장갑을 사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참하고, 기특한 아이라며 ‘이제는 시집가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당시의 나는 요리와 내조를 잘하는 인내심 깊고, 순종적인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자랑스러워 했다. 나 또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가도 될 아이’라는 칭찬이 정말 좋았다.

 

 칭찬을 들은 이후로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일들을 찾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하는 법을 터득하고,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고, 요리하는 법을 하나씩 배웠다. 좋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꼼꼼하지 못했고, 과일 껍질을 깎는 일보다 뛰어노는 일이 즐거웠다. 인형보다는 팽이나 요요가 좋았다. 십자수나 바느질이 어렵고 힘들었고 발레보다 검도를 좋아했다. 치마보다 바지가, 분홍보다 파랑이나 녹색이 좋았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때마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생 때 피구보다는 축구가 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선크림 바르는 일이 귀찮았고, 땀 흘리는 일이 즐거웠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고치는 일이 낯설었다. 여성스럽지 못해 속상했다.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와 여성 사이

 

진로를 생각하면서 나와 ‘여성으로서 나’ 의 갈등은 최고조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봐왔던 언니들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기에 결혼하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위한 희생이 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만난 지인이 “너는 엄마 잘 할 것 같아. 칭찬이야”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삶인데 왜 당황스럽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내가 가진 차이는 성별 하나뿐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예견되고 확정됐다.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가 낯설고 불편해진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불쾌감은 당연히 따르던 여자의 삶에 대해, 또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지금까지 좇아오던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그동안 나는 왜 부끄러워야 했는지, 왜 여자는 자신의 꿈을 꾸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자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들이 버거웠고, 여성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던 불편함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었다. 처음 여성혐오를 접했을 때는 그저 여성을 혐오하는 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모든 차별과 멸시, 고정관념까지 통틀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혐오에 물든 사회와 싸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별에 반대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스러움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너 자신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가, 아내가, 엄마가 될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위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또한 고통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싸워야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성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특히나 평생을 몸담은 교회는 말씀으로 여성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고 단죄하며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다. 교회는 독립적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돕는 배필,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를 원한다.

 

 이미 여성혐오에 길들여진 나는 주어진 여성성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검열하는 데 익숙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렵다. 혼자서만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지만, 그를 표현하기는 두렵다. 혼자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슬퍼진다.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여성스럽지 못하게 여겨진다. 나는 자꾸만 드세고 불편한 여자아이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먼 사이가 된다. 섬세하지 못한 말들이 아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다.

 

 여성혐오를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남들을 지적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여성혐오가 들어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성혐오를 알아버린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혐오는 너무나도 만연하다. 숨 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혐오때문에 숨이 막힌다. 여성혐오는 우리의 일상에, 관념 속에 존재하고, 심지어 강의실에도 존재한다.

 

 

 

*달란트 시장: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보상으로 달란트 시장에서 화폐에 상응하는 달란트를 지급하고, 학생들은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와 교회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교환할 수 있다.

 

  

다음 기사 -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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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기사 2017.09.11 21:56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최초입력 2017-09-11 21:56

최종수정 2017-09-11 22:48



강의실 안 여성혐오

엄마라는 존재


17-1학기, 한동대 A 교수는 수업 중 한 여성이 남편의 폭력과 가난 때문에 아이들과 동반 자살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그 중심에 가보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냐면 저는 무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는 거예요. 또 하나 뭐냐면 오해하는 거예요. 뭐냐, 이 엄마는 엄마가 뭔지를 모른 거예요.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지 자식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 엄마는 모른 거예요”라며 “아빠가 때리는 거를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핵심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몸가짐을 조심히 해라”, “담배 피우지 마라” 등등 많은 걱정과 조언을 듣는다. 여성은 인생의 목표와 의미가 출산과 육아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에 따른 여성의 희생을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당연시하고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 이러한 모성애 숭배는 여성에게 족쇄가 된다. 절대적인 모성애가 강요되고, 엄마는 인간보다 앞선 속성이 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엄마’가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역할은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한 잣대로 평가 받는다. 엄마의 사랑, 모성애는 절대적이야 하기 때문이다. A 교수의 발언 속에 고인의 남편과 가정폭력 소리에 무감했던 이웃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의 책임과 역할만 존재한다. 그녀의 마음은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그렇게 한 여자의 서사는 엄마라는 이름 뒤로 사라진다.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영아 유기·살해사건은 엄마만 강조된다.

 

 

 이 같은 관점은 많은 언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아 유기∙살해사건이 일어난다. 기사들은 ‘비정한 엄마’, ‘친모’, ‘30대 女’를 비판하기 바쁘지만, 아버지에 대한 보도는 없다. 엄마가 아이를 버리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죽더라도 아이를 지켜야 할 엄마의 존재와 본분을 잊은 모정 없는 이기적인 엄마만이 존재한다. 영아 유기사건 현장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엄마만이 존재한다.

 

 위 발언은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이며, “아이들을 살리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처럼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하여 보는 관점은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게재했다.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 지도

 

 

 이 지도는 국내 지역별로 합계 출산율,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15세에서 49세 여성의 수를 공개하고, 지역별로 순위를 매겼다. 정부는 생물학적 성과 연령만으로 가임 여부를 판단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여성은 임신이 가능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으로, 숫자로 표현됐다. 개인의 지향이나 계획은 무시됐다. 가임기 지도에 인격체는 없었다. 생산 능력을 가진 자궁만이 존재했다.

 

 

여성혐오를 만난다면

 

누군가는 A 교수의 발언이 불편하지 않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A 교수의 발언이 당신이 겪고 있는, 겪어야 할 차별과 혐오를 담고 있지 않았거나, 그 차별과 혐오에 적응하고 당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말에서도 여성혐오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게 지나치던 여성혐오를 의식하는 일은 불편하다. 여성혐오는 옆에 앉아있는 팀원에게서, 내 가족에게서, 나에게서, 그리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한번 잡아내고자 마음을 먹으면 일상의 모든 언어와 싸워야 한다. 누군가는 여성혐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네가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삶이 편해진다. 말하는 일은 두렵고, ‘포용과 이해’라는 명분으로 참고 방관하는 일은 익숙하고 쉽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잘못보다는 지적한 사실 자체가 더 비난 받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늘 그래왔다는 것, 몰랐다는 것으로 옹호된다.

 

 여성혐오를 하는 모든 사람이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여성혐오적 가치관을 학습 받은 일종의 피해자다. 여성혐오는 성별을 가려서 삶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는 남성들에게도 억압이 된다. “남자니까 ~ 해야지”, “남자답게 굴어” 라는 말로 개인의 감정과 자유를 억압한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내에서 ‘남성다울 것’, ‘여성다울 것’을 강요 받는 억압과 폭력의 희생자이다.

 

 

 

 

 

 여성혐오를 인정하는 일은 삶 전체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낯설고 아픈 과거를 대면하기보다는 잘못된 혐오를 옹호하고 감싸고 싶을 것이다.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혐오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해야 할 일은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를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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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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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①

최초입력 2017-06-12 10:55

최종수정 2017-06-12 11:12


 

 

한동대 휴학생 A씨. 그(녀)는 동성애자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 7살때부터 20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동성만을 사랑했다. 선택이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성에게 마음이 향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한동대에서 말하고 다니지 못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을 죄인이란 딱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던 A씨의 한동대 일상은 어땠을까.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제자, 누군가에겐 선배 또는 후배, 누군가에겐 룸메이트, 혹은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던 일상

 

Q 한동대에서 동성애에 관한 대화로 불편을 겪으셨던 적이 있나요?

 

어디에나 동성애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자신의 주변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괜히 혼자 속으로 땀을 흘렸어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연기’가 늘어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도망가고 싶은 기분일 거예요. 속으로 여러 다른 생각을 하며 침묵하게 될 것이고요. 지금의 저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표정관리’ 할 수 있게 됐어요.

 

Q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표정관리를 한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한동대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면 ‘생존’에 위협을 받아요. 특히, 한동대는 동성애가 죄라는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조심하게 돼요. 동성애자인 것을 들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저를 볼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무서워요. 제 이미지가 이전까지 아무리 좋았더라도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거죠. 기독교인이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낙인 찍잖아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들키는 순간 그 목소리가 저를 향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괜찮은 척 연기하고, 표정관리를 해요. 제가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면 정말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Q 동성애자로서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오래전 일이에요. 한동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동성애자들은 그 안에 귀신이 들어있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싶었죠.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결국, 제 이야기니까. 어차피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어떤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탄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어요. 실제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며 책자를 뿌리는 곳도 많잖아요. ‘식성’이니 ‘에이즈’니 하는 이야기로 이게 바로 동성애자들의 실체라며 뿌리는 책자들이요. 저랑은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뿌려진 혐오, 새겨진 낙인

 

Q 얼마 전 한동대에서 ‘동성애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열리고,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란 책자가 뿌려졌죠.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모든 동성애자도 다양해요. 그런데 극단적인 면만을 보고 모든 동성애자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탈동성애를 했다는 분이 동성애자의 삶을 폭로한다면서 동성애자의 문란한 삶을 이야기했죠. 왜 그 사람이 동성애자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저의 경우는 정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다를 게 없어요. 저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정말 오래 좋아하고 그 사람밖에 몰라요. 아무리 짧아도 최소 2년은 계속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싫어요.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동성애라고 하면 대부분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니까, 저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가진 적도 없어요.

 

Q ‘동성애자=에이즈’, ‘동성애자=문란한 성’이란 인식이 한동대에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성 간에도 사랑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죠. 성관계가 전부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라고 아무에게나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동성과 성관계를 하려고 난리가 난 것도 아니에요. 성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왜 동성애라고 하면 다 동성애 ‘행위’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부끄러워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손잡고 싶죠. 좀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어요. ‘동성 간의 결혼도 안 되는데, 이미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죄인데, 무슨 혼전순결이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래요.

 

Q 동성애자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을 것 같아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향해 타인들은 ‘동성애자’라고 부르잖아요. “쟤 동성애자야”, “쟤 게이야”, “쟤 레즈비언이야”, 이런 식으로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한 인간을 동성애로 규정짓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이름이나 다른 특징들보다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거죠.

 

Q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한동대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뭐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저는 우리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서 조금 위로가 됐어요. 저와 같은 분들도 그분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는 우울함과 고독함이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요,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나는 ‘누구누구다’라고 말하길 바라요.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부르지 말고. 예전의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고, 지금의 저에게도 계속하는 말입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같이 힘내요.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②

 

 

 “제겐 동성애와 기독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학교의 입장(이하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한동대 휴학생 A씨가 밝힌 소감이다. 동성애를 반기독교로 상정한 공지를 읽으며, 동성애자 A씨는 슬픔에 잠겼다.

 

 A씨는 기독교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A씨는 교회가 두려웠다.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A씨는 ‘동성애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족을 의식해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17년 5월 24일. A씨의 모교인 한동대는 그(녀)를 또다시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친구, 선생, 선배, 후배, 룸메이트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A씨는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온전한 존재로 디딜 공간이 한동대에는 없는 듯하다.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A씨는 동성애자로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오갔을까. A씨의 심경을 들어보자.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고 처음 받았던 느낌은?

 

처음 읽었을 땐 담담했어요. 교회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뻔하고 뻔한 내용. 기독교인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인에 동성애자는 포함이 안 되겠지만요. ‘죄는 죄라고 말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나름의 만족과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교의 사랑을 지켜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발표 내용도 정석 답변으로밖에 안 느껴져서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에요. 계속 씁쓸해요. 무슨 씁쓸함인가 생각해봤더니 ‘단절감’이에요. 공식 발표에서 말하는 ‘우리’에서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한동대 학생인데, 지극히 타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슬프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동성애를 원한 게 아니니까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어요. 저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처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지만 이미 저는 존재하고 있네요.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네요. 제가 제 의지로 선택한 것도 아니죠. 이성애자도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이성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예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동성애로부터 치유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요. 동성애가 정말 치유돼야 하고, 치유가 가능하다고 쳐봐도요. 인권 보호 측면에서 동성애를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말이 안 돼요.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인권 보호랑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죄인을 죄로부터 돌려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기독교 입장에서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이건 인권 보호보다는 치유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동성애 한동대 입장>에 등장하는 ‘치유’라는 단어 속에서 저는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동성애 치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치유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했을지 의문이네요. 제가 느끼기엔 그냥 저를 철저히 대상화시킨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정작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관심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까요? 동성애자에게 동성애는 죄라는 사실을 계속 권고해주면 치유가 되는 건가요?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작 치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건가 싶네요.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를 치유할 사람은 그들이 아님이 분명해요.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제 성향을 밝힐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동성애에 개방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 성향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운데.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제 성향을 밝힐 수 있겠어요. 누가 동성애자인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치유한다는 건지 의문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닌 상태에서 저의 성 정체성을 먼저 알았다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교회에는 가지도 않았겠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니까요.

 

 

‘나=동성애자’가 아닌, ‘나=나’

 

Q 역설적으로,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요?

 

저에게도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었죠. 제게 치유는 제 친구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을 때 일어났어요. 제가 제 정체성을 친구에게 고백했을 때요. 친구의 대답이 무서워서 숨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어떠한 당황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고 도망가지 말라’고 절 붙잡아줬어요. 그때의 친구 반응에 진짜 머리를 돌로 맞은 것 같았어요. 저에겐 성 정체성이 저의 정체성의 전부였는데. 친구의 반응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나=동성애자’가 아니라 ‘나는 동성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 나는 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가능했어요. 저의 성 정체성이 저의 전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과장이 아니라 그때 정말 구원받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동성애자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닫았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제 정체성을 밝히지 않더라도 저의 다른 특성들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인식이 가능해졌기에 ‘하나님은 그래도 날 사랑하실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지 싶어요.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Q 동성애를 ‘반대’하며 동시에 ‘치유’하자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서 참 부럽다, 운 좋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성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은 동성애를 빗겨나가 다수의 입장에 서게 된 운 좋은 사람들이죠. 동성애자가 아니어서 동성애에 대해 죄책감 없이, 쓰라림 없이, 마음껏 죄라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치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확실한 건 저와 같은 동성애자들을 교회로부터 밀려나게 할 것이란 사실이에요. 교회 안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가 동성애는 죄라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계속 죄책감을 주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면, 언제까지 교회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교회 밖 사람들이 저에게 더 열려 있고 친절하니, 저를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가 가야 할 곳은 교회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도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굳이 죄인이라고 낙인 찍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겪어야 하는 힘든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이를 발표한 사람들과 동성애자들 사이에 견고한 벽 하나를 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네요. 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려고 하는지.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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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총장 업무추진비, 누구와 썼을까?

 

최초입력 2017-06-01 20:28

최종수정 2017-06-01 20:28


 

한동대 장순흥 총장은 14년 2월 취임 이후부터 16년도까지 약 4천 8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이 업무추진비를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남아있는 기록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 방법을 정해놓은 지침은 없다. 교육부는 국립대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렸다.

 

한동대는 총장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에 관한 규정이 없다.

 

 

‘외부’에 ‘식비’로 사용된 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란 단체의 장이 기관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이는 비용을 말한다. 외부 손님을 위한 식사 대접부터 회의에 필요한 다과 구매까지, 그것이 공적 업무라면 업무추진비는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장 총장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은 △14년도 약 1천 890만 원 △15년도 약 1천 830만 원 △16년도 약 1천 80만 원의 업무추진비(총합 약 4천 800만 원)를 사용했다.

 

 총장은 업무추진비 대부분을 ‘외부’에 ‘식비’로 지출했다. 한동대 비서실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장 총장은 외부인사 접대비로 약 4천 400만원을 지출했다. 이는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1.2%에 해당한다. 나머지 8.8%(약 400만 원)는 내부에 사용했다. 교내 간부직원이나 교내 학생 및 동문 식사비로 약 400만 원을 지출했다. 지출 항목별로 살펴보면, 장 총장은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2.2%에 해당하는 4천 430만 원을 식비(다과 포함)로 지출했다. 나머지 7.8%(약 370만 원)는 교통비와 외부인사 선물 구매 등에 사용됐다.

 

 

명확하지 않은 목적과 대상

 

문제는 장 총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언제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는 업무추진비 사용의 목적과 대상이 명확히 쓰여 있지 않다. 일례로, 장 총장은 14년에 언론계 인사 식사 대접 및 포스텍(POSTECH) 행사찬조에 225만 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함께 식사한 이들의 소속과 명 수가 적혀있지 않으며, 어떤 목적으로 몇 회의 식사를 했는지도 명시돼 있지 않다. 15년도에는 ‘포항언론인클럽’에 4건의 식사 대접으로 124만 원의 업무추진비가 사용됐지만, 이 역시 목적이나 명 수는 적혀 있지 않다.

 

 총장이 업무추진비로 구매한 선물도 누구에게 갔는지 알 수 없다. 장 총장은 업무추진비로 △14년도 60만 원 △15년도 57만 원 △16년도 140만 원 가량의 선물을 구매했다. 선물 품목으로는 △커피 원두 △텀블러 △화장품 △차(tea) △건어물 등이 있다. 그러나 선물들이 향한 곳은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인사’라고 추측될 뿐, 누구에게 줬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상이 적혀있는 경우에도 “UN관계자”, “한동대 후원자” 등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다.

 

 한편, 회비를 업무추진비로 납부한 사례도 있었다. 장 총장은 14년에 ‘국가조찬기도회비’ 납부 대금으로 업무추진비 5만 원을 사용했다. 이 경우 역시 업무추진비로 회비를 낸 이유나 목적은 명시돼 있지 않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 관계자는 허술하게 공개된 총장 업무추진비는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업무추진비를 공개했을 때는 대학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비용에 썼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판별할 수 없다고 한다면 공개의 가치가 없는 거다.”

 

 

사립대학에 없는 업무추진비 지침

 

전국 사립대학은 일정 기준 없이 업무추진비를 사용 및 기록할 수 있다. 교육부가 전국 국립대학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지시로 올해부터 전국 국립대학은 총장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목적과 상대방의 소속, 성명을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해당 지침에서 제외됐다. 이에 한동대도 총장 업무추진비의 사용과 기록에 관한 지침이 없는 것이다.

 

 대교연 관계자는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 규정을 지정하지 않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사립대학도 국립대학과 마찬가지로 공교육을 이행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다. 이에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사립대학이 반대하니, 교육부가 할 생각을 안 한다. 그렇기에 어떤 내용으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해야 하는지 기본적 틀도 없는 거다.”

 

 교육부는 사립대에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유선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는 “저희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 유선으로 직접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검토 후 답변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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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한동대 교목실, “동성애 치유 받도록 인도하는 것이 인권 회복”

 

최초입력 2017-05-24 13:31

최종수정 2017-05-24 13:37


 

 

 

“총장∙(학사)부총장∙교목실장∙학생처장 합의한 내용”

총학생회, “해당 내용에 대한 공유가 되지 않았다는 점 유감”

 

 

한동대 교목실은 24일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에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한동대 교목실은 △동성애 행위는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하는 것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문화적 추세로서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 △동성애 행위는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오는 것 △동성애를 치유하는 것이 참된 인권 회복이라 주장했다.


 위 발표는 한동대 교목실 입장이 아닌 ‘한동대’의 입장으로 공표됐다. 23일 한동대 장순흥 총장이 교목실 공지를 최종 확인 및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동대 교목실 최정훈 교목실장은 “나 교목실장, (학사)부총장님, 학생처장님, 학보사 주간교수, 제양규 교수가 정식으로 모여 같이 만든 것(내용)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장 총장님이 허락하셨다. 이에 한동대 입장이다”라며 “장 총장님은 해당 공지 제작 과정도 알고 계셨지만, 정식으로 허락한 건 어제(23일)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한동대 총학생회와는 합의되지 않은 발표였다. 한동대 제22대 총학생회 ‘기대’는 공유 없는 교목실의 동성애 공식 입장에 유감을 표했다. 총학 김기찬 회장은 “교목실에서 어떤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달받은 바 없다. 한동대 공식 입장으로 표명된 만큼 학생대표기구인 총학생회와 해당 내용에 대한 공유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총학은 한동대 교목실 발표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총학 김기찬 회장은 “(교목실 발표에) 집행부 차원의 공식적 입장 답변은 바로 드리긴 어렵다”라며 “이 전에 교목실과 관련된 논의가 오간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한동대 교목실의 발표는 교수사회와도 공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동대 교수는 “오늘(24일) 아침 교수 채플에서 최정훈 목사가 갑자기 발표했다. 교수님 일부는 (교목실의 동성애 견해를 듣고) 왜 갑자기 발표하는지 의아해했다”라며 “이것이 왜 한동대 입장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떻게 한동대 입장으로 정해졌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우리’의 입장이라 적었는데, ‘우리’가 모든 우리를 담고 있느냐. 그것은 대단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수협의회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 교목실장은 “문제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은 총학과도 같이 의논해야 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리더십이 하는 것 같다”라며 “저희는(교목실은) 학교 전체에서 결정한 신학적 입장의 발표를 돕는 것이다. 내가 비록 발표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총장님 대신해서 발표한 거다”라고 말했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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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한동대 교목실 공지 전문

 

한동대학교에서는 동성애에 관한 공식적인 선언문을 작성하여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대한 한동대학교의 신학적 입장

2017 5.24

 

현시대에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 문제의 심각성

최근 현대 사회에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의 강한 도전이 있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 교회들 안에서 일부 지도자와 평신도가 동성애 합법화를 지지하면서 그것이 기독교 윤리에서 정당하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성경의 계시와 기준에 충실하려는 복음주의 교회들과 지도자들은 큰 우려와 함께 동성애의 합법화가 반 성경적이며 반 기독교적임을 선언하고 있다성경의 계시를 중시하는 한동대학교는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들과 신앙관을 같이 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선언한다.

 

1. 우리는 동성애 행위가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한다고 믿는다

성경은 남자가 여자와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함으로써 성()의 기능이 남녀의 부부로서의 합일을 위해 준 것임을 분명히 한다( 2:24). 그것이 성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임을 믿는다그래서 성경은 모호함 없이 동성애의 행위를 성에 대한 왜곡으로 단죄하며 금한다이러한 단죄와 금지는 구약에 명시되어 있으며( 18:22; 20:13) 신약도 그 금지를 잇고 있다( 1:26-27; 고전 6:9-10). 구약의 어떤 규례는 신약에서 폐지되기도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금지의 법은 폐해지지 않았다.

 

2. 우리는 문화 안의 대세보다 성경의 계시를 기준으로 삼음을 분명히 한다

문화 안의 어떤 가치는 성경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가치는 충돌할 수도 있다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문화적 추세로서 비록 문화 안의 대세가 그것을 지지해도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따라 그것이 창조질서에 어긋난 것임을 선언한다.

 

3. 우리는 동성애 행위가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옴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죄로 단죄하고 금하는 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단죄와 금지가 아니고 그것이 인간의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건강과 직결된 것이기에 단죄하고 금한다고 믿는다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동성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28)라는 하나님의 명에 역행한다고 믿으며 그러한 역행은 장기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성경적 가정제도와 그것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구조에 해와 병을 가져옴을 믿는다.

 

 4. 우리는 동성애로부터 치유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참 인권보호 임을 믿는다

우리는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권을 가진 사람들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존중하나 동성애로부터 치유받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참된 인권의 회복임을 믿는다.

 

 

 

posted by 뉴담 Newdam

필터 없는 한동신문, 논란의 ‘동성애’ 칼럼


최초입력 2017-05-17 15:22

최종수정 2017-05-17 15:58





지난 4월 11일과 5월 2일, 한동신문사는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는 외부칼럼 두 개를 연이어 게재했다. 두 칼럼은 각각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 반대’, ‘동성애 합법화의 문제점’을 주장해 한차례 논란이 일었다. 동성애는 합법화 대상이 아니라는 비판부터 해당 칼럼들은 혐오발언이라는 등 독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한편, 논란이 되는 칼럼을 연이어 게재한 한동신문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이은 ‘동성애 반대’ 칼럼


한동신문사는 지난 2일 발행한 제242호 지면에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는 교수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합법화를 통해 동성애가 보호되면 가장 큰 문제점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많은 국민들의 양심과 표현, 종교와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는 데 있다”라며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보호되면 에이즈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해 보호받는 소수자와는 달리, 자율적 선택에 의한 동성애자는 소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동신문사는 제241호 지면에서도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외부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최근 우리 한국 사회는 ‘동성애와 동성혼’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사회 전방위적 차원에서 맞이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중요한 것은 동성애와 동성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할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자라나는 차세대에 매우 큰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동신문사는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칼럼을 연달아 실었다




“제목부터 틀렸다”


교수칼럼이 페이스북에 게시되자 독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신문’에는 “제목부터 틀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 아닙니다. 동성결혼이 법제화 안 된 것입니다”, “성소수자 혐오가 가득한 저 글은 범죄의 소지가 없는 건가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한동인 모임(이하 혐오반대 모임)도 비판에 나섰다. 혐오반대 모임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양심과 표현, 종교와 학문의 자유가 아니다”라며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그 형태가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타인이 반대하거나 옹호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동대 학생 고영훈(언론정보 12) 씨는 “소수자 차별과 혐오발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대상일 수 없다”라며 “한동신문사는 연속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포함된 칼럼을 실은 것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은 지면?


한동신문사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이 되는 칼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동신문사는 “한동신문 10면 ‘생각 면’은 본지의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는 지면입니다”라며 “‘생각 면’은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에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 욕설, 범죄의 소지가 있는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을 싣습니다”라고 전했다. 한동신문사 한결희 편집국장은 “저희가 내세웠던 기준에 비춰서 최소한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행법이라든지 이런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최소한의 기준에 어긋났다면 글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칼럼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동신문사가 페이스북에 밝힌 입장


 

 이에 혐오반대 모임은 “두 칼럼은 인간에 대한 엄연한 비난과 폭력,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범죄의 소지가 있는 글이다”라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칼럼들의 게재를 승인한 한동신문사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주재원 교수는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표현이라고 본다”라며 “예를 들어, (언론사가)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칼럼을 실어놓고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무책임하거나 아니면 무능력하거나”라고 말했다.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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