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동성애 혐오'하면 하루에 10만원

   최초입력 2017-09-29 15:52

최종수정 2017-09-29 15:52


 

 

 

 

 

 

929일 한동대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동성애 혐오 전단지를 배포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왔다. "추석 명절에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동성애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전단지를 배포해줄 수 있는 스포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혐오의 대가는 1일 10시간 10만원. 모집인원은 제한이 없으며 활동기간은 102일부터 6일까지로 예고돼 있다. 동성애 혐오가 ‘5 50만원이란 꿀 알바로 둔갑한 것이다. 해당 공지를 게재한 한동대 J교수에게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해당 공지가 게재된 히즈넷은 한동대 교직원, 교수, 학생 모두가 확인하는 사이트다.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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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최초입력 2017-09-21 10:35

최종수정 2017-09-21 10:40


 
비기독교인은 ‘비기’, 기독교인은?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을 표방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를 가진 사람은 특이한, 혹은 소수의 존재가 된다. 이를 드러내는 단어가 ‘비기(비기독교인의 줄임말)’다. 한동대 밖에서는 듣기 어려운 이 단어는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정체성이 제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동대에서 그들은 ‘비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 마치 동등한 인간 이전에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으로 판단되고 규정되는 것처럼.

 
 ‘비기’라는 말은 한동대 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향한 기독교인의 일방적인 잣대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 신앙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된다. 16년 7월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대 대신전해드림에 익명으로 게시된 A 씨의 이야기는 한동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비기’)의 삶을 토로하고 있다. A 씨의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는 새내기OT(한스트) 기간 중 새내기에게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A 씨는 손을 들었고, 새섬은 그 자리에서 “비기네 비기”라며 A 씨를 규정했다. A 씨는 자신에게 ‘비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비기’라는 독특한 그룹에 강제로 속해진 이후 한동대에서 시간은 좋지 못했다”라며 한동대에서 비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스트 이후에도 A 씨의 학교생활은 ‘비기’와 연결됐다. A 씨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섬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A 씨가 비속어나 험한 말을 쓸 때면 새섬은 ‘비기’라는 말을 꼭 끼워 넣어 그를 몰아세웠다. 심지어 새섬은 A 씨에게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며 ‘비기’인 A 씨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와서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믿음으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대에 온 첫날부터 ‘비기’로 불리며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반수를 결정했다. A 씨는 “기독교 대학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하루하루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그 나날들을 버리고자 다른 학교로 도망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오자마자 ‘비기’라는 말에 갇히면서,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개종과 전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비기’라는 단어는 ‘대상화’의 일종이다. ‘대상화’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과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특정 목적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인 ‘인간의 대상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인간의 대상화’라 함은 인간을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대상화는 상대방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에서 시작해 상대를 규정하고 통제하기까지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상대방을 특정한 의미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가사노동이 여성이 감당해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규정하는 대상화의 대표적인 예다. 개별적인 여성을 ‘여자’라는 범주에 가두고, ‘여자’가 있어야만 하는 위치가 있다고 규정하는 발화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개개인을 ‘성(性) 역할’이라는 범주 안에 가둔다. 쉽게 말해 대상화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사람은 ‘비기’라는 범주 안에 묶인다. ‘비기’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드러나는 두 대상 간의 경계는 명확하다.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기독교 신앙의 유무다. 한동대에서 다수인 기독교인은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의 경계를 단 하나의 단어로 구분 짓고 그들을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개인들의 특성은 쉽게 지워진다. 예컨대 ‘비기’로 묶인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동일하게 불린다. 설령 그들 중 하나가 불교를 믿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더라도 표현은 바뀌지 않는다. ‘비기’란 애초에 기독교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표현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은 한동대에 왔으면 기독교인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중심적 사고가 만연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편의대로 구성된 주장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B 씨(15 전산전자)는 ‘비기’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때가 많다”라고 말한다. B 씨는 새섬이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라고 말했을 때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라고 토로했다. B 씨도 A 씨와 마찬가지로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춰진 자신은 “선교의 대상, 전도의 대상,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한동대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인식되고 곧바로 전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17년 새섬 지원서는 '비기독교인'과 음주/흡연/일탈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비기’라는 단어는 그저 서로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한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에게만 편의를 제공한다. B씨는 16년 12월에 새섬을 지원하려 했다. B 씨는 지원서의 질문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17년 새내기 섬김이 위원회(이하 새섬위)가 만든 열송학사 새섬 지원서 자기소개서 란에는 “만약 비기독교인 새내기가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과도한 음주 흡연 일탈 생활을 이어간다면 새섬으로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비기독교인’과 음주, 흡연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B 씨는 “저런 문항이 새섬 지원서에 있다는 것과 새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떻게 답변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교회 안 나가니까 거리낌 없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경향성을 일반화한 오류다.
 
 한동대 기독교인은 ‘비기’라는 단어를 기준으로 기독교인을 동질감을 느끼는 ‘우리’로 묶는 반면, 기독교를 종교로 두지 않은 한동대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끼는 ‘너희’로 구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C 씨(15 법)는 “(기독교인 친구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이 선을 못 넘으면(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방인이다. 그게 좀 서럽고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우리’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그저 먼 이방인일 뿐이다.

 
 B 씨는 한동대 슬로건인 “Why not change the world?”가 “우리 같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가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와 ‘우리’라는 표현 안에 나는 속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비기’라는 단어는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비기’로 묶인 사람들의 선행은 “비기치곤 착하네”로 평가된다. 한편, 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비기라서 그래”로 낙인 찍는다.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산정된 사람들의 삶은 동일한 정체성으로 일반화된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의 말로(末路)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D 씨(15 콘융디)는 기독교인 룸메이트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독교인이 아닌 D 씨는 “돌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기독교인에게 ‘비정상적’이며 ‘틀린’ 사람이었다.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대상을 명명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정상’혹은 ‘옳음’으로 여기고, 대상화되는 자를 ‘비정상’ 혹은 ‘그름’으로 여긴다. ‘비기독교인(非基督敎)’이란 단어에는 ‘아닐 비(非)’가 들어간다. ‘비기(非基)’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것(異)을 틀린 것(非)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대상화가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대상화는 진행되고 대상을 옥죈다.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대상화는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 물었던 A 씨의 새섬은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는 말로 새내기를 강요했다.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학기 목표”라 말했던 B 씨의 새섬은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비기’를 향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태도를 일면 보여준다.

 
 한동대 ‘비기’들이 겪는 불편함은 단순히 그들의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의 수많은 A, B, C 씨 그리고 D 씨는 여전히 대상화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명백한 차별과 혐오로써 게이나 레즈비언, 장애인, 흑인 등의 단어를 누군가를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동대에서 ‘비기’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옥죄는 단어가 되고 만다. 발화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기’의 정체성은 ‘비정상’으로 전락한다.

 
 대상화의 언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상화된 말로 ‘비기’라는 단어는 특정인을 ‘비정상(非正像)’으로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차별과 배제의 대상화 언어를 지양해야 한다. 언어를 바꾸며 일상의 습관을 고치는 노력은 대상화가 지닌 폭력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차별과 배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차별로 규정하는 대상화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선 각자의 진실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고의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든 유형의 행동과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늘 폭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 15년 한동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채플에 앉아있는 당신에게’)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동대 학생 1,466명 중 90.8%(1331명)이 기독교인인 반면 비기독교인은 9.2%(135명)에 불과했다.

 
**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 한동대학교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과 편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한동대 학생(2학년부터 지원 가능)을 일컫는다.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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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기사 2017.09.11 22:28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최초입력 2017-09-11 22:28

최종입력 2017-09-11 22:47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로 사는 삶이 당연한 행복이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하는 *달란트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로 솜이 든 고무장갑을 산 적이 있다. 한 분기 동안 열심히 모은 달란트를 가지고 가판대 앞에 섰을 때, 엄마의 튼 손이 떠올랐다. 고무장갑을 사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참하고, 기특한 아이라며 ‘이제는 시집가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당시의 나는 요리와 내조를 잘하는 인내심 깊고, 순종적인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자랑스러워 했다. 나 또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가도 될 아이’라는 칭찬이 정말 좋았다.

 

 칭찬을 들은 이후로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일들을 찾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하는 법을 터득하고,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고, 요리하는 법을 하나씩 배웠다. 좋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꼼꼼하지 못했고, 과일 껍질을 깎는 일보다 뛰어노는 일이 즐거웠다. 인형보다는 팽이나 요요가 좋았다. 십자수나 바느질이 어렵고 힘들었고 발레보다 검도를 좋아했다. 치마보다 바지가, 분홍보다 파랑이나 녹색이 좋았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때마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생 때 피구보다는 축구가 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선크림 바르는 일이 귀찮았고, 땀 흘리는 일이 즐거웠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고치는 일이 낯설었다. 여성스럽지 못해 속상했다.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와 여성 사이

 

진로를 생각하면서 나와 ‘여성으로서 나’ 의 갈등은 최고조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봐왔던 언니들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기에 결혼하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위한 희생이 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만난 지인이 “너는 엄마 잘 할 것 같아. 칭찬이야”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삶인데 왜 당황스럽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내가 가진 차이는 성별 하나뿐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예견되고 확정됐다.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가 낯설고 불편해진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불쾌감은 당연히 따르던 여자의 삶에 대해, 또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지금까지 좇아오던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그동안 나는 왜 부끄러워야 했는지, 왜 여자는 자신의 꿈을 꾸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자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들이 버거웠고, 여성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던 불편함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었다. 처음 여성혐오를 접했을 때는 그저 여성을 혐오하는 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모든 차별과 멸시, 고정관념까지 통틀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혐오에 물든 사회와 싸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별에 반대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스러움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너 자신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가, 아내가, 엄마가 될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위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또한 고통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싸워야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성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특히나 평생을 몸담은 교회는 말씀으로 여성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고 단죄하며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다. 교회는 독립적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돕는 배필,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를 원한다.

 

 이미 여성혐오에 길들여진 나는 주어진 여성성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검열하는 데 익숙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렵다. 혼자서만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지만, 그를 표현하기는 두렵다. 혼자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슬퍼진다.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여성스럽지 못하게 여겨진다. 나는 자꾸만 드세고 불편한 여자아이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먼 사이가 된다. 섬세하지 못한 말들이 아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다.

 

 여성혐오를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남들을 지적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여성혐오가 들어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성혐오를 알아버린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혐오는 너무나도 만연하다. 숨 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혐오때문에 숨이 막힌다. 여성혐오는 우리의 일상에, 관념 속에 존재하고, 심지어 강의실에도 존재한다.

 

 

 

*달란트 시장: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보상으로 달란트 시장에서 화폐에 상응하는 달란트를 지급하고, 학생들은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와 교회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교환할 수 있다.

 

  

다음 기사 -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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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기사 2017.09.11 21:56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최초입력 2017-09-11 21:56

최종수정 2017-09-11 22:48



강의실 안 여성혐오

엄마라는 존재


17-1학기, 한동대 A 교수는 수업 중 한 여성이 남편의 폭력과 가난 때문에 아이들과 동반 자살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그 중심에 가보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냐면 저는 무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는 거예요. 또 하나 뭐냐면 오해하는 거예요. 뭐냐, 이 엄마는 엄마가 뭔지를 모른 거예요.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지 자식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 엄마는 모른 거예요”라며 “아빠가 때리는 거를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핵심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몸가짐을 조심히 해라”, “담배 피우지 마라” 등등 많은 걱정과 조언을 듣는다. 여성은 인생의 목표와 의미가 출산과 육아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에 따른 여성의 희생을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당연시하고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 이러한 모성애 숭배는 여성에게 족쇄가 된다. 절대적인 모성애가 강요되고, 엄마는 인간보다 앞선 속성이 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엄마’가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역할은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한 잣대로 평가 받는다. 엄마의 사랑, 모성애는 절대적이야 하기 때문이다. A 교수의 발언 속에 고인의 남편과 가정폭력 소리에 무감했던 이웃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의 책임과 역할만 존재한다. 그녀의 마음은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그렇게 한 여자의 서사는 엄마라는 이름 뒤로 사라진다.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영아 유기·살해사건은 엄마만 강조된다.

 

 

 이 같은 관점은 많은 언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아 유기∙살해사건이 일어난다. 기사들은 ‘비정한 엄마’, ‘친모’, ‘30대 女’를 비판하기 바쁘지만, 아버지에 대한 보도는 없다. 엄마가 아이를 버리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죽더라도 아이를 지켜야 할 엄마의 존재와 본분을 잊은 모정 없는 이기적인 엄마만이 존재한다. 영아 유기사건 현장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엄마만이 존재한다.

 

 위 발언은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이며, “아이들을 살리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처럼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하여 보는 관점은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게재했다.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 지도

 

 

 이 지도는 국내 지역별로 합계 출산율,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15세에서 49세 여성의 수를 공개하고, 지역별로 순위를 매겼다. 정부는 생물학적 성과 연령만으로 가임 여부를 판단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여성은 임신이 가능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으로, 숫자로 표현됐다. 개인의 지향이나 계획은 무시됐다. 가임기 지도에 인격체는 없었다. 생산 능력을 가진 자궁만이 존재했다.

 

 

여성혐오를 만난다면

 

누군가는 A 교수의 발언이 불편하지 않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A 교수의 발언이 당신이 겪고 있는, 겪어야 할 차별과 혐오를 담고 있지 않았거나, 그 차별과 혐오에 적응하고 당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말에서도 여성혐오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게 지나치던 여성혐오를 의식하는 일은 불편하다. 여성혐오는 옆에 앉아있는 팀원에게서, 내 가족에게서, 나에게서, 그리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한번 잡아내고자 마음을 먹으면 일상의 모든 언어와 싸워야 한다. 누군가는 여성혐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네가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삶이 편해진다. 말하는 일은 두렵고, ‘포용과 이해’라는 명분으로 참고 방관하는 일은 익숙하고 쉽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잘못보다는 지적한 사실 자체가 더 비난 받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늘 그래왔다는 것, 몰랐다는 것으로 옹호된다.

 

 여성혐오를 하는 모든 사람이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여성혐오적 가치관을 학습 받은 일종의 피해자다. 여성혐오는 성별을 가려서 삶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는 남성들에게도 억압이 된다. “남자니까 ~ 해야지”, “남자답게 굴어” 라는 말로 개인의 감정과 자유를 억압한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내에서 ‘남성다울 것’, ‘여성다울 것’을 강요 받는 억압과 폭력의 희생자이다.

 

 

 

 

 

 여성혐오를 인정하는 일은 삶 전체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낯설고 아픈 과거를 대면하기보다는 잘못된 혐오를 옹호하고 감싸고 싶을 것이다.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혐오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해야 할 일은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를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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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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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①

최초입력 2017-06-12 10:55

최종수정 2017-06-12 11:12


 

 

한동대 휴학생 A씨. 그(녀)는 동성애자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 7살때부터 20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동성만을 사랑했다. 선택이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성에게 마음이 향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한동대에서 말하고 다니지 못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을 죄인이란 딱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던 A씨의 한동대 일상은 어땠을까.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제자, 누군가에겐 선배 또는 후배, 누군가에겐 룸메이트, 혹은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던 일상

 

Q 한동대에서 동성애에 관한 대화로 불편을 겪으셨던 적이 있나요?

 

어디에나 동성애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자신의 주변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괜히 혼자 속으로 땀을 흘렸어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연기’가 늘어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도망가고 싶은 기분일 거예요. 속으로 여러 다른 생각을 하며 침묵하게 될 것이고요. 지금의 저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표정관리’ 할 수 있게 됐어요.

 

Q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표정관리를 한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한동대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면 ‘생존’에 위협을 받아요. 특히, 한동대는 동성애가 죄라는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조심하게 돼요. 동성애자인 것을 들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저를 볼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무서워요. 제 이미지가 이전까지 아무리 좋았더라도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거죠. 기독교인이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낙인 찍잖아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들키는 순간 그 목소리가 저를 향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괜찮은 척 연기하고, 표정관리를 해요. 제가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면 정말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Q 동성애자로서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오래전 일이에요. 한동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동성애자들은 그 안에 귀신이 들어있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싶었죠.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결국, 제 이야기니까. 어차피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어떤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탄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어요. 실제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며 책자를 뿌리는 곳도 많잖아요. ‘식성’이니 ‘에이즈’니 하는 이야기로 이게 바로 동성애자들의 실체라며 뿌리는 책자들이요. 저랑은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뿌려진 혐오, 새겨진 낙인

 

Q 얼마 전 한동대에서 ‘동성애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열리고,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란 책자가 뿌려졌죠.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모든 동성애자도 다양해요. 그런데 극단적인 면만을 보고 모든 동성애자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탈동성애를 했다는 분이 동성애자의 삶을 폭로한다면서 동성애자의 문란한 삶을 이야기했죠. 왜 그 사람이 동성애자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저의 경우는 정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다를 게 없어요. 저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정말 오래 좋아하고 그 사람밖에 몰라요. 아무리 짧아도 최소 2년은 계속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싫어요.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동성애라고 하면 대부분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니까, 저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가진 적도 없어요.

 

Q ‘동성애자=에이즈’, ‘동성애자=문란한 성’이란 인식이 한동대에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성 간에도 사랑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죠. 성관계가 전부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라고 아무에게나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동성과 성관계를 하려고 난리가 난 것도 아니에요. 성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왜 동성애라고 하면 다 동성애 ‘행위’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부끄러워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손잡고 싶죠. 좀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어요. ‘동성 간의 결혼도 안 되는데, 이미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죄인데, 무슨 혼전순결이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래요.

 

Q 동성애자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을 것 같아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향해 타인들은 ‘동성애자’라고 부르잖아요. “쟤 동성애자야”, “쟤 게이야”, “쟤 레즈비언이야”, 이런 식으로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한 인간을 동성애로 규정짓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이름이나 다른 특징들보다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거죠.

 

Q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한동대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뭐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저는 우리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서 조금 위로가 됐어요. 저와 같은 분들도 그분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는 우울함과 고독함이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요,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나는 ‘누구누구다’라고 말하길 바라요.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부르지 말고. 예전의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고, 지금의 저에게도 계속하는 말입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같이 힘내요.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②

 

 

 “제겐 동성애와 기독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학교의 입장(이하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한동대 휴학생 A씨가 밝힌 소감이다. 동성애를 반기독교로 상정한 공지를 읽으며, 동성애자 A씨는 슬픔에 잠겼다.

 

 A씨는 기독교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A씨는 교회가 두려웠다.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A씨는 ‘동성애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족을 의식해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17년 5월 24일. A씨의 모교인 한동대는 그(녀)를 또다시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친구, 선생, 선배, 후배, 룸메이트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A씨는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온전한 존재로 디딜 공간이 한동대에는 없는 듯하다.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A씨는 동성애자로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오갔을까. A씨의 심경을 들어보자.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고 처음 받았던 느낌은?

 

처음 읽었을 땐 담담했어요. 교회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뻔하고 뻔한 내용. 기독교인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인에 동성애자는 포함이 안 되겠지만요. ‘죄는 죄라고 말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나름의 만족과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교의 사랑을 지켜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발표 내용도 정석 답변으로밖에 안 느껴져서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에요. 계속 씁쓸해요. 무슨 씁쓸함인가 생각해봤더니 ‘단절감’이에요. 공식 발표에서 말하는 ‘우리’에서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한동대 학생인데, 지극히 타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슬프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동성애를 원한 게 아니니까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어요. 저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처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지만 이미 저는 존재하고 있네요.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네요. 제가 제 의지로 선택한 것도 아니죠. 이성애자도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이성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예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동성애로부터 치유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요. 동성애가 정말 치유돼야 하고, 치유가 가능하다고 쳐봐도요. 인권 보호 측면에서 동성애를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말이 안 돼요.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인권 보호랑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죄인을 죄로부터 돌려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기독교 입장에서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이건 인권 보호보다는 치유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동성애 한동대 입장>에 등장하는 ‘치유’라는 단어 속에서 저는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동성애 치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치유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했을지 의문이네요. 제가 느끼기엔 그냥 저를 철저히 대상화시킨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정작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관심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까요? 동성애자에게 동성애는 죄라는 사실을 계속 권고해주면 치유가 되는 건가요?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작 치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건가 싶네요.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를 치유할 사람은 그들이 아님이 분명해요.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제 성향을 밝힐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동성애에 개방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 성향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운데.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제 성향을 밝힐 수 있겠어요. 누가 동성애자인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치유한다는 건지 의문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닌 상태에서 저의 성 정체성을 먼저 알았다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교회에는 가지도 않았겠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니까요.

 

 

‘나=동성애자’가 아닌, ‘나=나’

 

Q 역설적으로,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요?

 

저에게도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었죠. 제게 치유는 제 친구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을 때 일어났어요. 제가 제 정체성을 친구에게 고백했을 때요. 친구의 대답이 무서워서 숨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어떠한 당황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고 도망가지 말라’고 절 붙잡아줬어요. 그때의 친구 반응에 진짜 머리를 돌로 맞은 것 같았어요. 저에겐 성 정체성이 저의 정체성의 전부였는데. 친구의 반응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나=동성애자’가 아니라 ‘나는 동성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 나는 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가능했어요. 저의 성 정체성이 저의 전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과장이 아니라 그때 정말 구원받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동성애자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닫았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제 정체성을 밝히지 않더라도 저의 다른 특성들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인식이 가능해졌기에 ‘하나님은 그래도 날 사랑하실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지 싶어요.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Q 동성애를 ‘반대’하며 동시에 ‘치유’하자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서 참 부럽다, 운 좋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성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은 동성애를 빗겨나가 다수의 입장에 서게 된 운 좋은 사람들이죠. 동성애자가 아니어서 동성애에 대해 죄책감 없이, 쓰라림 없이, 마음껏 죄라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치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확실한 건 저와 같은 동성애자들을 교회로부터 밀려나게 할 것이란 사실이에요. 교회 안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가 동성애는 죄라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계속 죄책감을 주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면, 언제까지 교회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교회 밖 사람들이 저에게 더 열려 있고 친절하니, 저를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가 가야 할 곳은 교회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도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굳이 죄인이라고 낙인 찍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겪어야 하는 힘든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이를 발표한 사람들과 동성애자들 사이에 견고한 벽 하나를 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네요. 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려고 하는지.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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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총장 업무추진비, 누구와 썼을까?

 

최초입력 2017-06-01 20:28

최종수정 2017-06-01 20:28


 

한동대 장순흥 총장은 14년 2월 취임 이후부터 16년도까지 약 4천 8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이 업무추진비를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남아있는 기록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 방법을 정해놓은 지침은 없다. 교육부는 국립대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렸다.

 

한동대는 총장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에 관한 규정이 없다.

 

 

‘외부’에 ‘식비’로 사용된 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란 단체의 장이 기관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이는 비용을 말한다. 외부 손님을 위한 식사 대접부터 회의에 필요한 다과 구매까지, 그것이 공적 업무라면 업무추진비는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장 총장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은 △14년도 약 1천 890만 원 △15년도 약 1천 830만 원 △16년도 약 1천 80만 원의 업무추진비(총합 약 4천 800만 원)를 사용했다.

 

 총장은 업무추진비 대부분을 ‘외부’에 ‘식비’로 지출했다. 한동대 비서실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장 총장은 외부인사 접대비로 약 4천 400만원을 지출했다. 이는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1.2%에 해당한다. 나머지 8.8%(약 400만 원)는 내부에 사용했다. 교내 간부직원이나 교내 학생 및 동문 식사비로 약 400만 원을 지출했다. 지출 항목별로 살펴보면, 장 총장은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2.2%에 해당하는 4천 430만 원을 식비(다과 포함)로 지출했다. 나머지 7.8%(약 370만 원)는 교통비와 외부인사 선물 구매 등에 사용됐다.

 

 

명확하지 않은 목적과 대상

 

문제는 장 총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언제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는 업무추진비 사용의 목적과 대상이 명확히 쓰여 있지 않다. 일례로, 장 총장은 14년에 언론계 인사 식사 대접 및 포스텍(POSTECH) 행사찬조에 225만 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함께 식사한 이들의 소속과 명 수가 적혀있지 않으며, 어떤 목적으로 몇 회의 식사를 했는지도 명시돼 있지 않다. 15년도에는 ‘포항언론인클럽’에 4건의 식사 대접으로 124만 원의 업무추진비가 사용됐지만, 이 역시 목적이나 명 수는 적혀 있지 않다.

 

 총장이 업무추진비로 구매한 선물도 누구에게 갔는지 알 수 없다. 장 총장은 업무추진비로 △14년도 60만 원 △15년도 57만 원 △16년도 140만 원 가량의 선물을 구매했다. 선물 품목으로는 △커피 원두 △텀블러 △화장품 △차(tea) △건어물 등이 있다. 그러나 선물들이 향한 곳은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인사’라고 추측될 뿐, 누구에게 줬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상이 적혀있는 경우에도 “UN관계자”, “한동대 후원자” 등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다.

 

 한편, 회비를 업무추진비로 납부한 사례도 있었다. 장 총장은 14년에 ‘국가조찬기도회비’ 납부 대금으로 업무추진비 5만 원을 사용했다. 이 경우 역시 업무추진비로 회비를 낸 이유나 목적은 명시돼 있지 않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 관계자는 허술하게 공개된 총장 업무추진비는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업무추진비를 공개했을 때는 대학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비용에 썼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판별할 수 없다고 한다면 공개의 가치가 없는 거다.”

 

 

사립대학에 없는 업무추진비 지침

 

전국 사립대학은 일정 기준 없이 업무추진비를 사용 및 기록할 수 있다. 교육부가 전국 국립대학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지시로 올해부터 전국 국립대학은 총장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목적과 상대방의 소속, 성명을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해당 지침에서 제외됐다. 이에 한동대도 총장 업무추진비의 사용과 기록에 관한 지침이 없는 것이다.

 

 대교연 관계자는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 규정을 지정하지 않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사립대학도 국립대학과 마찬가지로 공교육을 이행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다. 이에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사립대학이 반대하니, 교육부가 할 생각을 안 한다. 그렇기에 어떤 내용으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해야 하는지 기본적 틀도 없는 거다.”

 

 교육부는 사립대에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유선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는 “저희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 유선으로 직접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검토 후 답변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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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교목실, “동성애 치유 받도록 인도하는 것이 인권 회복”

 

최초입력 2017-05-24 13:31

최종수정 2017-05-24 13:37


 

 

 

“총장∙(학사)부총장∙교목실장∙학생처장 합의한 내용”

총학생회, “해당 내용에 대한 공유가 되지 않았다는 점 유감”

 

 

한동대 교목실은 24일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에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한동대 교목실은 △동성애 행위는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하는 것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문화적 추세로서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 △동성애 행위는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오는 것 △동성애를 치유하는 것이 참된 인권 회복이라 주장했다.


 위 발표는 한동대 교목실 입장이 아닌 ‘한동대’의 입장으로 공표됐다. 23일 한동대 장순흥 총장이 교목실 공지를 최종 확인 및 동의했기 때문이다. 한동대 교목실 최정훈 교목실장은 “나 교목실장, (학사)부총장님, 학생처장님, 학보사 주간교수, 제양규 교수가 정식으로 모여 같이 만든 것(내용)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장 총장님이 허락하셨다. 이에 한동대 입장이다”라며 “장 총장님은 해당 공지 제작 과정도 알고 계셨지만, 정식으로 허락한 건 어제(23일)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한동대 총학생회와는 합의되지 않은 발표였다. 한동대 제22대 총학생회 ‘기대’는 공유 없는 교목실의 동성애 공식 입장에 유감을 표했다. 총학 김기찬 회장은 “교목실에서 어떤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달받은 바 없다. 한동대 공식 입장으로 표명된 만큼 학생대표기구인 총학생회와 해당 내용에 대한 공유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총학은 한동대 교목실 발표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총학 김기찬 회장은 “(교목실 발표에) 집행부 차원의 공식적 입장 답변은 바로 드리긴 어렵다”라며 “이 전에 교목실과 관련된 논의가 오간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한동대 교목실의 발표는 교수사회와도 공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동대 교수는 “오늘(24일) 아침 교수 채플에서 최정훈 목사가 갑자기 발표했다. 교수님 일부는 (교목실의 동성애 견해를 듣고) 왜 갑자기 발표하는지 의아해했다”라며 “이것이 왜 한동대 입장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떻게 한동대 입장으로 정해졌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우리’의 입장이라 적었는데, ‘우리’가 모든 우리를 담고 있느냐. 그것은 대단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교수협의회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최 교목실장은 “문제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은 총학과도 같이 의논해야 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리더십이 하는 것 같다”라며 “저희는(교목실은) 학교 전체에서 결정한 신학적 입장의 발표를 돕는 것이다. 내가 비록 발표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총장님 대신해서 발표한 거다”라고 말했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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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한동대 교목실 공지 전문

 

한동대학교에서는 동성애에 관한 공식적인 선언문을 작성하여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대한 한동대학교의 신학적 입장

2017 5.24

 

현시대에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 문제의 심각성

최근 현대 사회에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의 강한 도전이 있다더욱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 교회들 안에서 일부 지도자와 평신도가 동성애 합법화를 지지하면서 그것이 기독교 윤리에서 정당하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성경의 계시와 기준에 충실하려는 복음주의 교회들과 지도자들은 큰 우려와 함께 동성애의 합법화가 반 성경적이며 반 기독교적임을 선언하고 있다성경의 계시를 중시하는 한동대학교는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들과 신앙관을 같이 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선언한다.

 

1. 우리는 동성애 행위가 성경적 진리와 윤리관에 반한다고 믿는다

성경은 남자가 여자와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함으로써 성()의 기능이 남녀의 부부로서의 합일을 위해 준 것임을 분명히 한다( 2:24). 그것이 성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임을 믿는다그래서 성경은 모호함 없이 동성애의 행위를 성에 대한 왜곡으로 단죄하며 금한다이러한 단죄와 금지는 구약에 명시되어 있으며( 18:22; 20:13) 신약도 그 금지를 잇고 있다( 1:26-27; 고전 6:9-10). 구약의 어떤 규례는 신약에서 폐지되기도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금지의 법은 폐해지지 않았다.

 

2. 우리는 문화 안의 대세보다 성경의 계시를 기준으로 삼음을 분명히 한다

문화 안의 어떤 가치는 성경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가치는 충돌할 수도 있다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문화적 추세로서 비록 문화 안의 대세가 그것을 지지해도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따라 그것이 창조질서에 어긋난 것임을 선언한다.

 

3. 우리는 동성애 행위가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옴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죄로 단죄하고 금하는 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단죄와 금지가 아니고 그것이 인간의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건강과 직결된 것이기에 단죄하고 금한다고 믿는다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동성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1:28)라는 하나님의 명에 역행한다고 믿으며 그러한 역행은 장기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성경적 가정제도와 그것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구조에 해와 병을 가져옴을 믿는다.

 

 4. 우리는 동성애로부터 치유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참 인권보호 임을 믿는다

우리는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권을 가진 사람들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는 존중하나 동성애로부터 치유받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참된 인권의 회복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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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없는 한동신문, 논란의 ‘동성애’ 칼럼


최초입력 2017-05-17 15:22

최종수정 2017-05-17 15:58





지난 4월 11일과 5월 2일, 한동신문사는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는 외부칼럼 두 개를 연이어 게재했다. 두 칼럼은 각각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 반대’, ‘동성애 합법화의 문제점’을 주장해 한차례 논란이 일었다. 동성애는 합법화 대상이 아니라는 비판부터 해당 칼럼들은 혐오발언이라는 등 독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한편, 논란이 되는 칼럼을 연이어 게재한 한동신문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이은 ‘동성애 반대’ 칼럼


한동신문사는 지난 2일 발행한 제242호 지면에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는 교수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합법화를 통해 동성애가 보호되면 가장 큰 문제점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많은 국민들의 양심과 표현, 종교와 학문의 자유가 억압되는 데 있다”라며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보호되면 에이즈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성애는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해 보호받는 소수자와는 달리, 자율적 선택에 의한 동성애자는 소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동신문사는 제241호 지면에서도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외부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최근 우리 한국 사회는 ‘동성애와 동성혼’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사회 전방위적 차원에서 맞이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중요한 것은 동성애와 동성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도전할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자라나는 차세대에 매우 큰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동신문사는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칼럼을 연달아 실었다




“제목부터 틀렸다”


교수칼럼이 페이스북에 게시되자 독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신문’에는 “제목부터 틀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 아닙니다. 동성결혼이 법제화 안 된 것입니다”, “성소수자 혐오가 가득한 저 글은 범죄의 소지가 없는 건가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한동인 모임(이하 혐오반대 모임)도 비판에 나섰다. 혐오반대 모임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양심과 표현, 종교와 학문의 자유가 아니다”라며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그 형태가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타인이 반대하거나 옹호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동대 학생 고영훈(언론정보 12) 씨는 “소수자 차별과 혐오발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대상일 수 없다”라며 “한동신문사는 연속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포함된 칼럼을 실은 것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은 지면?


한동신문사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이 되는 칼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동신문사는 “한동신문 10면 ‘생각 면’은 본지의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는 지면입니다”라며 “‘생각 면’은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에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 욕설, 범죄의 소지가 있는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을 싣습니다”라고 전했다. 한동신문사 한결희 편집국장은 “저희가 내세웠던 기준에 비춰서 최소한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현행법이라든지 이런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최소한의 기준에 어긋났다면 글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칼럼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동신문사가 페이스북에 밝힌 입장


 

 이에 혐오반대 모임은 “두 칼럼은 인간에 대한 엄연한 비난과 폭력,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범죄의 소지가 있는 글이다”라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칼럼들의 게재를 승인한 한동신문사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주재원 교수는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표현이라고 본다”라며 “예를 들어, (언론사가)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칼럼을 실어놓고 ‘편집방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무책임하거나 아니면 무능력하거나”라고 말했다.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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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이사장과 한동대의 앞날

 

최초입력 2017-05-11 09:54

최종수정 2017-05-11 10:20


 

 

올해 나이 마흔 여덟의 최연소 이사가 지난달 13일 한동대 이사회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사회의에 참여한 10인의 이사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결과다. 새로운 이사장의 임기는 20년 11월 26일까지다. 연임을 하지 않더라도, 그는 한동대 이사회의 수장으로 약 3년 반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이름은 이재훈. 현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이자 *CGNTV(글로컬 선교교육방송)의 이사장이다.


 

 이사회는 한동대의 회계, 재산 처분, 총장 및 교수 임명 등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집단이다. 이에 한동대에게 이재훈 이사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 이사장의 생각에 따라 한동대 정관이 변경될 수도, 수익 사업이 시작될 수도, 총장인선 과정이 개정될 수도 있다. 이 이사장은 앞으로 한동대에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지난 4일, 온누리교회(서빙고) 담임목사실에서 그를 직접 만나 물었다.

 

 

한동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막내 이사부터 이사장까지

 

 

Q 이사장이 된 소감?

 

저는 온누리교회를 이끌어가는 책임이 있다. 때문에 이사장이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온누리교회가 이 시대에 가지는 주요한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사장이란 일에 있어서 정치적인 운영으로 한동대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파트너십과 한동대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하라는 부르심으로 알고, 무거운 마음이지만 받아들이게 됐다.
 

Q 현 이사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이사장으로 선임된 과정이 궁금하다.

 

나이를 넘어서서 한동대 비전에 얼마나 공감하느냐, 모든 한동대 구성원들을 하나의 가족으로서 융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평가한 게 아닐까. 
 

Q 13년 3월 한동대 이사로 들어오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이사회에서 초청을 해주셨다. 어느 분이 어떻게 초대한지 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른다. 제가 이사가 되고 싶다고 지원한 건 아니다. 목회하는 사람이 이사회를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소명으로 생각한다. 온누리교회는 한동대가 태동하는 데 기여했고, 보이지 않게 많은 협력을 해왔다. 사회적 통로로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 담임목사로서 교육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올바르다는 생각이다.

 

Q 신임 이사장으로서 한동대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가?
 

기독교 대학이란 어떤 대학인가를 한동대가 한국사회에서는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흐름 자체가 변화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보완한다면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적인 탐구와 사회의 적용이다. 그러니까 교리에 갇힌 세계관이 아니라 세상 속에 확장성이 있는 세계관. 그것을 위해 한동대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동대 재정 안정화 작업 시작?

 

 

Q 한동대는 매번 재정난에 허덕인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유지돼왔던 대학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공급하시리라 저는 믿는다. 이 일에 같이 헌신할 사람들이 있다고 저는 믿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선한 후원자들에 의해서 학교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이런 신앙 고백 위에서 이사회는 재정확보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 정부만의 눈치를 보는 대학이 돼서도, 등록금만 의존하는 대학이 돼서도 안 된다. 대학을 운영해가는 이사회로서 재정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한 여러 계획을 갖고 있다.

 

Q 그 구체적인 계획이 뭔가?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 이사회에서도 한번도 이야기 안 한걸, 밖(언론)에 이야기 하는 건 순서가 맞지 않다. 이사회에서 받아들이면 그때 밖으로 알려져도 되지 않나. 실행 가능성을 확인해봐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 가능성을 확인해야 이사회에 제출하는 거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추진하려 한다. 막연한 후원 이상의 재정적인 건실성을 가지도록.

 

Q 최근 ‘의학신문에 예수병원이 한동대와 결합을 모색하고 있다’라는 기사가 떴다. 연관이 있는가?
 

전혀. 이사회에서 논의된 바가 없다. 선린병원 때 한동대가 어려움을 크게 겪었기 때문에 다시 의대를 추진하는 일은 없을 거다.

 

 

 

‘총장인선’은 한동대 이사회와 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16년 8월 26일에 이사회는 한동대 총장인선 정관을 개정했다. 한동대 내부구성원(교수, 학생, 교직원, 동문 등)은 총장평가 및 최종 선정에 배제돼 있었다(본지 ‘참여와 배제 사이, 총장정관’ 참조). 해당 정관 개정을 놓고 이사와 학내구성원은 16년 12월 14일 한동대 채플별관 3층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그리고 서로의 간극을 확인했다. ‘민주적 절차’를 요구하는 학내구성원에게 이사는 ‘하나님은 왕권주의’라고 답한 것이다. 아직 양측의 의견이 봉합되지 않은 이때, 이 이사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 이사장에게 총장인선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총장인선과 기독교

 

 

Q 학내구성원들이 총장인선에 더 많은 참여를 원한다.

 

두 가지로 나눠 말하고 싶다. 일단 ‘소통’. 소통은 매우 필요하다. 제가 정기적으로 학교에 가서 어떤 구성원이든지 자유롭게 대화하겠다. 이사장이 수님, 학생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대학은 없다. 한동대만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열린 마음으로, 여러 구성원들과 대화를 할 것이다. 문서가 아니라 직접 듣고, 대화로. 학내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소통은 언제든, 얼마든지.

 

 ‘총장인선’은 다각도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학내구성원이 참여해서 선출하는 민주적 절차의 다른 대학을 보자. 교수들끼리 서로 정치적으로 싸워서 기독교 대학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모습들. 제가 기독교 대학 이사를 다 했기 때문에 비교가 된다. 어떤 절차이든지 100% 완벽한 것은 없다. 좋은 케이스를 가져오라는 거다. 그러니까 기독교 대학이지만 기독교적이지 않은 모습들이 많다.

 

Q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정치적이다. 상당히 서로 헐뜯고, 다투고. 인간의 죄성이 너무 나온다. 그러니까 민주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정치판이 된다. 그게 기독교적인 대학인가. 저희 이사회는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듣되, 몇 사람씩 각 파트에서 나와서 같이 투표하고. 그건 굉장히 다른 차원의 질서다.

 

Q 최종 결정 권한이 이사회에 있음은 변함없는데?
 

그렇게 해서 (총장인선절차 제정TFT(이하 총장인선TFT)가 제시한대로) 하는 대학들이 한동대가 모델로 하는 대학인가. 이사회가 설득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세속적(secular) 대학을 우리가 추구할 건가. (총장인선TFT가) 모델로 가져온 것은 지극히 우리나라의 세속적 대학을 모델로 제시한다. 저는 리더를 뽑는 과정도 신앙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동대 총장은 어떤 대학의 총장과도 다르게 기독교적인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인선위까지 구성원들이 다 남아서 참여하는 방식은 일반 대학의 일부 모습이다.

 

Q 인선위원회에 학내구성원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한동대가 세속적으로 변할까?
 

그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을 의존하고 있는 대학들이 추구하는 모습들이 그런 방식에서 나오는 총장들의 그러한 모습들에서 바람직한 모습들이 나온 모델이 있느냐. 내가 알기로는 그런 모습이 없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러니까 사실은 각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정보가 조금 없다고 본다. 제가 주변에 있는 분들을 여쭤보면 총장인선TFT가 제시하는 그런 방법으로 하는 대학들이 있다. 그런데 (총장인선TFT가 제시한 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부작용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대표자 검증, ‘투표로는 부족하다’

 

 

Q 그때의 부작용을 정확히 말씀해줄 수 있나?

 

예를 들어서 그 대표자가 어떻게 선출되느냐. 그 구성원들의 선출 방식으로 보면, 투표다. (투표로 선출된) 학생대표의 신앙적인 것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 그 사람들을 선출하는 모든 과정 자체가 아직도 사실은,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믿고 큰 포션을 줄만할 수 있느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Q 한동대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재학생 설문조사 시 약 90%의 응답자가 본인을 기독교인이라 말한다. 역대 총학생회 중 기독교를 표방하지 않은 집단은 없다.

 

그건 조금 다른 각도다. 기독교에도 여러가지 신앙의 칼라가 있는 거니까. 신뢰하지 않는다까지 가면 너무 오바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신뢰할만한 검증 과정이 단지 투표로 됐다라는 것 자체로는 좀 부족하지 않냐는 생각이다.

 

Q 이사회의 신앙적 색을 한동대의 신앙적 색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현 정관을 유지하자는 것인가?
 

그렇게 말을 만들면 안 된다. 기독교내에서도 스팩트럼이 다양하다. 사회진보적부터 극우, 문자주의까지. 심지어 이단 사이비까지 기독교라고 한다. 그걸 어떻게 투표로만 하기에는. 이사회 구성원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조사한다. (이사로) 들어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거의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물론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리는 방식도 부작용이 있다. 현재 방식이 100% 옳다는 게 아니다. 총장인선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은 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몇 사람씩 나눠서 하는 방식이 성경적이라고 이야기 할 근거는 없다. 그럴 만한 확신이 없다. 서로의 신뢰 관계 가운데 좋은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 정관이 완벽하다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Q ‘하나님은 왕권주의’라는 말이 있었다.

 

그건 적용을 잘못한 것이라 본다. 예를 들어 소수의 리더십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은 독재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불러 세우셨다. 그런데 (다윗은) 철저하게 아래로부터 수렵된 리더십이다. 광야에서 시련 당하는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각 지파로부터 수렴돼서 왕으로 옹립됐다. 그 과정이 사회적으로 볼 때면, 민주적 절차인 거다.

 

Q 마지막 한마디?

 

하나님 의지하면서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모으기 위해) 제가 학교에 자주 내려갈 것이고, 여러 채널을 통해서 의견을 수렴하겠다. 인격(character)과 의견(opinion)은 다르다. 의견을 스스럼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스-노를 자유롭게. 한동대도 어떤 이야기든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고 서로 적이 돼선 안 된다. 현재 한동대가 가진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갈 수 없을지라도, 서로가 하나되어 같이 풀어가자. 하나님의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를 한동대가 보여줬으면 좋겠다.

 

 

*CGNTV: Christian Global Network Television의 준말로 온누리교회가 2000년에 설립한 비영리 방송국.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합성해 ‘글로컬 선교교육방송’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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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홈페이지, 퇴고는 누구의 몫

 

최초입력 2017-05-04 11:45

최종수정 2017-05-04 11:56



 

 

한동대 공식 홈페이지(‘handong.edu’ 이하 한동대 홈페이지)가 미흡한 관리로 인해 △오탈자와 문법적 오류 △상징색 표기 오류 △생활관 정보 업데이트 미비문제를 안고 있다. 한동대 홈페이지는 학교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동대 홈페이지 관리자가 성실하게 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개혁방향에서 나타나는 오탈자와 문법적 오류

 

한동대는 한동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교육개혁방향에서 오탈자와 문법적 오류가 담긴 글을 홍보하고 있다. 한동대는 본교의 교육개혁방향에 대해 퇴고를 거치지 않고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한동대는 교육개혁방향에서 ‘교육수준’으로 명시해야 할 단어를 ‘교육수전’으로 오타를 냈으며, ‘사회 발전의 기초’라고 적어야 할 것을 ‘사회 발전의 가초’라고 기재했다. 이와 같은 오탈자는 교육개혁방향 글 전반에 나타난다.

 

 

 

 

 한동대 교육개혁방향에는 한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과 오탈자가 동시에 발견되는 문장도 있다. 한동대는 ‘팽창’으로 적어야 할 단어를 ‘평창’으로 기재했고, ‘학교의 받은 지식’이라는 한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동대 홈페이지 관리자인 대외협력팀 이완 계장은 이에 대해 “(교육개혁방향에 쓰여진 글은)  교육개혁사업으로 정부에 지원할 때 96년에 썼던 글로 알고 있다. 제가 부임하기 전부터 있었던 내용이라 리뷰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계장은 “(홈페이지를) 개편하더라도 이전에 있던 내용이니까 처음부터 읽어서 감수하지 않아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교육개혁방향을 퇴고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다.


 

한동대 상징색 표기 오류

 

한동대의 전용색상을 알려주는 상징색 표기에도 오류가 발견됐다. 우선, ‘PANTONE(팬톤)’으로 적어야 할 영단어를 ‘PANOTNE’으로 적었다. 이와 같은 오탈자는 물론, 한동대는 본교가 지정한 색의 CMYK  표기도 잘못 기재했다. 한동대가 지정한 CMYK 표기에 따라 보조색(Sub-color)을 구현하면, 본래 한동대가 제시한 색과는 전혀 다른 색이 구현된다. 보조색 ‘Coolgray2c’(아래 이미지에서 네 번째 색)를 구현하기 위해 한동대가 기재한 CMYK 값은 C:8, M:8, K:8이다. 한동대가 제시한 CMYK 값을 대입하면, 보조색 ‘Coolgray2c’는 본래 색상이 아닌 ‘Bluish white’값이 구현된다.

 

 

 
 한동대는 한동대 홈페이지에서 ‘가능한 위 색상을 재현시킬 수 있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관리자의 미흡한 검토로 인해 사용자는 정확한 색상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계장은 “대외협력팀에서 모든 정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한동디자인연구소)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다”라며 “(전문적 정보들은) 담당자 분들이 관리하는 게 맞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수정되지 않은 생활관 정보

 

한동대 홈페이지 관리자는 생활관 정보를 수정하지 않았다. 생활관 운영팀은 16년도에 생활관 규정에서 심야활동을 삭제하고, 외박만 규정에 남겼다. 심야활동은 23시 이후 교내•외 활동 시에 익일 01시까지 귀관하는 규정이었다. 17-1학기 현재 한동대 학생들은 외박 신청만을 통해 01시 이후에 생활관 밖에서 활동을 보장 받고 있다.


 

 

 

 

 한동대 홈페이지는 생활관 입주신청에 대한 정보도 수정하지 않았다. 한동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생활관 입주신청은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기록돼 있다. 이 정보는 사실이 아니다. 교내정보사이트에서는 더 이상 생활관 입주신청을 할 수 없다. 17-1학기 현재 한동대 생활관 입주신청은 한동대 RC 사이트(rc.handong.edu)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한동대 홈페이지 관리자는 업데이트 된 생활관 정보를 수정하지 않았다. 한동대는 정보를 찾고자 하는 교내의 학생과 외부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계장은 한동대 홈페이지 생활관 정보 업데이트 관련해서 “홈페이지에 나오는 자료 중 변동 사항 같은 경우는 메일로 통보돼야 작업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계장은 한동대 홈페이지 퇴고가 진행될 시점에 대한 질문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데, 지금 이 시기에는 학교 사업 보고서(LINC 사업 일환)편집사업이 우선사업이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확인을 못하면 그 사이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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