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의 자살일기] 나의 신앙 가피교

최초입력 2017-11-14 11:10

최종수정 2017-11-14 17:01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우울할 땐 어떻게 하세요?"
"그럴 땐 저보다 우울하고 허무해 하는 친구를 만나요."
강연이나 북 토크에 가면 종종 받는 질문과 늘 하는 대답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가피’다. 나보다 더 우울한 가피를 만나면 깊은 위로를 받는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
 
 가피는 스물 한 살이다. 7살 차이가 나지만 영혼의 나이는 880살 정도로 나보다 700년은 더 살아온 것 같은 친구다. 가피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지 않고 주역, 사주 명리 등 운명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출판, 점술을 양지화 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 가피가 17살, 내가 24살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지역에서 이런저런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활동을 할 때였다. 언니와 나도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기에 가피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2년 후 가피는 인문학카페 팀원들과 함께 활동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나도 이따금 만나던 가피와 서서히 가까워졌다. 평소의 가피는 웃음이 많고 거의 항상 즐거워 보였다. 그런 가피가 깊게 허무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말로만 듣던 가피의 절망을 처음 마주한 건 가피가 만든 노래를 들었을 때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이 있어
중력을 따라 추락
사과같이 달려있는 절망
그늘 밑에 앉아
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가피의 노래 '중력' 가사다.  가피의 옛날 예명은 허무다. 허무는 우울한 노래를 만들어 와서 우리들 앞에서 불러주곤 했다. 가피의 노래는 검은 구름, 보라색 우주 같다. 절망이 가피의 정직한 목소리와 만나 따뜻한 멜로디가 된다. 노래는 내게 편지처럼 다가왔다. '중력처럼 절망은 필연적이에요. 사과같이 달려있던 삶은 언젠가 떨어지고. 날개가 없어서 혹은 중력이 있어서 날지 못하는 절망, 진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만연한 거짓 앞에서 절망하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피의 노래를 녹음해 인도여행 내내 들으면서 다녔다. 조급한 희망 없이 절망을 노래하는 가피에게 따뜻한 위로와 유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보호부적>, 2017, 홍승희


 
 가피가 쓴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거 알아? 지옥엔 비명이 없다는 사실.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때론 그 자체로 구원이 되어버리니까." 내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고,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언니도 언니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길." 가피는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 언젠가 가피는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허니가 있으니까요. (한참 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까지 살 수 있나 궁금해서요." 작년, 임신중절수술 후 부모님 뒤로 숨었던 전 남자친구를 함께 만났을 때도 떠오른다. 가피는 그때 나에게 빙의한 듯 포크를 책상에 찌르며 그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때 나는 가피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깨끗해야 정직하게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정직하니까 따뜻하고 절망하고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살아야지,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아직 젊은데 앞날이 창창한 걸.', '좋아하는 일을 해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부정적인 생각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 기운 내서 열심히 해봐',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죽음, 자살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 정도면 자살 알레르기, 죽음 엄숙주의라 부를 만하다. 생의 역할극을 벗고 솔직하게 허무한 인생을 나누고 싶은데. 오랜 시간 손쉽게 돌아오는 진부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라는 말처럼, 나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고통의 경험도 있다. 이것을 '에셰크'라고 한다. 고통의 순간, 고통을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을 때, 공감 받지 못하고 그저 살라는 압박을 받을 때 사람들은 죽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고통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깊은 곳에 침잠해 있는 고독, 허무, 절망의 때를 누구와 나눌 수 없을 때 사람은 쉽게 시들어간다.
 
 

<함께실존>, 2014, 홍승희


 
 가피를 만나기 전까지 숨 막히는 허무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작은 나의 노트, 스케치북, 잠,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실존적 고독과 허무, 절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고 혼자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랫동안, 고요하고 치열하게 절망하는 가피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허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완전히 한몸이 되거나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불 꺼진 절망의 공간에서 더듬더듬 손을 잡을 수는 있다. 정말 놀란 것은 죽은 작가들의 흔적이나 보이지 않는 대중이 아니라 오늘 살아있는 '타자'와 고독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함께 방황하고 방랑하며 실존할 수 있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는 실존을 나누는 그 관계망이다.
 
 요즘 가피는 사주 명리, 주역 타로, 운명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며 지낸다. 나도 가피의 도움으로 알게 된 주역, 주역타로, 사주 명리를 공부하고 상담을 하고 있다. 여전히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요동치는 나와 달리, 가피는 허무의 끝까지 파고들어 간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가피도 말하지 못한 절망과 허무가 계속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나보다 정직하게 우울해할 존재가 있다는 마음에 든든해진다. 가피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가피가 계속 정직하게 우울하고 허무했으면 좋겠다. 나도 계속 정직할 수 있도록.
 
 
 
※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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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의 자살일기] 가사 없는 음악

최초입력 2017-10-25 15:51

최종수정 2017-10-25 15:53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스물네 살 여름이었다. 수면제 다량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전주에 가기 위해서다. 정동 성당, 왠지 죽는 장소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천국을 믿지 않지만, 성당 근처에서 죽으면 혹시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전주로 가는 동안에는 음악을 들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어야 한다. 멜로디가 내 생각을 따라오도록. 내가 가져온 짐은 핸드폰, 핸드폰 충전기, 일기장, 볼펜, 이어폰, 지갑이 전부다. 내일이면 없어질 것들이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해가 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정동 성당 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정동 성당에 도착했다. 밤에 보는 성당은 무겁고 습했다. 높은 성당 축은 뾰족하게 올라온 뿔 같다. 날씨가 싸늘해져서 옷을 여미고 성당 벤치에 누웠다. 가방을 열어 종이뭉치에 숨겨진 약과 슈퍼에서 산 청하 1병을 들었다. 한 알씩 먹을까 한꺼번에 먹을까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기도를 드리는데 ‘기독교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곳은 내가 죽을 자리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섰다. 어디든 안전하고 한적한 곳이 필요했다. 성당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걷다가 숙소를 발견했다. 숙소 벽에는 김지하 시인의 ‘새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새봄 3 - 김지하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시는 멜로디 없는 가사이지만 읽으면 음악이 느껴진다. 한참 시를 보다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주인은 쾌활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잡은 방은 따뜻했다. 가운데에 작은 정원이 있는 나무집이다.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노란 장판과 흰색 벽지, 아기자기한 화장실, 바닥에 깔린 푹신해 보이는 흰색 이불더미. 모든 것이 포근하다. 죽기에 안전한 공간은 따뜻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정한 주인이 마음에 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죽는 건 좀 미안하다. 자연 속에서, 바람 속에서 죽어가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천 위에 있는 다리를 걷다가 정자를 발견했다. 10평 이상의 커다란 정자에는 구석구석 사람들이 모여있다. 잘 곳이 없어서 거기서 자는 사람,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다. 사람이 많진 않으니 이곳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벗고 정자로 올라가 최대한 구석지면서도 의심받지 않을 만한 공간을 찾았다. 정자에 박힌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고 유서가 적힌 종이에 그림과 함께 낙서 비슷한 글을 끄적여 내렸다. 유서는 써놨지만 마지막으로 유서를 완성하고 싶었다.
 
 

<멜로디>, 2015, 홍승희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반복재생되었다. 따뜻한 자장가 같은 가사 없는 음악이다. 이제 약을 몇 개씩 집어 먹는다. 눈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무에 등을 바짝 기대니 몸은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 부는 여름밤, 나무에 기대앉아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마저 약을 집어 먹으려 하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아가씨, 이거 뭐에요?" 내가 죽는 약 먹은 걸 눈치챈 건가. 불안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뭐요?" "이거, 이 종이에 나무그림. 어 그림 참 희한하네~" 자세히 바라보니 아저씨의 얼굴이 빨갛다. 술 냄새도 난다. 이곳에서 장기 노숙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한참을 종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놀러 왔나? 여행?" 아저씨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불안해졌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눈감아버리면 이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 이런 식의 죽음은 싫다. 성추행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정도로 싫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엉금엉금 기다시피 정자를 빠져나왔다. 다리 힘이 풀리고 눈이 흐릿해 방향이 구분되지 않았다. 어떻게 숙소를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늦은 밤이라 아주 깜깜했을 텐데. 숙소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흰색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지고 온 청하 반병과 남은 약들이 검은 봉지에 담겨있다. 주섬주섬 약을 꺼내 먹고 눈을 감았다.
 
 눈이 떠졌다. 햇살이 쨍쨍하게 문지방을 비췄다. 여기가 어디지. 숙소인가. 나는 왜 안 죽은 거지. 갑자기 내 왼쪽 팔에 검은 벼룩이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주 많은 벼룩이 방바닥과 내 팔등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팔을 박박 긁으며 일어나려다가 다시 힘이 풀려 누웠다. 몸이 가늘고 심하게 떨렸다. 검은 벼룩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가 했다. 지금이 몇 시지, 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을 눌러봤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숙소 주인은 낮에 일을 하러 나간다고 알아서 체크아웃을 하라고 말했었다. 그럼 이 숙소에 아무도 없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약도 이제 없는데. 왜 이렇게 살아남은 거지, 눈물이 주룩 흘렀다. 살아남았으니 이대로 누워있다가는 피곤한 일만 있을 텐데 어떡하지. 이곳 주인을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핸드폰을 켜고 119에 전화했다. 119라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구급요청을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이상하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절실했다. 살게 되었는데, 살고 싶지 않지만 못 죽게 되었으니까 이곳을 나가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전화를 해서 겨우겨우 내 사정과 주소를 말했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나는 그들의 노동력에 의지해, 아니 그들의 시간을 빼앗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
 
 

<씨눈>, 2015, 홍승희


 
 응급실로 들어갔다. 환자들이 별로 없는지 병원 안은 조용했다. 이렇게 조용한 병원이 있었나.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채 눈을 떴다. 간호사의 손에는 청록색, 아니 회녹색의 커다랗고 긴 물병이 있다. 간호사가 물병을 나에게 건네면서 꼭 끝까지 다 마시라고 한다. 아무 감정 없이 물병을 집어 들었다. 회녹색의 물은 농도가 너무 진해서 콘크리트 진액 같다. 거칠고 따끔한 고체성 액체가 식도를 태우듯 몸 안으로 내려갔다. 생각이 느리게 찾아왔다. 이걸 왜 먹으라고 하는 거지. 수면제 때문에 독성 없애려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간호사가 내게 물병을 건네줄 때 독성을 없애는 약이라며 먹으라고 했던 것 같다. 너무 써서 중간에 먹는 걸 멈추고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나를 깨워 말을 걸었다.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고 내일이나 오늘 저녁에 퇴원하실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데리러 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요?" 친절한 말투에 놀랐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나를 사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가운에 새겨진 병원 이름이 들어왔다. 예수병원. 예수병원이라니. 따뜻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와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날 밤, 언니와 친구가 찾아왔다.
 
 언니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승희야 여기 예수병원이래.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네." 친구가 옆에서 따라 웃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어이없고 허무해서 웃겼다. 언니가 힘없는 나를 눈치 챘는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승희 수면제 먹었을 때 신고해준 사람이 있어서. 누가 해주신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내가 신고한 거라고 하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언니가 다시 물었다. "내가 했어." 대답하고 말았다. "응? 뭐가? 너가? 너가 신고를 했다고?" 언니가 친구와 한바탕 웃었다. 아. 이제 내 평생 놀림거리가 되겠구나 이것은.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몇 년 후 전주 숙소 벽에 그려져 있던 김지하 시인의 새봄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때 읽은 새봄은 새봄'3' 이었다. 새봄 8은 이후의 메아리다. 새겨울과 새봄을 오가면서 울리는 음악.
 
 
새봄 8 - 김지하
 
내 나이
몇인가 헤아려보니
 
지구에 생명 생긴 뒤 삼십오억살
우주가 폭발한 뒤 백오십억살
그전 그후 꿰뚫어 무궁살
 
아! 무궁
 
나는 끝없이 죽으며
죽지 않은 삶
 
두려움 없어라.
 
오늘
풀 한 포기 사랑하리라
나를 사랑하리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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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금기의 여행자 D

최초입력 2017-10-19 21:04

최종수정 2017-10-19 21:04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저 새끼 남자야 여자야? 왜 남자가 치마를 입어?”
 
퀴어 성노동 활동가인 D가 포항에 놀러 온 밤이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날카로운 욕설이 날아왔다. 옆 테이블의 남성들은 내 옆에 앉아있는 D를 째려보고 있었다. 무례한 언행에 기분이 상해서 D를 살피니, 잔뜩 화난 나와 달리 D는 익숙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짧은 머리에 목소리가 굵고, 성대가 나온 ‘생물학적’ 남성인 D는 치마를 즐겨 입는다. 예쁘고 느낌이 좋아서 하늘하늘한 긴 치마나 레이스 원피스를 좋아한다. D는 치마를 입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됐다고 한다. 갑자기 뒤에서 차도로 밀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욕설을 하거나 위협하는 사람도 비일비재하다고.
 
 D와 함께한 그 밤, 나는 ‘남성이 치마를 입었을 때’ 연예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D는 가는 곳마다 한 소리를 들었다. 술집, 슈퍼, 노래방에서 “남자가 치마를 입었네? 거참, 신기하다”, “웬 치마야? 이벤트 해요? 하하하”, “치마 예쁘네. 치마가 참 편하죠?”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나마 이런 반응은 나은 편이었다. 불쾌하게 쳐다보는 시선, ‘남자 새끼가 무슨 치마냐’는 비난은 곁에 있는 나조차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D는 자신을 남성이거나 여성이라고 고정하지 않는 젠더 논바이너리(gender nonbinary)이다. 젠더 논바이너리 혹은 젠더 퀴어(gender queer)는 모든 사람을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분류하는 성별 이분법(gender binary)에 저항하는 개념으로, 성별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아우른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기에 D는 자연스럽게 어느 날에는 치마를 입고, 어느 날에는 바지를 입는다.
 
 태어날 때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가장 먼저 부여받는 이름표, 성별.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은 보이지 않은 무수한 제도와 관습을 통해 개인을 길들인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1번과 2번은 여자다움, 남자다움, 여성 역할, 남성 역할로 연결된다.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파악하는 건 단순하다고 비난하면서 두 가지 성별로 “남자니까” “여자는”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별 이분법은 견고한 이성애 제도와 손잡고 있다고 주디스 버틀러는 말한다.
 

 

일러스트 / 조재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성별 이분법은 경계를 위협하는 존재 앞에서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D와 함께 있을 때면, 화석처럼 굳어졌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먼저 남자·여자 화장실 표지판이 그랬다. D는 어느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치마를 입고 남성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혹시나 해코지는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아들, 딸, 언니, 오빠, 형, 누나와 같은 성별 중심적 호칭과 이성애, 동성애라는 구분 역시 고정된 젠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도 D를 만나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된 부분이다. D에게는 8년째 만나는 애인이 있는데, 이 관계는 이성애나 동성애라고 정의할 수 없다. D의 존재는 성별 이분법을 바탕으로 이름 붙여온 모든 개념을 다시 묻게 했다. “내가 젠더 시스템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이분법이 나를 위반합니다”는 리키 앤 윌킨스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들이었다.
 
 D는 자신이 활동하는 젠더 논바이너리 모임의 독립출판물 <여행자 종합책자: 뜻밖의 여행>을 건네줬다. 책에는 젠더의 경계를 횡단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부모님께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여자도 남자도 아니면 병신이지 뭐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 아침마다 하루의 동선에 따라 젠더를 선택해서 옷차림을 달리한다는 사람, 매번 “총각이야? 처녀야? 총각이야? 처녀야?”라는 질문을 받고 동물원 원숭이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성별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내 비좁은 젠더 인식을 헤집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는 저를 더 이상 어떠한 용어로 정체화할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이제 제가 무엇으로 정체화를 하든 사람들이 절 어떻게 대해 주든지 간에,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만 대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뜻밖의 여행, 23p)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상대의 성별을 파악하려는 익숙한 사고회로 차단하기. 처음 보는 사람을 볼 때면 성별과 나이, 장애 유무 등을 파악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으른 관계 맺음에 변화가 필요하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기, 다른 방식으로 상대와 대화하기(차라리 날씨 이야기가 나을 수 있다). 그것만 지켜도 누군가의 하루를, 한 존재를 존중할 수 있다.
 
 <젠더 허물기>에서 버틀러는 말한다. “정말로 우리가 성차의 틀을 따르든 젠더 트러블의 틀을 따르든, 난 우리 모두가 어떤 이상에 헌신하기를, 그 누구도 억지로 하나의 젠더 규범을 차지할 필요가 없는 이상을 이루는 데 우리 모두가 전념하기를 바란다. 경험으로 보건대 그런 젠더 규범은 살아낼 수 없는 폭력으로 경험된다.” 고정된 젠더를 인식하고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금기의 여행자가 될 수 있다.
 
 D와 함께 포항 밤바다 앞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 D가 입은 긴 스커트가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살랑살랑 퍼지는 치마를 입고 연신 밤바다가 아름답다며 웃는 D의 모습을 바라봤다. 성별 이분법을 살포시 지르밟은 사람. 이미 당신은 충분하다.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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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피임도 허락받아야 하나요?

 최초입력 2017-09-27 10:34

최종수정 2017-09-27 10:34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애인 S와 W도 마찬가지다. 결혼보다 동거가, 아이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자연스레 다양한 피임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콘돔도 불안하게 느껴졌고, 경구피임약은 질염, 피부염,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정관수술. 정관수술은 여성의 난관피임수술에 비해 수술 과정이 간단하고 영구적이며 부작용이 덜하다. 몇 달 전부터 수술에 대해 알아보고 언제 받으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던 중, S가 먼저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 내일 정관수술을 받을까 해. 어차피 앞으로 결혼할 마음도 없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으니까.”
 
 다음날 S와 함께 시내의 한 비뇨기과를 찾았다. 막상 수술을 받으려니 S는 떨린다고 했다. 단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전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상실감이 느껴진다고. 병원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파이팅을 외치고, 긴장하며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환자가 없어서 S는 금방 진료실로 들어갔고, 나는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상기된 얼굴의 S가 나를 깨워 나가자고 하더니 병원을 나서자마자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니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말하자,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비뇨기과 전문의는 다짜고짜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S는 아이도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관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건 의사의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심이 어떤 거냐고 물으니, 미혼자에게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없애는 건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라며 그건 어느 병원에서도 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거냐고 묻자, 법적인 건 아니지만 의료윤리에 어긋난다는 말이 돌아왔다. 윤리가 무엇이냐고 따지자 그는 어쨌든 자기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다른 곳에 가거든 결혼은 했다고 말하라며 팁도 알려주었다.
 
 당연히 수술을 받을 거로 생각하고 병원 앞에서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치고 들어갔던 우리는 멍해졌다. 부분마취를 한 뒤 10분 정도면 수술이 끝난다는데, 충분히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에 우리는 의료윤리가 무엇인지, 도덕이, 양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올라왔지만, 일단 근처의 비뇨기과를 알아봤다. 혹시 모르니 그곳에서는 병원에서 준 팁처럼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S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니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의사가 앉아있었다. 정관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네.”
“두 분이 결혼한 사이이신가요?”
“네.”
“아이는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런데 왜 수술하려고 하시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서요.”
“왜 그렇죠?”
“저희가 그러고 싶어서요.“
“아 그 유명한 딩크족인가 그런 건가요?“
 
 이 질문부터 대답하기 싫었다. 이어서 의사는 “두 분 초혼이시지요? 아이가 있어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요. 아이를 낳은 다음에 정관 수술했다가 나중에 딴소리 하는 분들도 있어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에요. 나중에 돈이 생기고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낳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딩크족도 말로만 들어봤지… 의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니까요. 신념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는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생계형 비출산 부부로 생각했는지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갖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없는 아이를 죽이기까지 하며 수술을 말렸다. 의사는 아이를 낳는 게 정상적인 일이며,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숙고하라는 말을 열 번 이상 반복했다. 그가 물어본 ‘특별한 일’이 궁금했다. 만약 우리가 유전적 장애나 질환이 있다고 했다면 의사는 다르게 반응했을까. 의사가 S와 나를 어르고 설득하고 협박하는 사이 15분이 훌쩍 지났다. 우리가 끝까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종이 한 장을 주며 “오랫동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그래도 하겠다면 서명해서 다음에 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의사에게 건네받은 ‘정관정제술 승낙서’에는 섹스를 ‘부부관계’ ‘부부생활’이라고 명시하고 있었고, 서약인의 서명란 옆에는 서약인 배우자의 서명란이 있었다. 그 전 비뇨기과에서 왜 거짓말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정관수술은 철저하게 아이가 있는 기혼자 위주의 수술이었다. 아이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정관수술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에서는 20, 30대 미혼여성이 영구피임수술(난관결찰술)을 받을 때 산부인과 의사와 갈등을 겪는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여성은 앞으로 임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의사는 미래의 배우자를 생각하라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말한다. 기사 속 산부인과 의사의 반응은 내가 겪은 비뇨기과 의사와 무척 닮아있었다.
 

 

일러스트 / 조재

 

 
 기혼과 미혼에 대한 이중 잣대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겹쳐있다. 기혼 여성의 임신중절은 비교적 덜 비도덕적 일로 여겨지고, 심지어 국가가 종용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미혼여성의 임신중절은 법적, 도덕적 낙인이 따른다. S는 자기 몸의 통제권을 잃은 박탈감을 군대 이후 오랜만에 느낀다고 했다. 내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에 나갈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싶다.
 
 의사들과 의도치 않은 갈등을 겪으며 기운이 쭉 빠졌다. 발걸음을 돌려 동생 승희의 집을 찾았다. 동생의 동거인 A도 몇 달 전 정관수술을 했기에 비슷한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A는 자신도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꾸 의사가 꼬치꼬치 물어봐서 “제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이제 속죄하면서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더는 죄를 짓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의사가 승낙해줬다고. 우리는 웃으며 그런 방법을 쓸 걸 그랬다고 말했지만, 그 방법이 통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A는 30대 후반이고 S는 20대 후반이다. 아마 둘의 나이는 번식과 부양 능력, 의사결정 능력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문득 정관수술을 받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스무 살 J가 떠올랐다. J가 병원에 간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거부당할 것이 뻔했다. 앞길이 창창하고, 아직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스무 살이기 때문에. 곧 정관수술을 받으러 갈 거라며 기대하던 J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의사가 말한 ‘딩크족’이 아니더라도 여러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은 많다. 주위에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이가 없는 삶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사회가 납득할 만한 ‘특별한 이유’ 없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피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피임수술을 하겠다고 해도 말리고, 아이가 생기면 인공 임신중절수술도 불법이다. “아이를 낳으라”며 저출산 대책을 촉구하는 국가의 목소리는 의료와 법, 종교, 인식을 통해 개개인의 재생산권을 통제한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서로 비출산을 지향했기에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바로 수술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다행히 테스트기의 이상이었고, 임신이 아니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와 그 애인에게 정관수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만약 받게 된다면 꼭 결혼했다고 거짓말해야 한다는 팁도 함께.
 
 임신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친구를 보며, 비뇨기과에서 생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여성을 예비 엄마로 점찍고, 여성에게 피임의 책임을 지우고, 임신중절을 선택하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이중 삼중의 구속에 다른 선택지가 있긴 한 걸까.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는 실재하는 걸까.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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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의 자살일기] 손목병원

최초입력 2017-09-20 15:22

최종수정 2017-09-20 15:22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스물세 살 늦가을이었다. 갈색 옷을 입고 엎드려있던 나는 소방관의 부축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소방관은 손목을 감싸 쥐고 구급차 침대로 옮기며 말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어요. 착해서 그래.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세상이야. 많이 힘들었죠."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그의 말이 얼마나 깊게 들어온 건지, 손목에 고인 피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는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차가운 침대에 나뭇가지처럼 누워있었다. 감은 눈에서 주황색 불빛이 보였다. 병원 안의 환한 백열등 불빛이다.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들의 목소리, 의사들의 바쁜 발걸음 소리를 지나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듯 침대도 멈춰 섰다. 여러 침대를 지나 구석진 창문 근처로 온 것 같다. 의사로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가 내 옆에서 멈췄다.

  

"왜 죽으려고 했어요?"
내 명치를 꾹꾹 누르면서 물었다. 대답할 힘도, 눈을 뜰 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왜 죽으려고 했냐고요.“

 
 그는 내가 다시는 자살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지, 몇 번이고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이러 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어요, 라고 말해주길 바란 걸까. 의사가 명치를 누르는 동안 주위에서 비명소리, 환자와 보호자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러워도 이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살을 왜 하냐고 타박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작동이 멈춘 기계를 두드려보듯 나를 누른다. 보호자가 곁으로 왔는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그가 예측한 첫 번째 자살 동기다. 젊은 여자가 자살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 받아서라고 해석된다. 문학작품에서 자살하는 젊은 여자의 미학이 그렇듯.

 
"왜 죽으려고 한 거예요?"

언니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울증이라고 했을까? 그냥 단순 사고? 비합리적 충동? 어린 시절의 상처?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주삿바늘이 팔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무언가가 몸에 들어오는 것 같다. 입이 바싹 마르고 이따금 손목이 따가웠다. 정신의 공허가 피부의 통증까지 잠식시켜버린 걸까. 주사가 들어오고 손목이 따끔거려도 고통스럽진 않다. 눈을 감은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생과 사의 경계도 아니고, 나는 명확히 살아있다. 살아서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는 언젠가 이 침대에서 일어나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불빛이 차단될 수 있도록 깜깜하게 눈을 감길 바랐다. 까마득한 지금을 뒤로하고. 돌연 잠들었다.

  

  

<죽지 못함>, 2013, 홍승희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웃기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명랑한 목소리가 어두운 방에 쨍쨍하게 빛을 비추려는 듯, 눈뜨지 못한 내게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다. 의사가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대응하라고 조언해준 것 같다. 남자친구였던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실존주의가 이래서 문제야. 쟤 실존주의 책 그만 읽게 해."

  

 나의 죽음은 실존주의의 그것으로, 남자친구와의 이별 때문으로 읽힐 뻔했구나. 아니 읽히고 있다. 죽어도, 죽지 않아도 나는 읽히고 있다.

 그는 나의 옛 연인이자 4년 동안 함께 세상을 바꾸려 했던 '혁명 동지'였다. 열여섯 살 때 자살 실패 후 이상한 세상이라도 바꾸고 죽자고 생각해서 살아온 삶이다. 그러니까 내 삶은 거저 얻은 것이고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살아있는 동안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진보정당운동을 했다. 운동의 성과, 목표, 조직의 임무, 수행, 과업으로 점철된 글자가 달력을 빼곡히 채웠고 하루하루는 오직 혁명의 달성을 위해 존재했다.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였다.

  

 그러나 더 이상 산만한 내가 이 운동을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세상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살아있는 건 나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유보해둔 죽음을 다시 선택하려 했다. 매일 매일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살아있기 위해 나는 혁명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른다. 혁명, 변혁, 휴머니즘이라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죽음을 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허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건 내가 실감하는 진실이니까. 의지를 가지고 희망차게 혁명해야 하는 운동의 세계에서 나에게 남아있던 허무한 감각, 실존주의라고 분류된 철학적 태도는 무척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만 해석됐다. 혁명 동지이자 남자친구였던 그의 세계에서도 그랬다.

 
 그의 말처럼 알베르 카뮈의 <광인>을 좋아하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실존주의 책에 주입받아서가 아니라, 내 명확한 감각이 세계와 삶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종교를 믿거나 도덕이나 관습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인간을 위한 거짓말, 뽕, 진통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의미는 발견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은 믿음과 앎 이전에, 강력한 실감이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를 반복재생하고 잠들려고 했다. 소사의 목소리는 정직한 울림이 있어 좋았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애도하고 울퉁불퉁한 세상에서 휘청휘청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병원에 누워있는 지금도 내가 나온 그 방에서는 음악이 반복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눈을 떴다. 눈물이 굳어 눈꺼풀이 따갑고 무겁다. 흰색 형광등이 위에서 반짝이고, 꼬물꼬물 아메바 같은 문양의 패턴이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에 달라붙어 있다. 천장의 패턴들은 혹시 떨어지지 못하도록 모서리마다 나사가 박혀있다. 티도 안 나게 아주 작게. 하늘색 담요는 건조하고 따뜻하다. 여전히 발은 차갑다. 입술은 바짝 마른 것 같은데 침을 묻혀 적실 힘이 없다. 목이 타지만 침을 삼킬 힘도 그럴 의지도 없다. 지금은 아무도 내 옆에 없다. 이렇게 눈만 껌뻑이는 삶이라면 더 살아도 되겠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죽음은 오니까. 의사가 찾아와 손목을 꿰맨다고 한다.

임시 수술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의사가 손목을 젖은 솜으로 닦는다. 손목을 꿰매면서 의사는 인턴들을 불렀다. 7명 정도의 인턴이 나를 둘러서 있다.

 

"이건 요즘 쓰는 신기술이야.“
의사가 말하며 바늘을 움직인다. 

피부가 찢어진 곳을 바늘로 꿰매는 기술. 기계 위에 올려진 망가진 사물이 된 느낌, 마취가 덜 됐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왜 나를 살리려고 하는가?' 그녀는 대답하겠지. '왜 죽으려고 하나요? 생명은 소중해요. 당연히 살려야죠. 저는 의사잖아요.' '그럼 왜 꼭 살아야 하나요? 생명은 소중하니까 살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녀의 생각 밑바닥에는 이런 정의가 있을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수술대 위에서 공중분해 되는 것 같다. 손목은 동강 난 것처럼 내 것이 아니다. 손목의 따끔거리는 감각은 쓰라린 마음을 마비시키지 못했다. 감각의 고통은 눈에 보이고, 꿰매고, 약을 바를 수 있어 좋겠구나. 손목 따위야, 손목 따위. 그러니까, 손목에게 너무도 친절한 병원. 덕분에 손목은 깨끗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지그재그 바느질은 탁월한 기술이다.

  

  

<나뭇잎>, 2013, 홍승희

  

  

 침대에 다시 누웠다. 간간히 환자들의 신음과 비명,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파서 우는 소리와 서러워서 우는 소리는 다르다. 의사의 건조한 목소리를 가로지르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위로로 다가왔다. 같은 설움을 토해내는 존재의 눈물. 울고 있는 그의 의미를 내 멋대로 판단해 위로로 먹어치우고 있다. 병원은 그의 울음소리 따위 언제나 존재하는 배경음악이라는 듯, 분주하기만 하다. 생과 사의 경계가 오가고, 핏물과 눈물이 여기저기 튀기고, 바쁜 발자국 소리와 건조한 목소리들이 오가는 곳. 병원, 병을 치료해주는 곳. 안 죽게 도와주는 곳, 죽지 못하게 하는 곳, 죽음만은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곳. 스스로 죽기로 선택한 생명들이 거쳐 가기도 하는 곳. 국가에서, 제도에서, 사회에서, 일터에서, 집에서, 일상에서 탈락된 최후의 몸뚱어리가 굴러 들어오는 곳.

  

 병원에서 소독된 나는 다시 삶의 현장으로 걸어가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누군가 챙겨온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눌렀던 명치가 욱신거린다. 건물의 조명, 가로수 불빛, 신호등 네온사인이 어둠 속에서 둥둥 떠 있다. 다른 세계에서 생뚱맞게 튀어나온 사람이 된 것 같다. 병원의 분주한 일상도, 차가운 바람이 쏘다니는 밤거리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들이 아프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의 그것과 너무 다른 온도라서 아프다. 일찍이 내 몸은 따뜻한 눈빛의 세계와 컨베이어 벨트 같은 세계에서 두 동강 났다. 영원히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왔다. 오래된 이질감이다. ‘ㄱㄴㄷ’을 모른다고 회초리를 들던 유치원에서 벗어나 엄마 품에 안기고 싶던 유년시절. 엄마는 너무 친절해. 친절한 세계를 알아버려서 내 몸은 두 동강이 난 채 살아왔다. 그 세계를 그리워하고, 다른 세계가 서러워서 계속 울고 분노하고 아팠다. 처음부터 따뜻한 세계를 몰랐다면 싸늘한 세계에서 건조하고 효율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도, 뭐라고 안심시킬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전히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가고, 이따금 아픈 손목을 꿰매고, 다시 누군가의 품에서 치유되고, 해가 뜨면 다시 컨베이어벨트는 움직인다.

  

 그 날, 그다음 날 나는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도 완전히 알 수 없다. 설움과 분노는 마구 뒤엉키고 범벅되어 탁한 초록색, 검붉은 색, 시뻘건 색으로 녹아갔다. 얼마간 나는 캔버스에 그것들을 몽땅 뱉어내고 난 후, 좀 더 한참 후에야 그 설움과 분노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생에 대한 허무 넘어 허무에 집중하게 만든 이 세계에 대한 분노, 나를 두 동강 낸 폭력적인 세계, 내가 가담해온 세계에 대한 명확한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구태여 자살을 감행할 필요도 없다'고 쓴 벤야민의 흔적을 더듬는다. 자살을 감행하려는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과제다. 끔찍한 디스토피아도 없고 화사한 유토피아도 없이,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하게' 이어지는 오늘, 이런저런 역할극을 한다. 열정에 간간히 불을 지피면서 물을 건넌다.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 최승자, <비극>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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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최초입력 2017-09-13 11:47

최종수정 2017-09-13 11:48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가정을 지키기 위한 혐오

 

올여름 한동대에서 반동성애 특강이 열렸다. 마침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수백 명의 학생이 강의실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성애 바로 알기’ 특강을 기획하고 강의실 앞에서 출석 명단을 체크하던 사람들은 한동대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이하 아가청)’ 학생들이었다. 두 시간 내내 동성애는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다, 동성애 독재 시대가 온다는 혐오 발언이 퍼졌던 강연장 문틈에서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저는 드디어 동성애에서 벗어났어요. 감사하게도 그런 저를 받아주는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청혼했어요.” 강단에 선 탈동성애자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 대부분이 박수를 쳤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노골적인 혐오는 정상가족 예찬과 닿아있었다. 왜 학회 이름이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위한 혐오. 사랑을 위한 혐오. 도덕을 위한 혐오. 언뜻 입에 붙지 않는 조합이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연결이다. 이성애중심 가족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지 않은, 불결하고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손가락질받는다. 견고해 보이는 정상의 범주는 누군가를 낙인찍어야만 겨우 유지될 정도로 취약하기에.

  

 

불온한 가족은 불행한 가족일까

 

내 가족은 ‘아름다운 가정’이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혼했다. 나는 매일 밤 엄마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어릴 적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쩌면 엄마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닌, 가족 자체였던 걸까. 둘러앉아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일상은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볼 때, 끼니마다 냉장고를 뒤질 때, 아빠와 다툴 때면 눈에 띄지 않았던 엄마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범한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쉴 틈 없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엄마의 공백은 화목하다고 믿었던 가족의 이면을 비로소 인식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부모님의 이혼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엄마는 4평 남짓한 부엌과 오롯이 자신의 공간일 수 없었던 집을 벗어나 거리를 활보하며 방황했다. 전보다 불안정했지만, 나는 그 불안정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생긴 여백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에 대한 인식을 되묻게 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나로 살아갈 여유와 힘을 주었다.

 

 내 경험과 세상의 기준은 서서히 어긋났다. 엄마의 부재를 불행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아휴, 불쌍해서 어떡하니. 딸한테는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친척들의 말이, 엄마가 없기 때문에, 혹은 엄마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던 선생님과 친구들, 주위의 시선이 그랬다.

 

 정말 결혼과 가정은 아름답기만 할까? 주위의 ‘정상가족’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나는 의문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결혼식을 떠올리면 순백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꿈꿨다. 언제부턴가 나는 결혼을 떠올릴 때, 가정 폭력, 부부 강간, 3일에 한 번씩 일어나는 아내 살해,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불균형한 가사노동을 떠올리게 된다. 명절을 걱정하는 한숨소리. 내 주위를 둘러싼 신음소리는 견고한 가족신화 안에서 묻힌다. 어머니가 신성하다면 왜 아버지는 신성하게 생명을 돌보고, 따뜻한 밥을 짓고, 가사 노동과 감정 노동을 하지 않을까. 가족이 그렇게 아름답다면, 왜 나는 강연에 다닐 때마다 부모, 자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까. 평생 자기만 바라보며 산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면, 왜 어머니를 평생 가족 안에만 살도록 모두가 방관했을까.

 

 세상엔 또 얼마나 많은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지.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미혼모, 동성혼, 비혼 등의 관계는 단지 형태의 다양성일 뿐, 그 자체로 행복이나 불행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불행하다면 ‘정상’이 뚜렷한 사회의 병적인 차별 때문이다. ‘이성애 연애, 낭만적 결혼,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허접한 이상은 이처럼 많은 사람을 삭제하며 유지된다.

 

일러스트/ 조재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지난여름 인문학카페에서 페미니즘 그리기 모임을 진행할 때,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대부분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가족 모습을 그렸다. 단 한 사람만이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여성 세 명과 강아지와 원숭이를 그렸다.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닌가요. 당연한 듯 묻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가족의 모습이 혼인과 혈연으로 제한되어 있었다며 굳어진 인식을 돌아봤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상상은 단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하지 않을 자유를 가져야 하지만, 연애와 결혼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장애인에게는 이것 또한 인정받아야 할 권리이다. 주체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관계맺음이 이야기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는 존중 받아야 한다. 종과 섹슈얼리티, 관습 너머의 관계 맺음을 상상할 때, 다채로운 삶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을 때,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나는 비혼주의자다.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를 하고 있으며, 애인 두 명과 각각 동거하고 있다. 아직 동성을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정체성은 확실하게 구획되지 않고 흐르기에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나를 열어둔다. 성소수자인 J, 비혼주의자인 H와 L, 같은 폴리아모리스트 K와 T, J 그리고 내 애인 W, S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반려동물 달, 부엉이, 참새, 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가족이다. 어쩌면 나는 철저하게 불온한 연애와 가족 공동체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불온한 존재 그대로 남아, 그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아름다움이고 싶다.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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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