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의 자살일기] 나의 신앙

최초입력 2017-10-17 14:19

최종수정 2017-10-17 14:25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2017년 9월, 심리상담센터에서 문장완성검사 결과를 보는 날이었다. “내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은, '내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까마득함이다'라고 적었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요?" 상담사가 물었다.

 
"음… 그러니까, 내 존재와 세상의 모든 게 너무 무의미해서 아찔해지는 느낌이요."
"아, 내가 무의미한 느낌."
"그냥 내 존재가 무의미한 느낌은 아니고요.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 내가 알고 있고 기억하는 모든 것, 모든 존재, 지구와 우주까지 모두 무의미하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죽음 같은 아찔함이요."
"허무함이군요."
"네. 허무함이긴 한데, 이게 너무 끔찍한 느낌이라서 너무 아찔해져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종종, 아니 가끔이요."
"공황증상처럼 숨이 막히고요?"
"숨이 막히진 않아요. 너무 아찔해서 생각 안에서 구토해버릴 것 같은 느낌, 이 느낌을 언어로 전달하기가 어려워요."
"그렇군요.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나요?"
"의식적인 건 아니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저를 지배할 때도 있고, 생각하다 보니 그런 느낌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어요."

 

 상담사는 나의 느낌을 언어로 포획하려는 듯 쉬지 않고 말했다. 그녀의 질문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렇기도 한데,"라고 그녀의 말을 부정하고 말을 이었다. 그녀가 나의 느낌을 해석한 '허무', '존재의 무의미'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효율적이었다. 내가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것이 맞긴 하지만, 나의 모든 주관과 실감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언어 한 조각을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 나의 주관이 그녀의 지레짐작으로 섣불리 판단되고, 언어 안에 갇히는 느낌이 답답해서 상담사와 대화를 이어갈 힘이 나지 않았다.

 

  

<죽음의 문>, 2014, 홍승희

 

 

 나의 경험은 타자의 귀에 닿을 때 그들이 경험한 비스름한 분류 속으로 들어가 쉽게 해석된다. 해석의 폭력, 아니 자명한 언어의 폭력성, 아니면 언어의 한계일까. 흔들리는 정직한 감각은 쉽게 우울증, 불안, 공황, 무의미, 허무, 무기력증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해석되고 분류되고 재단되는 것이 견딜 수 없도록 분노스러운데, 어쩌면 그래서 우울증이라고 이름 붙여진 어떤 증상이 있게 된 건데. 그런 내가 왜 상담을 받고 있는 걸까. 이런 상담 방식이 아닐 거라 생각해서? 아니면 이번에는 나의 느낌을 온전히 느껴주는 상담사, 아니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걸까.

 

 6년 전 심리상담센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운동을 했던 내 삶의 이력을 들은 심리상담사는 내게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도 현재에 대한 불만족, 자기 문제를 회피하려는 습성에서 나오는 방어기제일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한 사람의 행동을 자기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 그 무례한 상상력에 놀라고 분노스럽고 또 무기력해졌다. 이후 미술치료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그려보세요, 미술 치료상담사가 말했다. 내가 그리고 싶은 나무를 멋대로 그렸다. 열매도 없고 나뭇잎도 없지만 계속 자기 힘으로 뻗어 나가려는 삐뚤빼뚤한 나무였다. 나무에 왜 열매가 없는지 잎사귀는 없는지 상담사가 물었다. "이 나무는 그게 편안하대요." 대답했다. 상담사는 나무가 균형이 없고 위태로워 보인다고 염려했다. 삐뚤빼뚤한 나무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 받지 못했다. 열매나 잎사귀가 영원히 열리지 않아도 까마귀가 앉았다 갈 수 있는 나뭇가지인데. 세상에 태어나 청춘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말하는 이 세상처럼, 상담사는 나의 볼품없고 깡마른 나뭇가지를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기존의 언어로 타인과 나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규정지으려는 모든 접근에 응하지 않을 거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에 대해서 안다는 듯 말하는 똑같은 말들 속에서 뛰쳐나올 거다.

 

  

<살다> 2014, 홍승희

 

 

 상담사에게 증상을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허무는 여전하다. 고요한 곳에서 유영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싶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아찔한 감각을 아예 까먹어버리고 있다가, 다시 진실의 감각이 닥쳐올 때 까마득하게 힘이 풀린다. 이 무질서한 실감을 나의 신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만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그 실감의 순간이 자기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정직한 어떤 순간이라면, 기존 세계의 무엇을 다 놔버리고 모든 역할극에서 벗어날 힘을 주는 강렬한 실감이라면 그게 나의 신앙이 아닐까.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

[속보]'동성애 혐오'하면 하루에 10만원

   최초입력 2017-09-29 15:52

최종수정 2017-09-29 15:52


 

 

 

 

 

 

929일 한동대 교내정보사이트 히즈넷(HISNet)동성애 혐오 전단지를 배포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왔다. "추석 명절에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동성애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전단지를 배포해줄 수 있는 스포터"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혐오의 대가는 1일 10시간 10만원. 모집인원은 제한이 없으며 활동기간은 102일부터 6일까지로 예고돼 있다. 동성애 혐오가 ‘5 50만원이란 꿀 알바로 둔갑한 것이다. 해당 공지를 게재한 한동대 J교수에게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해당 공지가 게재된 히즈넷은 한동대 교직원, 교수, 학생 모두가 확인하는 사이트다.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

[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피임도 허락받아야 하나요?

 최초입력 2017-09-27 10:34

최종수정 2017-09-27 10:34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애인 S와 W도 마찬가지다. 결혼보다 동거가, 아이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자연스레 다양한 피임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콘돔도 불안하게 느껴졌고, 경구피임약은 질염, 피부염,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정관수술. 정관수술은 여성의 난관피임수술에 비해 수술 과정이 간단하고 영구적이며 부작용이 덜하다. 몇 달 전부터 수술에 대해 알아보고 언제 받으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던 중, S가 먼저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 내일 정관수술을 받을까 해. 어차피 앞으로 결혼할 마음도 없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으니까.”
 
 다음날 S와 함께 시내의 한 비뇨기과를 찾았다. 막상 수술을 받으려니 S는 떨린다고 했다. 단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전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상실감이 느껴진다고. 병원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파이팅을 외치고, 긴장하며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환자가 없어서 S는 금방 진료실로 들어갔고, 나는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상기된 얼굴의 S가 나를 깨워 나가자고 하더니 병원을 나서자마자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니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말하자,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비뇨기과 전문의는 다짜고짜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S는 아이도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관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건 의사의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심이 어떤 거냐고 물으니, 미혼자에게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없애는 건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라며 그건 어느 병원에서도 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거냐고 묻자, 법적인 건 아니지만 의료윤리에 어긋난다는 말이 돌아왔다. 윤리가 무엇이냐고 따지자 그는 어쨌든 자기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다른 곳에 가거든 결혼은 했다고 말하라며 팁도 알려주었다.
 
 당연히 수술을 받을 거로 생각하고 병원 앞에서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치고 들어갔던 우리는 멍해졌다. 부분마취를 한 뒤 10분 정도면 수술이 끝난다는데, 충분히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에 우리는 의료윤리가 무엇인지, 도덕이, 양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올라왔지만, 일단 근처의 비뇨기과를 알아봤다. 혹시 모르니 그곳에서는 병원에서 준 팁처럼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S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니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의사가 앉아있었다. 정관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네.”
“두 분이 결혼한 사이이신가요?”
“네.”
“아이는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런데 왜 수술하려고 하시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서요.”
“왜 그렇죠?”
“저희가 그러고 싶어서요.“
“아 그 유명한 딩크족인가 그런 건가요?“
 
 이 질문부터 대답하기 싫었다. 이어서 의사는 “두 분 초혼이시지요? 아이가 있어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요. 아이를 낳은 다음에 정관 수술했다가 나중에 딴소리 하는 분들도 있어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에요. 나중에 돈이 생기고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낳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딩크족도 말로만 들어봤지… 의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니까요. 신념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는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생계형 비출산 부부로 생각했는지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갖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없는 아이를 죽이기까지 하며 수술을 말렸다. 의사는 아이를 낳는 게 정상적인 일이며,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숙고하라는 말을 열 번 이상 반복했다. 그가 물어본 ‘특별한 일’이 궁금했다. 만약 우리가 유전적 장애나 질환이 있다고 했다면 의사는 다르게 반응했을까. 의사가 S와 나를 어르고 설득하고 협박하는 사이 15분이 훌쩍 지났다. 우리가 끝까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종이 한 장을 주며 “오랫동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그래도 하겠다면 서명해서 다음에 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의사에게 건네받은 ‘정관정제술 승낙서’에는 섹스를 ‘부부관계’ ‘부부생활’이라고 명시하고 있었고, 서약인의 서명란 옆에는 서약인 배우자의 서명란이 있었다. 그 전 비뇨기과에서 왜 거짓말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정관수술은 철저하게 아이가 있는 기혼자 위주의 수술이었다. 아이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정관수술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에서는 20, 30대 미혼여성이 영구피임수술(난관결찰술)을 받을 때 산부인과 의사와 갈등을 겪는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여성은 앞으로 임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의사는 미래의 배우자를 생각하라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말한다. 기사 속 산부인과 의사의 반응은 내가 겪은 비뇨기과 의사와 무척 닮아있었다.
 

 

일러스트 / 조재

 

 
 기혼과 미혼에 대한 이중 잣대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겹쳐있다. 기혼 여성의 임신중절은 비교적 덜 비도덕적 일로 여겨지고, 심지어 국가가 종용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미혼여성의 임신중절은 법적, 도덕적 낙인이 따른다. S는 자기 몸의 통제권을 잃은 박탈감을 군대 이후 오랜만에 느낀다고 했다. 내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에 나갈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싶다.
 
 의사들과 의도치 않은 갈등을 겪으며 기운이 쭉 빠졌다. 발걸음을 돌려 동생 승희의 집을 찾았다. 동생의 동거인 A도 몇 달 전 정관수술을 했기에 비슷한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A는 자신도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꾸 의사가 꼬치꼬치 물어봐서 “제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이제 속죄하면서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더는 죄를 짓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의사가 승낙해줬다고. 우리는 웃으며 그런 방법을 쓸 걸 그랬다고 말했지만, 그 방법이 통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A는 30대 후반이고 S는 20대 후반이다. 아마 둘의 나이는 번식과 부양 능력, 의사결정 능력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문득 정관수술을 받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스무 살 J가 떠올랐다. J가 병원에 간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거부당할 것이 뻔했다. 앞길이 창창하고, 아직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스무 살이기 때문에. 곧 정관수술을 받으러 갈 거라며 기대하던 J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의사가 말한 ‘딩크족’이 아니더라도 여러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은 많다. 주위에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이가 없는 삶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사회가 납득할 만한 ‘특별한 이유’ 없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피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피임수술을 하겠다고 해도 말리고, 아이가 생기면 인공 임신중절수술도 불법이다. “아이를 낳으라”며 저출산 대책을 촉구하는 국가의 목소리는 의료와 법, 종교, 인식을 통해 개개인의 재생산권을 통제한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서로 비출산을 지향했기에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바로 수술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다행히 테스트기의 이상이었고, 임신이 아니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와 그 애인에게 정관수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만약 받게 된다면 꼭 결혼했다고 거짓말해야 한다는 팁도 함께.
 
 임신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친구를 보며, 비뇨기과에서 생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여성을 예비 엄마로 점찍고, 여성에게 피임의 책임을 지우고, 임신중절을 선택하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이중 삼중의 구속에 다른 선택지가 있긴 한 걸까.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는 실재하는 걸까.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최초입력 2017-09-21 10:35

최종수정 2017-09-21 10:40


 
비기독교인은 ‘비기’, 기독교인은?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을 표방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를 가진 사람은 특이한, 혹은 소수의 존재가 된다. 이를 드러내는 단어가 ‘비기(비기독교인의 줄임말)’다. 한동대 밖에서는 듣기 어려운 이 단어는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정체성이 제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동대에서 그들은 ‘비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 마치 동등한 인간 이전에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으로 판단되고 규정되는 것처럼.

 
 ‘비기’라는 말은 한동대 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향한 기독교인의 일방적인 잣대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 신앙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된다. 16년 7월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대 대신전해드림에 익명으로 게시된 A 씨의 이야기는 한동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비기’)의 삶을 토로하고 있다. A 씨의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는 새내기OT(한스트) 기간 중 새내기에게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A 씨는 손을 들었고, 새섬은 그 자리에서 “비기네 비기”라며 A 씨를 규정했다. A 씨는 자신에게 ‘비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비기’라는 독특한 그룹에 강제로 속해진 이후 한동대에서 시간은 좋지 못했다”라며 한동대에서 비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스트 이후에도 A 씨의 학교생활은 ‘비기’와 연결됐다. A 씨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섬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A 씨가 비속어나 험한 말을 쓸 때면 새섬은 ‘비기’라는 말을 꼭 끼워 넣어 그를 몰아세웠다. 심지어 새섬은 A 씨에게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며 ‘비기’인 A 씨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와서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믿음으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대에 온 첫날부터 ‘비기’로 불리며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반수를 결정했다. A 씨는 “기독교 대학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하루하루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그 나날들을 버리고자 다른 학교로 도망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오자마자 ‘비기’라는 말에 갇히면서,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개종과 전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비기’라는 단어는 ‘대상화’의 일종이다. ‘대상화’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과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특정 목적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인 ‘인간의 대상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인간의 대상화’라 함은 인간을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대상화는 상대방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에서 시작해 상대를 규정하고 통제하기까지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상대방을 특정한 의미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가사노동이 여성이 감당해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규정하는 대상화의 대표적인 예다. 개별적인 여성을 ‘여자’라는 범주에 가두고, ‘여자’가 있어야만 하는 위치가 있다고 규정하는 발화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개개인을 ‘성(性) 역할’이라는 범주 안에 가둔다. 쉽게 말해 대상화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사람은 ‘비기’라는 범주 안에 묶인다. ‘비기’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드러나는 두 대상 간의 경계는 명확하다.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기독교 신앙의 유무다. 한동대에서 다수인 기독교인은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의 경계를 단 하나의 단어로 구분 짓고 그들을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개인들의 특성은 쉽게 지워진다. 예컨대 ‘비기’로 묶인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동일하게 불린다. 설령 그들 중 하나가 불교를 믿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더라도 표현은 바뀌지 않는다. ‘비기’란 애초에 기독교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표현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은 한동대에 왔으면 기독교인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중심적 사고가 만연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편의대로 구성된 주장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B 씨(15 전산전자)는 ‘비기’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때가 많다”라고 말한다. B 씨는 새섬이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라고 말했을 때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라고 토로했다. B 씨도 A 씨와 마찬가지로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춰진 자신은 “선교의 대상, 전도의 대상,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한동대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인식되고 곧바로 전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17년 새섬 지원서는 '비기독교인'과 음주/흡연/일탈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비기’라는 단어는 그저 서로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한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에게만 편의를 제공한다. B씨는 16년 12월에 새섬을 지원하려 했다. B 씨는 지원서의 질문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17년 새내기 섬김이 위원회(이하 새섬위)가 만든 열송학사 새섬 지원서 자기소개서 란에는 “만약 비기독교인 새내기가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과도한 음주 흡연 일탈 생활을 이어간다면 새섬으로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비기독교인’과 음주, 흡연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B 씨는 “저런 문항이 새섬 지원서에 있다는 것과 새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떻게 답변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교회 안 나가니까 거리낌 없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경향성을 일반화한 오류다.
 
 한동대 기독교인은 ‘비기’라는 단어를 기준으로 기독교인을 동질감을 느끼는 ‘우리’로 묶는 반면, 기독교를 종교로 두지 않은 한동대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끼는 ‘너희’로 구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C 씨(15 법)는 “(기독교인 친구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이 선을 못 넘으면(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방인이다. 그게 좀 서럽고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우리’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그저 먼 이방인일 뿐이다.

 
 B 씨는 한동대 슬로건인 “Why not change the world?”가 “우리 같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가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와 ‘우리’라는 표현 안에 나는 속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비기’라는 단어는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비기’로 묶인 사람들의 선행은 “비기치곤 착하네”로 평가된다. 한편, 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비기라서 그래”로 낙인 찍는다.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산정된 사람들의 삶은 동일한 정체성으로 일반화된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의 말로(末路)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D 씨(15 콘융디)는 기독교인 룸메이트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독교인이 아닌 D 씨는 “돌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기독교인에게 ‘비정상적’이며 ‘틀린’ 사람이었다.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대상을 명명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정상’혹은 ‘옳음’으로 여기고, 대상화되는 자를 ‘비정상’ 혹은 ‘그름’으로 여긴다. ‘비기독교인(非基督敎)’이란 단어에는 ‘아닐 비(非)’가 들어간다. ‘비기(非基)’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것(異)을 틀린 것(非)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대상화가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대상화는 진행되고 대상을 옥죈다.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대상화는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 물었던 A 씨의 새섬은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는 말로 새내기를 강요했다.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학기 목표”라 말했던 B 씨의 새섬은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비기’를 향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태도를 일면 보여준다.

 
 한동대 ‘비기’들이 겪는 불편함은 단순히 그들의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의 수많은 A, B, C 씨 그리고 D 씨는 여전히 대상화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명백한 차별과 혐오로써 게이나 레즈비언, 장애인, 흑인 등의 단어를 누군가를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동대에서 ‘비기’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옥죄는 단어가 되고 만다. 발화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기’의 정체성은 ‘비정상’으로 전락한다.

 
 대상화의 언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상화된 말로 ‘비기’라는 단어는 특정인을 ‘비정상(非正像)’으로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차별과 배제의 대상화 언어를 지양해야 한다. 언어를 바꾸며 일상의 습관을 고치는 노력은 대상화가 지닌 폭력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차별과 배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차별로 규정하는 대상화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선 각자의 진실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고의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든 유형의 행동과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늘 폭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 15년 한동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채플에 앉아있는 당신에게’)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동대 학생 1,466명 중 90.8%(1331명)이 기독교인인 반면 비기독교인은 9.2%(135명)에 불과했다.

 
**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 한동대학교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과 편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한동대 학생(2학년부터 지원 가능)을 일컫는다.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0) 2017.09.2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0) 2017.09.1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1) 2017.09.11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  (3) 2017.06.12
posted by 뉴담 Newdam

[홍승희의 자살일기] 손목병원

최초입력 2017-09-20 15:22

최종수정 2017-09-20 15:22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스물세 살 늦가을이었다. 갈색 옷을 입고 엎드려있던 나는 소방관의 부축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소방관은 손목을 감싸 쥐고 구급차 침대로 옮기며 말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어요. 착해서 그래.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세상이야. 많이 힘들었죠."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그의 말이 얼마나 깊게 들어온 건지, 손목에 고인 피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는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차가운 침대에 나뭇가지처럼 누워있었다. 감은 눈에서 주황색 불빛이 보였다. 병원 안의 환한 백열등 불빛이다.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들의 목소리, 의사들의 바쁜 발걸음 소리를 지나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듯 침대도 멈춰 섰다. 여러 침대를 지나 구석진 창문 근처로 온 것 같다. 의사로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가 내 옆에서 멈췄다.

  

"왜 죽으려고 했어요?"
내 명치를 꾹꾹 누르면서 물었다. 대답할 힘도, 눈을 뜰 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왜 죽으려고 했냐고요.“

 
 그는 내가 다시는 자살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지, 몇 번이고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이러 이러하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어요, 라고 말해주길 바란 걸까. 의사가 명치를 누르는 동안 주위에서 비명소리, 환자와 보호자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러워도 이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살을 왜 하냐고 타박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작동이 멈춘 기계를 두드려보듯 나를 누른다. 보호자가 곁으로 왔는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그가 예측한 첫 번째 자살 동기다. 젊은 여자가 자살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 받아서라고 해석된다. 문학작품에서 자살하는 젊은 여자의 미학이 그렇듯.

 
"왜 죽으려고 한 거예요?"

언니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울증이라고 했을까? 그냥 단순 사고? 비합리적 충동? 어린 시절의 상처?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왜 그랬을까요.“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주삿바늘이 팔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무언가가 몸에 들어오는 것 같다. 입이 바싹 마르고 이따금 손목이 따가웠다. 정신의 공허가 피부의 통증까지 잠식시켜버린 걸까. 주사가 들어오고 손목이 따끔거려도 고통스럽진 않다. 눈을 감은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생과 사의 경계도 아니고, 나는 명확히 살아있다. 살아서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는 언젠가 이 침대에서 일어나 내 발로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불빛이 차단될 수 있도록 깜깜하게 눈을 감길 바랐다. 까마득한 지금을 뒤로하고. 돌연 잠들었다.

  

  

<죽지 못함>, 2013, 홍승희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웃기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명랑한 목소리가 어두운 방에 쨍쨍하게 빛을 비추려는 듯, 눈뜨지 못한 내게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다. 의사가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대응하라고 조언해준 것 같다. 남자친구였던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실존주의가 이래서 문제야. 쟤 실존주의 책 그만 읽게 해."

  

 나의 죽음은 실존주의의 그것으로, 남자친구와의 이별 때문으로 읽힐 뻔했구나. 아니 읽히고 있다. 죽어도, 죽지 않아도 나는 읽히고 있다.

 그는 나의 옛 연인이자 4년 동안 함께 세상을 바꾸려 했던 '혁명 동지'였다. 열여섯 살 때 자살 실패 후 이상한 세상이라도 바꾸고 죽자고 생각해서 살아온 삶이다. 그러니까 내 삶은 거저 얻은 것이고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살아있는 동안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진보정당운동을 했다. 운동의 성과, 목표, 조직의 임무, 수행, 과업으로 점철된 글자가 달력을 빼곡히 채웠고 하루하루는 오직 혁명의 달성을 위해 존재했다.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였다.

  

 그러나 더 이상 산만한 내가 이 운동을 훌륭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세상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살아있는 건 나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유보해둔 죽음을 다시 선택하려 했다. 매일 매일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살아있기 위해 나는 혁명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른다. 혁명, 변혁, 휴머니즘이라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죽음을 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허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건 내가 실감하는 진실이니까. 의지를 가지고 희망차게 혁명해야 하는 운동의 세계에서 나에게 남아있던 허무한 감각, 실존주의라고 분류된 철학적 태도는 무척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만 해석됐다. 혁명 동지이자 남자친구였던 그의 세계에서도 그랬다.

 
 그의 말처럼 알베르 카뮈의 <광인>을 좋아하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실존주의 책에 주입받아서가 아니라, 내 명확한 감각이 세계와 삶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종교를 믿거나 도덕이나 관습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인간을 위한 거짓말, 뽕, 진통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의미는 발견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은 믿음과 앎 이전에, 강력한 실감이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를 반복재생하고 잠들려고 했다. 소사의 목소리는 정직한 울림이 있어 좋았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애도하고 울퉁불퉁한 세상에서 휘청휘청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병원에 누워있는 지금도 내가 나온 그 방에서는 음악이 반복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눈을 떴다. 눈물이 굳어 눈꺼풀이 따갑고 무겁다. 흰색 형광등이 위에서 반짝이고, 꼬물꼬물 아메바 같은 문양의 패턴이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에 달라붙어 있다. 천장의 패턴들은 혹시 떨어지지 못하도록 모서리마다 나사가 박혀있다. 티도 안 나게 아주 작게. 하늘색 담요는 건조하고 따뜻하다. 여전히 발은 차갑다. 입술은 바짝 마른 것 같은데 침을 묻혀 적실 힘이 없다. 목이 타지만 침을 삼킬 힘도 그럴 의지도 없다. 지금은 아무도 내 옆에 없다. 이렇게 눈만 껌뻑이는 삶이라면 더 살아도 되겠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죽음은 오니까. 의사가 찾아와 손목을 꿰맨다고 한다.

임시 수술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의사가 손목을 젖은 솜으로 닦는다. 손목을 꿰매면서 의사는 인턴들을 불렀다. 7명 정도의 인턴이 나를 둘러서 있다.

 

"이건 요즘 쓰는 신기술이야.“
의사가 말하며 바늘을 움직인다. 

피부가 찢어진 곳을 바늘로 꿰매는 기술. 기계 위에 올려진 망가진 사물이 된 느낌, 마취가 덜 됐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왜 나를 살리려고 하는가?' 그녀는 대답하겠지. '왜 죽으려고 하나요? 생명은 소중해요. 당연히 살려야죠. 저는 의사잖아요.' '그럼 왜 꼭 살아야 하나요? 생명은 소중하니까 살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녀의 생각 밑바닥에는 이런 정의가 있을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수술대 위에서 공중분해 되는 것 같다. 손목은 동강 난 것처럼 내 것이 아니다. 손목의 따끔거리는 감각은 쓰라린 마음을 마비시키지 못했다. 감각의 고통은 눈에 보이고, 꿰매고, 약을 바를 수 있어 좋겠구나. 손목 따위야, 손목 따위. 그러니까, 손목에게 너무도 친절한 병원. 덕분에 손목은 깨끗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지그재그 바느질은 탁월한 기술이다.

  

  

<나뭇잎>, 2013, 홍승희

  

  

 침대에 다시 누웠다. 간간히 환자들의 신음과 비명,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파서 우는 소리와 서러워서 우는 소리는 다르다. 의사의 건조한 목소리를 가로지르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위로로 다가왔다. 같은 설움을 토해내는 존재의 눈물. 울고 있는 그의 의미를 내 멋대로 판단해 위로로 먹어치우고 있다. 병원은 그의 울음소리 따위 언제나 존재하는 배경음악이라는 듯, 분주하기만 하다. 생과 사의 경계가 오가고, 핏물과 눈물이 여기저기 튀기고, 바쁜 발자국 소리와 건조한 목소리들이 오가는 곳. 병원, 병을 치료해주는 곳. 안 죽게 도와주는 곳, 죽지 못하게 하는 곳, 죽음만은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곳. 스스로 죽기로 선택한 생명들이 거쳐 가기도 하는 곳. 국가에서, 제도에서, 사회에서, 일터에서, 집에서, 일상에서 탈락된 최후의 몸뚱어리가 굴러 들어오는 곳.

  

 병원에서 소독된 나는 다시 삶의 현장으로 걸어가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누군가 챙겨온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눌렀던 명치가 욱신거린다. 건물의 조명, 가로수 불빛, 신호등 네온사인이 어둠 속에서 둥둥 떠 있다. 다른 세계에서 생뚱맞게 튀어나온 사람이 된 것 같다. 병원의 분주한 일상도, 차가운 바람이 쏘다니는 밤거리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들이 아프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의 그것과 너무 다른 온도라서 아프다. 일찍이 내 몸은 따뜻한 눈빛의 세계와 컨베이어 벨트 같은 세계에서 두 동강 났다. 영원히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왔다. 오래된 이질감이다. ‘ㄱㄴㄷ’을 모른다고 회초리를 들던 유치원에서 벗어나 엄마 품에 안기고 싶던 유년시절. 엄마는 너무 친절해. 친절한 세계를 알아버려서 내 몸은 두 동강이 난 채 살아왔다. 그 세계를 그리워하고, 다른 세계가 서러워서 계속 울고 분노하고 아팠다. 처음부터 따뜻한 세계를 몰랐다면 싸늘한 세계에서 건조하고 효율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도, 뭐라고 안심시킬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전히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가고, 이따금 아픈 손목을 꿰매고, 다시 누군가의 품에서 치유되고, 해가 뜨면 다시 컨베이어벨트는 움직인다.

  

 그 날, 그다음 날 나는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도 완전히 알 수 없다. 설움과 분노는 마구 뒤엉키고 범벅되어 탁한 초록색, 검붉은 색, 시뻘건 색으로 녹아갔다. 얼마간 나는 캔버스에 그것들을 몽땅 뱉어내고 난 후, 좀 더 한참 후에야 그 설움과 분노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생에 대한 허무 넘어 허무에 집중하게 만든 이 세계에 대한 분노, 나를 두 동강 낸 폭력적인 세계, 내가 가담해온 세계에 대한 명확한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구태여 자살을 감행할 필요도 없다'고 쓴 벤야민의 흔적을 더듬는다. 자살을 감행하려는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과제다. 끔찍한 디스토피아도 없고 화사한 유토피아도 없이,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하게' 이어지는 오늘, 이런저런 역할극을 한다. 열정에 간간히 불을 지피면서 물을 건넌다.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 최승자, <비극>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

[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최초입력 2017-09-13 11:47

최종수정 2017-09-13 11:48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가정을 지키기 위한 혐오

 

올여름 한동대에서 반동성애 특강이 열렸다. 마침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수백 명의 학생이 강의실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성애 바로 알기’ 특강을 기획하고 강의실 앞에서 출석 명단을 체크하던 사람들은 한동대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이하 아가청)’ 학생들이었다. 두 시간 내내 동성애는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다, 동성애 독재 시대가 온다는 혐오 발언이 퍼졌던 강연장 문틈에서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저는 드디어 동성애에서 벗어났어요. 감사하게도 그런 저를 받아주는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청혼했어요.” 강단에 선 탈동성애자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 대부분이 박수를 쳤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노골적인 혐오는 정상가족 예찬과 닿아있었다. 왜 학회 이름이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위한 혐오. 사랑을 위한 혐오. 도덕을 위한 혐오. 언뜻 입에 붙지 않는 조합이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연결이다. 이성애중심 가족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지 않은, 불결하고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손가락질받는다. 견고해 보이는 정상의 범주는 누군가를 낙인찍어야만 겨우 유지될 정도로 취약하기에.

  

 

불온한 가족은 불행한 가족일까

 

내 가족은 ‘아름다운 가정’이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혼했다. 나는 매일 밤 엄마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어릴 적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쩌면 엄마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닌, 가족 자체였던 걸까. 둘러앉아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일상은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볼 때, 끼니마다 냉장고를 뒤질 때, 아빠와 다툴 때면 눈에 띄지 않았던 엄마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범한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쉴 틈 없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엄마의 공백은 화목하다고 믿었던 가족의 이면을 비로소 인식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부모님의 이혼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엄마는 4평 남짓한 부엌과 오롯이 자신의 공간일 수 없었던 집을 벗어나 거리를 활보하며 방황했다. 전보다 불안정했지만, 나는 그 불안정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생긴 여백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에 대한 인식을 되묻게 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나로 살아갈 여유와 힘을 주었다.

 

 내 경험과 세상의 기준은 서서히 어긋났다. 엄마의 부재를 불행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아휴, 불쌍해서 어떡하니. 딸한테는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친척들의 말이, 엄마가 없기 때문에, 혹은 엄마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던 선생님과 친구들, 주위의 시선이 그랬다.

 

 정말 결혼과 가정은 아름답기만 할까? 주위의 ‘정상가족’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나는 의문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결혼식을 떠올리면 순백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꿈꿨다. 언제부턴가 나는 결혼을 떠올릴 때, 가정 폭력, 부부 강간, 3일에 한 번씩 일어나는 아내 살해,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불균형한 가사노동을 떠올리게 된다. 명절을 걱정하는 한숨소리. 내 주위를 둘러싼 신음소리는 견고한 가족신화 안에서 묻힌다. 어머니가 신성하다면 왜 아버지는 신성하게 생명을 돌보고, 따뜻한 밥을 짓고, 가사 노동과 감정 노동을 하지 않을까. 가족이 그렇게 아름답다면, 왜 나는 강연에 다닐 때마다 부모, 자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까. 평생 자기만 바라보며 산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면, 왜 어머니를 평생 가족 안에만 살도록 모두가 방관했을까.

 

 세상엔 또 얼마나 많은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지.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미혼모, 동성혼, 비혼 등의 관계는 단지 형태의 다양성일 뿐, 그 자체로 행복이나 불행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불행하다면 ‘정상’이 뚜렷한 사회의 병적인 차별 때문이다. ‘이성애 연애, 낭만적 결혼,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허접한 이상은 이처럼 많은 사람을 삭제하며 유지된다.

 

일러스트/ 조재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지난여름 인문학카페에서 페미니즘 그리기 모임을 진행할 때,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대부분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가족 모습을 그렸다. 단 한 사람만이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여성 세 명과 강아지와 원숭이를 그렸다.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닌가요. 당연한 듯 묻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가족의 모습이 혼인과 혈연으로 제한되어 있었다며 굳어진 인식을 돌아봤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상상은 단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하지 않을 자유를 가져야 하지만, 연애와 결혼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장애인에게는 이것 또한 인정받아야 할 권리이다. 주체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관계맺음이 이야기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는 존중 받아야 한다. 종과 섹슈얼리티, 관습 너머의 관계 맺음을 상상할 때, 다채로운 삶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을 때,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나는 비혼주의자다.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를 하고 있으며, 애인 두 명과 각각 동거하고 있다. 아직 동성을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정체성은 확실하게 구획되지 않고 흐르기에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나를 열어둔다. 성소수자인 J, 비혼주의자인 H와 L, 같은 폴리아모리스트 K와 T, J 그리고 내 애인 W, S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반려동물 달, 부엉이, 참새, 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가족이다. 어쩌면 나는 철저하게 불온한 연애와 가족 공동체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불온한 존재 그대로 남아, 그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아름다움이고 싶다.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기사 2017.09.11 22:28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최초입력 2017-09-11 22:28

최종입력 2017-09-11 22:47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로 사는 삶이 당연한 행복이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하는 *달란트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로 솜이 든 고무장갑을 산 적이 있다. 한 분기 동안 열심히 모은 달란트를 가지고 가판대 앞에 섰을 때, 엄마의 튼 손이 떠올랐다. 고무장갑을 사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참하고, 기특한 아이라며 ‘이제는 시집가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당시의 나는 요리와 내조를 잘하는 인내심 깊고, 순종적인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자랑스러워 했다. 나 또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가도 될 아이’라는 칭찬이 정말 좋았다.

 

 칭찬을 들은 이후로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일들을 찾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하는 법을 터득하고,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고, 요리하는 법을 하나씩 배웠다. 좋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꼼꼼하지 못했고, 과일 껍질을 깎는 일보다 뛰어노는 일이 즐거웠다. 인형보다는 팽이나 요요가 좋았다. 십자수나 바느질이 어렵고 힘들었고 발레보다 검도를 좋아했다. 치마보다 바지가, 분홍보다 파랑이나 녹색이 좋았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때마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생 때 피구보다는 축구가 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선크림 바르는 일이 귀찮았고, 땀 흘리는 일이 즐거웠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고치는 일이 낯설었다. 여성스럽지 못해 속상했다.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와 여성 사이

 

진로를 생각하면서 나와 ‘여성으로서 나’ 의 갈등은 최고조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봐왔던 언니들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기에 결혼하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위한 희생이 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만난 지인이 “너는 엄마 잘 할 것 같아. 칭찬이야”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삶인데 왜 당황스럽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내가 가진 차이는 성별 하나뿐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예견되고 확정됐다.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가 낯설고 불편해진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불쾌감은 당연히 따르던 여자의 삶에 대해, 또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지금까지 좇아오던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그동안 나는 왜 부끄러워야 했는지, 왜 여자는 자신의 꿈을 꾸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자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들이 버거웠고, 여성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던 불편함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었다. 처음 여성혐오를 접했을 때는 그저 여성을 혐오하는 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모든 차별과 멸시, 고정관념까지 통틀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혐오에 물든 사회와 싸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별에 반대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스러움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너 자신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가, 아내가, 엄마가 될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위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또한 고통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싸워야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성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특히나 평생을 몸담은 교회는 말씀으로 여성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고 단죄하며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다. 교회는 독립적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돕는 배필,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를 원한다.

 

 이미 여성혐오에 길들여진 나는 주어진 여성성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검열하는 데 익숙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렵다. 혼자서만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지만, 그를 표현하기는 두렵다. 혼자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슬퍼진다.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여성스럽지 못하게 여겨진다. 나는 자꾸만 드세고 불편한 여자아이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먼 사이가 된다. 섬세하지 못한 말들이 아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다.

 

 여성혐오를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남들을 지적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여성혐오가 들어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성혐오를 알아버린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혐오는 너무나도 만연하다. 숨 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혐오때문에 숨이 막힌다. 여성혐오는 우리의 일상에, 관념 속에 존재하고, 심지어 강의실에도 존재한다.

 

 

 

*달란트 시장: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보상으로 달란트 시장에서 화폐에 상응하는 달란트를 지급하고, 학생들은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와 교회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교환할 수 있다.

 

  

다음 기사 -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0) 2017.09.2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0) 2017.09.1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1) 2017.09.11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  (3) 2017.06.12
posted by 뉴담 Newdam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기사 2017.09.11 21:56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최초입력 2017-09-11 21:56

최종수정 2017-09-11 22:48



강의실 안 여성혐오

엄마라는 존재


17-1학기, 한동대 A 교수는 수업 중 한 여성이 남편의 폭력과 가난 때문에 아이들과 동반 자살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그 중심에 가보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냐면 저는 무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는 거예요. 또 하나 뭐냐면 오해하는 거예요. 뭐냐, 이 엄마는 엄마가 뭔지를 모른 거예요.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지 자식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 엄마는 모른 거예요”라며 “아빠가 때리는 거를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핵심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고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몸가짐을 조심히 해라”, “담배 피우지 마라” 등등 많은 걱정과 조언을 듣는다. 여성은 인생의 목표와 의미가 출산과 육아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에 따른 여성의 희생을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당연시하고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 이러한 모성애 숭배는 여성에게 족쇄가 된다. 절대적인 모성애가 강요되고, 엄마는 인간보다 앞선 속성이 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엄마’가 어색한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역할은 어떤 상황에서도 엄격한 잣대로 평가 받는다. 엄마의 사랑, 모성애는 절대적이야 하기 때문이다. A 교수의 발언 속에 고인의 남편과 가정폭력 소리에 무감했던 이웃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의 책임과 역할만 존재한다. 그녀의 마음은 우리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그렇게 한 여자의 서사는 엄마라는 이름 뒤로 사라진다.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영아 유기·살해사건은 엄마만 강조된다.

 

 

 이 같은 관점은 많은 언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아 유기∙살해사건이 일어난다. 기사들은 ‘비정한 엄마’, ‘친모’, ‘30대 女’를 비판하기 바쁘지만, 아버지에 대한 보도는 없다. 엄마가 아이를 버리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죽더라도 아이를 지켜야 할 엄마의 존재와 본분을 잊은 모정 없는 이기적인 엄마만이 존재한다. 영아 유기사건 현장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엄마만이 존재한다.

 

 위 발언은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이며, “아이들을 살리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처럼 여성을 자궁으로 치환하여 보는 관점은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게재했다.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 지도

 

 

 이 지도는 국내 지역별로 합계 출산율,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15세에서 49세 여성의 수를 공개하고, 지역별로 순위를 매겼다. 정부는 생물학적 성과 연령만으로 가임 여부를 판단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여성은 임신이 가능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으로, 숫자로 표현됐다. 개인의 지향이나 계획은 무시됐다. 가임기 지도에 인격체는 없었다. 생산 능력을 가진 자궁만이 존재했다.

 

 

여성혐오를 만난다면

 

누군가는 A 교수의 발언이 불편하지 않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A 교수의 발언이 당신이 겪고 있는, 겪어야 할 차별과 혐오를 담고 있지 않았거나, 그 차별과 혐오에 적응하고 당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말에서도 여성혐오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게 지나치던 여성혐오를 의식하는 일은 불편하다. 여성혐오는 옆에 앉아있는 팀원에게서, 내 가족에게서, 나에게서, 그리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한번 잡아내고자 마음을 먹으면 일상의 모든 언어와 싸워야 한다. 누군가는 여성혐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네가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삶이 편해진다. 말하는 일은 두렵고, ‘포용과 이해’라는 명분으로 참고 방관하는 일은 익숙하고 쉽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잘못보다는 지적한 사실 자체가 더 비난 받는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늘 그래왔다는 것, 몰랐다는 것으로 옹호된다.

 

 여성혐오를 하는 모든 사람이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여성혐오적 가치관을 학습 받은 일종의 피해자다. 여성혐오는 성별을 가려서 삶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는 남성들에게도 억압이 된다. “남자니까 ~ 해야지”, “남자답게 굴어” 라는 말로 개인의 감정과 자유를 억압한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내에서 ‘남성다울 것’, ‘여성다울 것’을 강요 받는 억압과 폭력의 희생자이다.

 

 

 

 

 

 여성혐오를 인정하는 일은 삶 전체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낯설고 아픈 과거를 대면하기보다는 잘못된 혐오를 옹호하고 감싸고 싶을 것이다.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를 지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혐오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해야 할 일은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를 멈추는 것이다.

 

 

이전 기사 -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0) 2017.09.2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0) 2017.09.1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1) 2017.09.11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  (3) 2017.06.12
posted by 뉴담 Newdam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①

최초입력 2017-06-12 10:55

최종수정 2017-06-12 11:12


 

 

한동대 휴학생 A씨. 그(녀)는 동성애자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 7살때부터 20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동성만을 사랑했다. 선택이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성에게 마음이 향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한동대에서 말하고 다니지 못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을 죄인이란 딱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던 A씨의 한동대 일상은 어땠을까.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제자, 누군가에겐 선배 또는 후배, 누군가에겐 룸메이트, 혹은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던 일상

 

Q 한동대에서 동성애에 관한 대화로 불편을 겪으셨던 적이 있나요?

 

어디에나 동성애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자신의 주변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괜히 혼자 속으로 땀을 흘렸어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연기’가 늘어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도망가고 싶은 기분일 거예요. 속으로 여러 다른 생각을 하며 침묵하게 될 것이고요. 지금의 저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표정관리’ 할 수 있게 됐어요.

 

Q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표정관리를 한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한동대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면 ‘생존’에 위협을 받아요. 특히, 한동대는 동성애가 죄라는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조심하게 돼요. 동성애자인 것을 들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저를 볼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무서워요. 제 이미지가 이전까지 아무리 좋았더라도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거죠. 기독교인이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낙인 찍잖아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들키는 순간 그 목소리가 저를 향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괜찮은 척 연기하고, 표정관리를 해요. 제가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면 정말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Q 동성애자로서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오래전 일이에요. 한동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동성애자들은 그 안에 귀신이 들어있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싶었죠.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결국, 제 이야기니까. 어차피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어떤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탄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어요. 실제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며 책자를 뿌리는 곳도 많잖아요. ‘식성’이니 ‘에이즈’니 하는 이야기로 이게 바로 동성애자들의 실체라며 뿌리는 책자들이요. 저랑은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뿌려진 혐오, 새겨진 낙인

 

Q 얼마 전 한동대에서 ‘동성애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열리고,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란 책자가 뿌려졌죠.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모든 동성애자도 다양해요. 그런데 극단적인 면만을 보고 모든 동성애자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탈동성애를 했다는 분이 동성애자의 삶을 폭로한다면서 동성애자의 문란한 삶을 이야기했죠. 왜 그 사람이 동성애자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저의 경우는 정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다를 게 없어요. 저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정말 오래 좋아하고 그 사람밖에 몰라요. 아무리 짧아도 최소 2년은 계속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싫어요.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동성애라고 하면 대부분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니까, 저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가진 적도 없어요.

 

Q ‘동성애자=에이즈’, ‘동성애자=문란한 성’이란 인식이 한동대에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성 간에도 사랑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죠. 성관계가 전부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라고 아무에게나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동성과 성관계를 하려고 난리가 난 것도 아니에요. 성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왜 동성애라고 하면 다 동성애 ‘행위’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부끄러워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손잡고 싶죠. 좀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어요. ‘동성 간의 결혼도 안 되는데, 이미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죄인데, 무슨 혼전순결이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래요.

 

Q 동성애자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을 것 같아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향해 타인들은 ‘동성애자’라고 부르잖아요. “쟤 동성애자야”, “쟤 게이야”, “쟤 레즈비언이야”, 이런 식으로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한 인간을 동성애로 규정짓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이름이나 다른 특징들보다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거죠.

 

Q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한동대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뭐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저는 우리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서 조금 위로가 됐어요. 저와 같은 분들도 그분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는 우울함과 고독함이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요,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나는 ‘누구누구다’라고 말하길 바라요.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부르지 말고. 예전의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고, 지금의 저에게도 계속하는 말입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같이 힘내요.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②

 

 

 “제겐 동성애와 기독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학교의 입장(이하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한동대 휴학생 A씨가 밝힌 소감이다. 동성애를 반기독교로 상정한 공지를 읽으며, 동성애자 A씨는 슬픔에 잠겼다.

 

 A씨는 기독교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A씨는 교회가 두려웠다.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A씨는 ‘동성애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족을 의식해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17년 5월 24일. A씨의 모교인 한동대는 그(녀)를 또다시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친구, 선생, 선배, 후배, 룸메이트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A씨는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온전한 존재로 디딜 공간이 한동대에는 없는 듯하다.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A씨는 동성애자로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오갔을까. A씨의 심경을 들어보자.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고 처음 받았던 느낌은?

 

처음 읽었을 땐 담담했어요. 교회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뻔하고 뻔한 내용. 기독교인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인에 동성애자는 포함이 안 되겠지만요. ‘죄는 죄라고 말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나름의 만족과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교의 사랑을 지켜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발표 내용도 정석 답변으로밖에 안 느껴져서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에요. 계속 씁쓸해요. 무슨 씁쓸함인가 생각해봤더니 ‘단절감’이에요. 공식 발표에서 말하는 ‘우리’에서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한동대 학생인데, 지극히 타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슬프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동성애를 원한 게 아니니까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어요. 저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처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지만 이미 저는 존재하고 있네요.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네요. 제가 제 의지로 선택한 것도 아니죠. 이성애자도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이성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예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동성애로부터 치유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요. 동성애가 정말 치유돼야 하고, 치유가 가능하다고 쳐봐도요. 인권 보호 측면에서 동성애를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말이 안 돼요.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인권 보호랑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죄인을 죄로부터 돌려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기독교 입장에서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이건 인권 보호보다는 치유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동성애 한동대 입장>에 등장하는 ‘치유’라는 단어 속에서 저는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동성애 치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치유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했을지 의문이네요. 제가 느끼기엔 그냥 저를 철저히 대상화시킨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정작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관심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까요? 동성애자에게 동성애는 죄라는 사실을 계속 권고해주면 치유가 되는 건가요?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작 치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건가 싶네요.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를 치유할 사람은 그들이 아님이 분명해요.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제 성향을 밝힐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동성애에 개방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 성향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운데.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제 성향을 밝힐 수 있겠어요. 누가 동성애자인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치유한다는 건지 의문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닌 상태에서 저의 성 정체성을 먼저 알았다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교회에는 가지도 않았겠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니까요.

 

 

‘나=동성애자’가 아닌, ‘나=나’

 

Q 역설적으로,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요?

 

저에게도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었죠. 제게 치유는 제 친구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을 때 일어났어요. 제가 제 정체성을 친구에게 고백했을 때요. 친구의 대답이 무서워서 숨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어떠한 당황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고 도망가지 말라’고 절 붙잡아줬어요. 그때의 친구 반응에 진짜 머리를 돌로 맞은 것 같았어요. 저에겐 성 정체성이 저의 정체성의 전부였는데. 친구의 반응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나=동성애자’가 아니라 ‘나는 동성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 나는 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가능했어요. 저의 성 정체성이 저의 전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과장이 아니라 그때 정말 구원받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동성애자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닫았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제 정체성을 밝히지 않더라도 저의 다른 특성들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인식이 가능해졌기에 ‘하나님은 그래도 날 사랑하실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지 싶어요.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Q 동성애를 ‘반대’하며 동시에 ‘치유’하자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서 참 부럽다, 운 좋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성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은 동성애를 빗겨나가 다수의 입장에 서게 된 운 좋은 사람들이죠. 동성애자가 아니어서 동성애에 대해 죄책감 없이, 쓰라림 없이, 마음껏 죄라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치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확실한 건 저와 같은 동성애자들을 교회로부터 밀려나게 할 것이란 사실이에요. 교회 안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가 동성애는 죄라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계속 죄책감을 주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면, 언제까지 교회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교회 밖 사람들이 저에게 더 열려 있고 친절하니, 저를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가 가야 할 곳은 교회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도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굳이 죄인이라고 낙인 찍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겪어야 하는 힘든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이를 발표한 사람들과 동성애자들 사이에 견고한 벽 하나를 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네요. 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려고 하는지.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0) 2017.09.2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0) 2017.09.11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1) 2017.09.11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  (3) 2017.06.12
posted by 뉴담 Newdam

총장 업무추진비, 누구와 썼을까?

 

최초입력 2017-06-01 20:28

최종수정 2017-06-01 20:28


 

한동대 장순흥 총장은 14년 2월 취임 이후부터 16년도까지 약 4천 8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이 업무추진비를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사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남아있는 기록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 방법을 정해놓은 지침은 없다. 교육부는 국립대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렸다.

 

한동대는 총장 업무추진비 사용 및 기록에 관한 규정이 없다.

 

 

‘외부’에 ‘식비’로 사용된 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란 단체의 장이 기관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등의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이는 비용을 말한다. 외부 손님을 위한 식사 대접부터 회의에 필요한 다과 구매까지, 그것이 공적 업무라면 업무추진비는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장 총장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장 총장은 △14년도 약 1천 890만 원 △15년도 약 1천 830만 원 △16년도 약 1천 80만 원의 업무추진비(총합 약 4천 800만 원)를 사용했다.

 

 총장은 업무추진비 대부분을 ‘외부’에 ‘식비’로 지출했다. 한동대 비서실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장 총장은 외부인사 접대비로 약 4천 400만원을 지출했다. 이는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1.2%에 해당한다. 나머지 8.8%(약 400만 원)는 내부에 사용했다. 교내 간부직원이나 교내 학생 및 동문 식사비로 약 400만 원을 지출했다. 지출 항목별로 살펴보면, 장 총장은 전체 업무추진비의 약 92.2%에 해당하는 4천 430만 원을 식비(다과 포함)로 지출했다. 나머지 7.8%(약 370만 원)는 교통비와 외부인사 선물 구매 등에 사용됐다.

 

 

명확하지 않은 목적과 대상

 

문제는 장 총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언제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업무추진비 집행현황>에는 업무추진비 사용의 목적과 대상이 명확히 쓰여 있지 않다. 일례로, 장 총장은 14년에 언론계 인사 식사 대접 및 포스텍(POSTECH) 행사찬조에 225만 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함께 식사한 이들의 소속과 명 수가 적혀있지 않으며, 어떤 목적으로 몇 회의 식사를 했는지도 명시돼 있지 않다. 15년도에는 ‘포항언론인클럽’에 4건의 식사 대접으로 124만 원의 업무추진비가 사용됐지만, 이 역시 목적이나 명 수는 적혀 있지 않다.

 

 총장이 업무추진비로 구매한 선물도 누구에게 갔는지 알 수 없다. 장 총장은 업무추진비로 △14년도 60만 원 △15년도 57만 원 △16년도 140만 원 가량의 선물을 구매했다. 선물 품목으로는 △커피 원두 △텀블러 △화장품 △차(tea) △건어물 등이 있다. 그러나 선물들이 향한 곳은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인사’라고 추측될 뿐, 누구에게 줬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상이 적혀있는 경우에도 “UN관계자”, “한동대 후원자” 등 포괄적으로 명시돼 있다.

 

 한편, 회비를 업무추진비로 납부한 사례도 있었다. 장 총장은 14년에 ‘국가조찬기도회비’ 납부 대금으로 업무추진비 5만 원을 사용했다. 이 경우 역시 업무추진비로 회비를 낸 이유나 목적은 명시돼 있지 않다.

 

 대학교육연구소(이하 대교연) 관계자는 허술하게 공개된 총장 업무추진비는 공개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업무추진비를 공개했을 때는 대학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비용에 썼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판별할 수 없다고 한다면 공개의 가치가 없는 거다.”

 

 

사립대학에 없는 업무추진비 지침

 

전국 사립대학은 일정 기준 없이 업무추진비를 사용 및 기록할 수 있다. 교육부가 전국 국립대학에 한해 총장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지시로 올해부터 전국 국립대학은 총장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목적과 상대방의 소속, 성명을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해당 지침에서 제외됐다. 이에 한동대도 총장 업무추진비의 사용과 기록에 관한 지침이 없는 것이다.

 

 대교연 관계자는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 규정을 지정하지 않는 교육부를 비판했다. “사립대학도 국립대학과 마찬가지로 공교육을 이행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다. 이에 (사립대학) 총장 업무추진비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사립대학이 반대하니, 교육부가 할 생각을 안 한다. 그렇기에 어떤 내용으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해야 하는지 기본적 틀도 없는 거다.”

 

 교육부는 사립대에 총장 업무추진비 지침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유선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관계자는 “저희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 유선으로 직접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검토 후 답변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Copyright 2017. 뉴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