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늦은 첫인사와 동시에 끝인사 드립니다. 뉴담은 올 하반기를 끝으로 언론사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재정난과 인력난이 그 이유입니다. 그간 뉴담은 10명 내외의 인원이 함께했습니다. 언론사를 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지만 구성원 개개인이 2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기사 취재와 작성, 일러스트와 지면 편집, 교열과 사진 촬영 등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임금이나 취재 지원은커녕 매주 회의를 위한 장소 대여금마저 사비로 각출해야 했습니다. 오로지 구성원들의 의지와 뜻으로 뉴담이 유지되어 온 셈입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나마 있던 인원도 각자의 사정으로 몇 남지 않게 됩니다. 후원과 지원사업으로 연명하던 재정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희는 이후의 뉴담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과 돈 없이 조직을 운영할 수 있을까, 내부의 충분한 숙고 없이 바른 정보를 알릴 수 있을까, 지금 인원으로도 버거운 일을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 등… 뿐만 아니라, 언론이란 이름에 요구되는 수많은 잣대와 조직운영을 위한 부수적 업무가 구성원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고민 끝에, 언론 조직으로서 뉴담은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뉴담은 ‘언론과 언론 아닌 것, 기자와 기자 아닌 것, 기사와 기사 아닌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알리는 게 언론이라는데, 사실은 무엇이며 객관은 무엇인지 쉬이 답 내릴 수 없었습니다. 혐오를 혐오라 말하고 차별을 차별이라 말해도 편향적이라는 비판과 학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던 중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객관인지를 정하는 기준 그 자체가 가장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로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실’과 ‘객관’은 이미 편향적인 단어였습니다.
 
 기독교 중심적 사고에 싸여 신앙이란 이름으로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곳에선 기울어진 정도가 더욱 심각했습니다. “동성애를 치유하자”고 말하는 학교 교목실, 퀴어신학 강연을 열지 못하도록 주최 측을 압박하는 학교 당국, 수업시간에 “아빠가 때리는 걸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라고 말하는 교수, 교내정보사이트에 반동성애 전단 유포 알바 모집공고를 올리는 교수와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는 학교 분위기, ‘반동성애 특강’을 여는 학생 단체, 특강에 참석하면 추가점수를 준다는 교과목, 성 소수자 인권을 외치는 대자보를 찢고도 처벌받지 않는 학생, 오히려 대자보를 쓴 학생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압박… 지난 1년만 돌이켜봐도 이처럼 수많은 혐오와 불의, 차별이 존재했습니다.
 
 이곳에서 뉴담은 지워지는 존재들과 함께 가는, 그래서 오히려 ‘편향적’인 언론이 되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사용해왔던 관념들을 거부하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결정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혐오와 불의, 폭력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 제보와 응원을 통해 뉴담과 함께 하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워지는 존재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언론사 활동을 중단하면서도 뉴담이란 이름으로, 이후의 뉴담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들을 고민했습니다.
 
 언론사로서 뉴담은 끝이지만,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뉴담은 계속 존재하겠습니다. 언론이란 이름, 기자라는 직함은 쓰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불의와 혐오에 대항하는 단체로 남겠습니다. 한동대를 중심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모으고 담겠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와 모습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모으고(아카이빙), 쓰고, 찍고, 외치는, 지속가능한 단체가 되겠습니다. 특히, 신앙이란 이름으로 혐오와 폭력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끈질기게 살아남겠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주기적 발행과 매주 진행하는 회의, 조직 운영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언론이란 이름에 요구되는 수많은 잣대를 제쳐놓고, 유연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지금까지 독립언론 뉴담을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석지민 편집국장 gmin@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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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 우종학 교수 인터뷰

최초입력 2017-12-06 15:05

최종수정 2017-12-06 15:07


 

 
올가을 한동대 안팎은 창조과학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도화선이었다. 박 전 후보자가 “지구의 나이는 신앙적 나이와 과학적 나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지구의 나이’를 둘러싼 논란이 촉발됐다. 창조과학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증폭됐다. 결국, 박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귀결됐으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동대와 창조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은 한국창조과학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교내 창조과학연구소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창조과학자로 알려진 이들을 초빙하여 특강을 주최했다. 2013년에는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가 한동대에서 이틀간 열리기도 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는 ‘지구의 나이’ 논란 이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창조과학에 날 선 비판을 이어왔다. 동시에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쪽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우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창조과학 논쟁과 한동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0월 28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 직업은 과학자, 정체성은 그리스도인
 
 
Q 최근 한국 사회가 창조과학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내 직업은 과학자이고,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입장에서 박성진 전 후보자를 보면 상당히 씁쓸하다. 일단 과학자로서 볼 때, *지구 6,000년 설은 너무나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박 전 후보자가 지구 6,000년 설을 주장하는 밑바탕엔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Q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첫 번째는 성서신학적인 비판이다. 성경은 수천 년 전에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권에서 쓰인 책이다. 그래서 성경책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없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하늘이 대기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해석이 들어가야 한다. 성경의 목적과 대상, 그리고 그 대상이 갖고 있었던 문화적인 양식이나 상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건 성서신학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거다.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과학 교과서처럼 믿고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성서신학자들이 비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과학의 **젊은 지구론은 성서신학자들에게 상당히 비판을 받는다.
 
두 번째는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성경으로 돌아가고, 근본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는 정신은 좋다. 문제는 너무 극단으로 간 거다. 본인들이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아니면 다 틀렸다’고 하는 굉장히 경직된 태도다. 독선은 용납하기 어렵다.
 
 
성경은 창조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Q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처럼 읽는 것 같다.
 
성경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이 들어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과정을 신학적 메시지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과학적 언어로 읽으면 절대 안 된다. 과학적 언어로 읽으면 문자적 표현 안에 하나님을 가두게 된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근본을 지킨다고 하면서 거꾸로 성경 텍스트를 약화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보겠다는 접근 자체가 신학적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
 
Q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과 성경은 양립할 수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과학을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이 진화론과 반대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경이 진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을 기술하지 않는다. 성경은 창조의 방법에 관심이 없다. 어느 정도 비유적인 표현들을 포함하여,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조의 역사를 담은 거다. 그 표현들을 구체적인 과학적 기술이라고 읽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성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방법을 알려주려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경에 안 나와 있으니까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했을 수는 없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다.
 
 

 
 
창조과학자들에게 제대로 된 비판 받아본 적 없다
 
 
Q 일각에서는 ‘성경을 부정한다’며 교수님을 비판한다.
 
인격 모독과 신앙에 대한 정죄 말고,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은 파이값도 못 맞힌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쓴 책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에서 무신론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모르는 거냐. 성경은 수학책도 아니고, 파이값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이런 비판은 말도 안 된다’라고 썼다. 그런데 창조과학자가 이를 두고 내가 ‘성경은 파이값도 못 맞힌다’고 말한 것처럼 썼다. 그리고 ‘우종학 교수는 성경을 상대화시키고 성경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건 글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그런 거다. 읽다가 오해해서 그랬든, 의도적으로 했든 이건 비판이 아니다. 인신공격이다. 창조과학 신봉자들이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닌다. 주기적으로 검색하는데 대부분 내용 파악을 못 하거나 왜곡하는 이야기들이다. 진화적 창조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비판하면 좋겠다.
 
 
창조과학은 한동대가 벗어나야 할 우물
 
 
Q 한동대에 강연하러 오실 생각은 없는가.
 
2015년에 총학생회에서 초청한 적이 있었다. 초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초청 행사는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지 물었더니, ‘총학생회 전체 회의를 했는데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이 있어서 취소하게 됐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학생은 ‘외부 압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학교의 압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취소했으면 더 큰 문제다. 학생들끼리 회의를 하다가 ‘우종학 교수를 초청하면 한동대에 위험할 수 있겠다’고 초청 행사를 취소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한동대는 대학이고, 대학은 학문의 성지다. 자유롭게 사상들을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바를 펼치고, 토론하고,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검토하는 곳이 대학이다.
 
 

 
 
Q 한동대에 ‘창조와 진화’라는 교과목이 있다. 창조과학 특강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는 일반 세상과 다르게 창조과학적인 관점을 가르친다’. 이게 문제다. 한동대 안에는 끈끈한 사제관계나 신앙적인 공동체와 같이 기독교적인 문화가 있다.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적인 문화에 노출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문화는 문화일 뿐이다. 가르치는 내용이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창조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과학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인문계 학생들은 과학 과목을 대학에서 보통 한 번 듣고 졸업한다. 대학에서 제대로 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창조와 진화’라는 수업과 창조과학자의 강의를 듣는 것은 불행인 데다 학교의 무책임이다. 한동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과학교육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도 비판적 사고를 한다.
 
Q 한동대 학생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넓게, 멀리 보면서 우물 안을 벗어날 생각을 해라. 우물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물 밖을 볼 생각을 하기 바란다.
 
 
*지구 6,000년 설: 창조과학의 대표적인 주장으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등장인물의 족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합산하여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지구론: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지구의 나이가 6,000-12,000년이고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허윤 기자 h12h13@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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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요즘의 저녁

최초입력 2017-12-04 22:48

최종수정 2017-12-04 22:48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저녁 6시가 되면 수업을 마친 지민이가 집에 온다. 손에는 저녁 장거리가 잔뜩이다. 어제는 내가 생리를 시작했으니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며 바지락과 미역을 사 왔다. 지민이 요리하는 동안 퇴근하는 우주에게 전화해서 지민이 밥하는 중이니까 빨리 오라고 보챈다. 우주는 지금 퇴근하고 들어가는 중이라며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퇴근하고 들어갈 때 된장찌개 냄새나는 그런 느낌인가?”라고 웃는다. 요리를 하지 않는 나와 둘이 지낼 때는 상상도 못 할 풍경이었으니까.
 
 우주가 도착할 때쯤, 저녁상에는 고소한 참치 바지락 미역국과 버섯전, 엄마가 싸준 깻잎 김치와 풋고추가 차려져 있다. 셋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눈다. 우주가 “음, 진짜 맛있어요. 역시 우리 메타아모르(폴리아모리에서 연인의 연인을 지칭하는 표현) 최고”라고 말하면 지민은 “아이고, 제가 해달님만 하겠어요”라며 웃는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에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 할 일을 한다. 지민은 한동대에서 독립언론사를 운영하는데, 요즘 학내 호모포비아들과 싸우느라 정신없다. 우주는 논문을 쓰느라 각종 통계 책을 탐구하며 노트북 앞에서 씨름한다. 나는 책장에서 집어 든 장편소설 ‘열외인종 잔혹사’를 펼쳤다.
 
 나처럼 생리를 시작한 강아지 달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겸 산책을 나갔다. 논문에 열중하는 우주는 놔두고 지민, 달이와 함께 집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불닭볶음면을 사 왔다. 밤 11시쯤 됐을 때, 슬슬 술 한 잔이 고파서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불닭볶음면으로 간단히 1차를 하고 다음은 우주의 요리시간. 우주는 모든 요리를 감으로 맛있게 뚝딱 만드는 능력이 있다. 지민이 찌개류를 비롯한 한식 전문가라면, 우주는 중국요리, 양식, 일식 등에 능하다. 어제는 간단하게 먹자며 양파에 계란과 튀김가루를 입혀 양파링을 만들어주었다.
 
 

일러스트 / 조재

 
 
 어느덧 셋이 함께하는 저녁이 일상이 됐다. 우주와 만난 지 4년, 지민과 1년. 처음 8개월은 셋이 함께하는 시간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해 셋 다 폴리아모리 관계가 처음이었기에 죄책감, 질투, 원망이 뒤섞여 서로를 절대 볼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우주와 내가 포항으로 이사 오고, 어색했던 셋의 첫 만남 이후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은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연애 초기에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며 치열하게 다투고 간격을 가늠하듯, 우리의 처음도 비슷했다. 슬프고 아프고 즐겁기도 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길고 지난한 시간이었다.
 
 우주와 지민은 내가 혹시 다른 애인을 만나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내 애인의 조건(요리를 잘해야 함, 술 잘 마셔야 함, 식성이 비슷해야 함, 젠더 감수성이 있어야 함, 운전을 잘 해야 함, 언어능력이 좋아야 함, 엉덩이가 가벼워야 함 등)을 열거한다. 내가 아프면 두 사람이 나를 간호해주고, 지민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주와 내가 머리를 모아 함께 전략을 짜고, 우주가 힘들면 지민과 함께 술 한 잔 함께 기울인다.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셋이 모여 축하하며 술 한잔한다. 세 사람 모두 포동포동 살찌는 이유.
 
 여전히 두 사람은 내 사소한 말 한마디, 시선 같은 것에 질투와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어쩌면 이 관계에서 자신의 슬픔을 공감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보다 서로라며, 내밀한 동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언젠가 우주가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승은이와 함께하는 미래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민이도 포함해서 생각하게 돼.”
 
 관계를 오픈한 뒤, 폴리아모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써야지 마음먹으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기록해야 할까. 두 사람이 사랑하는 일과 세 사람이 사랑하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며 내밀한 관계가 되는 의미는 뭘까. 사랑이 뭘까.
 
 우리의 관계는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로 불리지만,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 여느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질투와 존중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모노아모리(독점적 일대일연대)와의 뚜렷한 차이점이라면 갈등의 양상이 다른 것. 가끔 내가 우주를 지민으로, 지민을 우주로 잘못 부르거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에 누구와 보낼지 시간을 조정하며 애먹는 정도다. 그 과정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갈등이 크게 번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서로를 소유하고자 지키려고 애쓰는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쓴다. 소유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상대와 또 다른 상대를 존중하는 데 관심 기울이기.
 
 지민이가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을지 묻는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익숙해진 지금에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우리가 더 이상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폴리아모리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이 지나간 것일 뿐임을 안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저녁을 보낸다. 아슬아슬한 꿈같지만 단단한 관계 속에서.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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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이 될까?

기사/대학 2017.12.04 16:52

‘HIM’이 될까?

최초입력 2017-12-04 16:52

최종수정 2017-12-04 16:54


 

 
지진이 지나가고 한동대 총학생회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제23대 총학생회장단 단독 후보 ‘HIM’의 정회장후보 김광수(법 10, 이하 김)와 부회장후보 이지혜(국제어문 15, 이하 이)에게 다양한 사안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지난 3일 포항 양덕 포라(fora)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선거캠프 ▲인권 ▲교내 ▲역사 ▲정치로 사안을 나눠 질문했다.
 
 

제23대 총학생회장단 단독 후보 'HIM'

 
 
왜 당신이 총학생회장단이어야 하는가?
 

김: 왜 저여야 하냐는 질문에는 ‘저였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드리고 싶다. 한동의 원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싶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를 인간이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모른다고 확신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목실과 교수님, 선배님,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동대가 기독교 정체성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정회장후보의 비전에 공감했다. 그리고 한동대 10대 비전인 통일을 총학이 구체적으로 준비해 나가자는 비전에 공감했다. 1학년 때부터 한동대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했고 선배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총학으로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싶어 출마했다.
 
 
HIM을 둘러싼 논란들: 추천인 명단과 의결 무효화 시도
“충분하지 못했지만 설명했다”
“투표지를 숨기진 않았고 내지 않았다”

 

 
최근 SNS에서 추천인 논란이 있었다. 추천인 서명인지 모르고 서명했다가 명단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김: 저와 부회장후보가 같이 다니면서 서명을 받았다. 글을 올리신 분은 설명이 부족했다고 평가한 것 같다. 충분히 설명 드리지 못했던 점은 죄송하지만, 총학 서명이었다고는 분명하게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충분하지 못했지만 설명했고, 그 점에 있어서 글 쓴 분이 직접 누군지 말해주시면 좋겠다.
 
추천인 명단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다던데.
 

김: 두 명 있었다. 그런데 이미 추천인 명부를 제출한 다음이라 이미 출력된 한글판 공약집에서는 빼지 못했다.
 
출력 후에도 이름은 따로 지울 수 있다. 그런 노력은 했나?
 

김: 그런 조치는 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는 해봤나?
 

김: 하지 않았다.
 
정회장후보는 2015년 평의회 부의장 당시, 의결을 위해 모인 회의에서 투표지를 숨겨 의결 무효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왜 그랬는가?
 

김: 투표지를 숨기진 않았고 내지 않았다. 내지 않았다는 걸 밝혔기 때문에 숨긴 것은 아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당시 의결은 총학 집행부의 집행정지에 관한 의결이었고, 개인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투표지를 내지 않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절차가 중요하고 지켜야 할 건 분명하지만, 총학의 선거과정이 문제라면 지금 제가 투표지를 숨긴 것도 선거과정의 문제이므로 이 의결도 안 되는 것은 아닌가를 공감시키고 싶었다.
 
 

 

정회장후보 김광수

 
 
HIM의 인권감수성
“(혐오가)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한다”

 

 
지난 학기 *A교수는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한 입장과 대책은?
 

김: 교수님도 인정하셨듯, 발언 자체는 실책이라 판단한다. 우리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번과 같이 조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이 부분이 ‘여성혐오’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 분명히 실책성 발언이고 고인에 대한 실례가 될 순 있지만, 혐오까진 아닌 것 같다. 많은 문제에 혐오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게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엔 보통 더러운 것에 쓰는 단어였는데, 어느새 사람을 향해 쓰는 단어가 되어버린 현실이 좀 아쉽다.

 
이: 정회장후보 의견에 동의한다. 당시 여자로서 듣기 불편한 점이 있었다. 성교육 시간인데 교수님이 남자와 여자의 균형을 잡지 않고 여자에 대해서만 언급하셨다. 교수님께서 균형 있는 성교육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난 2일,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있었다.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생각은?
 

김: 문재인 정부의 답변을 듣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됐다. 대표적으로 미혼자보다 기혼자의 낙태가 많다는 통계에 놀랐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제가 알고 있는 성경적 근거와 지식으로는 생명에 인위적인 개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낙태 문제에 대해선 공부를 더 해보고 학내에서 토론의 장을 열고 싶다.

 
이: 생명을 존중하기에 낙태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이 강간을 당했을 때 같은 경우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회장 후보는 ‘동성결혼 허용 개헌반대 대학생청년연대’ 소속으로 알고 있다.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하는가?
 

김: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 가운데 법적인 처벌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동성애는 우리나라 법 제도 안에서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고 말한 것이다.
 
한동대에도 당연히 성 소수자가 있다. 이들에게 할 말이 있나?
 

김: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저희가 그들을 미워하거나 혐오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에게 맹세하고 말씀드리는 것은 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그분들을 혐오하는 순간 저희는 엄청난 잘못을 하는 거다. 저희는 감히 혐오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를 원하실지 모르겠지만, 누가 어떻게 계신지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저희가 더 가난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다.
 

이: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하지만 성 소수자 분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나 고통은 함께 겪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학내 장애인 수와 시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김: 지금 알고 있는 내용은 없다. 장애인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기 불편하다는 사실은 한동신문사 기사를 통해 본 적 있다. 오늘 이후로 실태를 파악하고 조사해서 학생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준비하겠다.
 
 
한동을 진단하다: 개선점과 회칙개정
현재 교목실 위상 다소 낮아, 방향성 제시 원해…
“학생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한동대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김: 한동대의 가장 큰 가치는 ‘하나님의 대학’이다. 하나님의 대학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원래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논의되기 어려운 현실이 한동대의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교목실의 역할이 원래 한동대에서 있어야 할 위상보다 조금 낮다고 평가한다. 신학의 종류가 다양하게 있고, 신앙의 스펙트럼도 넓은데 그것들이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것에 근거하고 있는지 학생들이 공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교목실에서 어떤 것이 복음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지 구별해주고 어떤 것이 한동대에 적합한지 방향을 알려주면 좋겠다.
 
5일, 회칙개정을 위한 학생총회가 열린다. 이번 개정안에서 잘된 점과 아쉬운 점은?
 

김: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 구조가 바뀌고 여러 위원회가 생긴다. 학생들이 실제 전학위원이 아닌 이상 이전과의 차이점을 알기가 어렵다. 임명직을 대폭 줄이고 선출직으로 구성된다고 했을 때, 학교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30명이라는 인원은 좀 많아 보인다. 회칙개정은 법의 영역이고 정해진 룰이기 때문에 저희는 그것을 따르는 입장이지 평가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학생대표 후보자로서 의견은 없는가?

 
김: 잘된 점이라면, 기존에 없었던 학부들이 전학대회 위원으로서 입장이 격상된 것과 RC협력회들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쉬운 점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부회장후보 이지혜

 
 
HIM의 역사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일성이다”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 총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김영길 총장님을 이야기하고 싶다. 총학생회장이 되어서 그분이 설립한 학교에서 하나님의 대학으로서의 가치를 더욱더 발전시키고 싶다.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김일성이다.
 

이: 대한민국 땅에 완전한 통일과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힘썼던 김구 선생님을 존경한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뉴데일리에 쓴 칼럼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희망을 이야기하는’ 좋은 인물로 평했다. 독재자들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헌법 개정은 독재자의 길로 이어질 수 있기에 위험하고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를 권위주의적 체제라는 조금 더 순화된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분들이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의 다른 면을 보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고, 6·25전쟁을 잘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 발전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로 인해 4·19혁명으로 하야하게 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리하게 유신 개헌을 해서 암살당했다. 독재를 했기 때문에 존경한 게 아니라 독재를 해서 존경심이 좀 덜해졌다.
 
 
HIM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지지하는 정치 세력은 없었으면 좋겠다”
“태극기 집회에만 간 적은 없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김: 학내에서 정치적인 논의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만, 지지하는 정치 세력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지하는 정치의 가치들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됐으면 좋겠고, 더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는 경우에는 우리가 하나 될 수 없고 지향점을 찾아낼 수 없다. 제가 헌법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조항은 헌법 3조다. 영토조항인데, 북한에 있는 2천 5백만의 우리 동포들이 헌법 3조로 인해 우리 국민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분들의 비참한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정당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다. 아직까지 그런 준비가 없는 것 같아서 기도하고 있다.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저도 없다.
 
정회장후보가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인가?
 

김: 태극기 집회에만 간 적은 없다. 촛불 집회에도 갔고 태극기 집회도 갔다. 그 안에서 무엇이 어떠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했다.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고 기로였기 때문에 같이 보고 싶었다. 촛불 집회에서 가수들 공연하는 것도 봤고 태극기 집회에서 군가 부르는 것도 봤다.
 
 
* A교수의 수업 중 여성혐오 발언: 지난 4월 한동대 A교수는 수업 중 “엄마는 자궁을 가진 존재로 자식을 낳는 존재지 자식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다”, “아빠가 때리는 거를 자기 혼자 다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살리는 게 엄마다”, “특별히 여자들이 귀찮다고 그러는(남편과 성관계를 맺지 않는) 거다”, “(이것은) 결론적으로는 그 남편이 다른 사람과 자기가 채우지 못한 성적 욕구를 다른 데 가서 채울 수밖에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도운 거다” 등의 발언을 했다. (참고: 한동대 교수, 여성혐오 발언 논란 http://newdam.com/33)
 
 
 
석지민 기자 gmin@newdam.com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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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의 자살일기] 나의 신앙 가피교

최초입력 2017-11-14 11:10

최종수정 2017-11-14 17:01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우울할 땐 어떻게 하세요?"
"그럴 땐 저보다 우울하고 허무해 하는 친구를 만나요."
강연이나 북 토크에 가면 종종 받는 질문과 늘 하는 대답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가피’다. 나보다 더 우울한 가피를 만나면 깊은 위로를 받는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
 
 가피는 스물 한 살이다. 7살 차이가 나지만 영혼의 나이는 880살 정도로 나보다 700년은 더 살아온 것 같은 친구다. 가피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지 않고 주역, 사주 명리 등 운명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출판, 점술을 양지화 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 가피가 17살, 내가 24살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지역에서 이런저런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활동을 할 때였다. 언니와 나도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기에 가피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2년 후 가피는 인문학카페 팀원들과 함께 활동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나도 이따금 만나던 가피와 서서히 가까워졌다. 평소의 가피는 웃음이 많고 거의 항상 즐거워 보였다. 그런 가피가 깊게 허무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말로만 듣던 가피의 절망을 처음 마주한 건 가피가 만든 노래를 들었을 때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이 있어
중력을 따라 추락
사과같이 달려있는 절망
그늘 밑에 앉아
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가피의 노래 '중력' 가사다.  가피의 옛날 예명은 허무다. 허무는 우울한 노래를 만들어 와서 우리들 앞에서 불러주곤 했다. 가피의 노래는 검은 구름, 보라색 우주 같다. 절망이 가피의 정직한 목소리와 만나 따뜻한 멜로디가 된다. 노래는 내게 편지처럼 다가왔다. '중력처럼 절망은 필연적이에요. 사과같이 달려있던 삶은 언젠가 떨어지고. 날개가 없어서 혹은 중력이 있어서 날지 못하는 절망, 진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만연한 거짓 앞에서 절망하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피의 노래를 녹음해 인도여행 내내 들으면서 다녔다. 조급한 희망 없이 절망을 노래하는 가피에게 따뜻한 위로와 유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보호부적>, 2017, 홍승희


 
 가피가 쓴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거 알아? 지옥엔 비명이 없다는 사실.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때론 그 자체로 구원이 되어버리니까." 내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고,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언니도 언니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길." 가피는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 언젠가 가피는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허니가 있으니까요. (한참 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까지 살 수 있나 궁금해서요." 작년, 임신중절수술 후 부모님 뒤로 숨었던 전 남자친구를 함께 만났을 때도 떠오른다. 가피는 그때 나에게 빙의한 듯 포크를 책상에 찌르며 그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때 나는 가피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깨끗해야 정직하게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정직하니까 따뜻하고 절망하고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살아야지,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아직 젊은데 앞날이 창창한 걸.', '좋아하는 일을 해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부정적인 생각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 기운 내서 열심히 해봐',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죽음, 자살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 정도면 자살 알레르기, 죽음 엄숙주의라 부를 만하다. 생의 역할극을 벗고 솔직하게 허무한 인생을 나누고 싶은데. 오랜 시간 손쉽게 돌아오는 진부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라는 말처럼, 나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고통의 경험도 있다. 이것을 '에셰크'라고 한다. 고통의 순간, 고통을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을 때, 공감 받지 못하고 그저 살라는 압박을 받을 때 사람들은 죽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고통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깊은 곳에 침잠해 있는 고독, 허무, 절망의 때를 누구와 나눌 수 없을 때 사람은 쉽게 시들어간다.
 
 

<함께실존>, 2014, 홍승희


 
 가피를 만나기 전까지 숨 막히는 허무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작은 나의 노트, 스케치북, 잠,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실존적 고독과 허무, 절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고 혼자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랫동안, 고요하고 치열하게 절망하는 가피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허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완전히 한몸이 되거나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불 꺼진 절망의 공간에서 더듬더듬 손을 잡을 수는 있다. 정말 놀란 것은 죽은 작가들의 흔적이나 보이지 않는 대중이 아니라 오늘 살아있는 '타자'와 고독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함께 방황하고 방랑하며 실존할 수 있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는 실존을 나누는 그 관계망이다.
 
 요즘 가피는 사주 명리, 주역 타로, 운명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며 지낸다. 나도 가피의 도움으로 알게 된 주역, 주역타로, 사주 명리를 공부하고 상담을 하고 있다. 여전히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요동치는 나와 달리, 가피는 허무의 끝까지 파고들어 간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가피도 말하지 못한 절망과 허무가 계속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나보다 정직하게 우울해할 존재가 있다는 마음에 든든해진다. 가피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가피가 계속 정직하게 우울하고 허무했으면 좋겠다. 나도 계속 정직할 수 있도록.
 
 
 
※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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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엄마는 무법자

최초입력 2017-11-02 19:26

최종수정 2017-11-02 20:16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승은아 너 정말 애인 두 명 만나?”
“응!”
“아이고…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렇지 말이 돼? 그러면 안 돼 승은아.”
“엄마, 폴리아모리는 별 게 아니야. 엄마 지금 애인 사랑하지?”
“응? 뭐 그렇지.”
“아빠는? 아빠는 안 사랑해? 아빠도 사랑하잖아. 다른 결이어서 그렇지.”
“응… 그런가?”
“그렇다니까. 언어를 몰라서 그랬지 엄마는 예전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어.”
“그래?”
“맞아. 아빠도 엄마가 다른 애인이 있는 거 알면서도 계속 엄마 사랑하잖아. 엄마도 그렇고. 이건 유별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일 수도 있어.”
“그런 게 있구나. 몰랐어.”
 
폴리아모리, 인공 임신중절, 성폭력과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누군가는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상심하겠느냐고 염려한다. 그런 염려는 적어도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금기를 누비는 무법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골 마을에서 4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전형적인 가부장 교육을 받아왔던 엄마는 외할머니의 신신당부대로 ‘처음 몸을 준’ 남자와 결혼했다.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 스무 살 되던 해였다. 그해 엄마는 나를 낳았고, 2년 뒤 동생을 낳았다. 군인이었던 아빠는 가부장의 전형이었다. 결혼 전 감미로운 팝송을 곁들여 김밥을 먹여주던 아빠의 모습은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 회식 자리에서 대대장이 엄마가 예쁘다고 칭찬했다는 이유로 병사들 앞에서 엄마의 뺨을 때린 일을 시작으로 엄마의 친구들은 다 별 볼 일 없다며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했다. 아빠의 말대로 모든 관계가 단절된 채 군인이었던 아빠를 따라 열 번 넘게 이사하면서 가족 안에서만 2~30대를 보낸 엄마.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눈에 밟힌다며 이틀 만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술에 눈을 떴다. 술은 엄마를 기존 세계로부터 이탈할 힘을 주었다. 그때부터 속에 있던 질문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내 인생은 뭐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그 무렵 엄마는 처음으로 다른 애인을 만났고, 아빠와 이혼했다. 이후에도 몇 명의 애인을 만나며 종종 나에게 보여주고, 연애 상담을 했다.
 
 이혼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쉽게 정을 떼지 못했다. 호모소셜 사회에서 자기 여자의 바람은 남성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경험이라고 하던가. 아빠에게 엄마의 외도는 사랑의 상처 이전에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주로 남성의 병으로 통용되는 알코올 중독이 엄마에게 있다는 것도 아빠의 부끄러움에 한몫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시선과 상관없이 아빠는 엄마를 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집착인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아빠의 방식은 서투르지만 적어도 전처럼 엄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빠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 맺고 있다. 각자의 애인을 만나면서도 서로를 떼어내지 못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나의 부모님. 칼로 자르듯 관계가 재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 아빠의 관계를 통해 배웠다. 세상 사람들은 ‘콩가루 집안’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만, 나에게는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일러스트 / 조재

 
 
“나는 엄마이고 싶지 않은데, 저희 아이들이 자꾸 저를 엄마라는 틀에 가둬요. 어떻게 하면 엄마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요?” 창원 여성 살림공동체에서 북토크를 할 때, 한 중년의 여성이 말했다. 항상 부모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던 청년 세대들만 만나왔는데, 자식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부모라니. 신선하고 반가운 질문이었다. 그만큼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글쎄요, 제가 어떻게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을까요….
 
 북 토크가 끝나고 오랫동안 그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내가 대답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인간으로 바라보기 위해 먼저 노력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틀을 벗어나서 마음껏 살았고, 나는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아무리 “너를 인간으로 존중해”라고 말해도 정작 자식이 자신의 뜻을 거스를 때 바닥이 드러나는 부모의 모습처럼, 내가 아무리 엄마를 인간으로 존중한다고 백번 말해도 말에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엄마가 가족을 이탈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축약하기에는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게서 엄마를 앗아간 게 아니라는 것을, 잠시 엄마였던 한 사람이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을 뿐이라는 것을.
 
 엄마는 아직까지 어릴 적 주입된 교육과 사회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해서 자주 나와 동생에게 미안해하고 자책한다. 우리의 청소년기를 든든하게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고 밖으로 다녀 미안하다는 엄마.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화장실에 들어가서 혼자 피우고 나오는 엄마.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인받으려는 엄마. 그러나 자유로운 엄마. 엄마는 ‘엄마’라는 호칭을 달고 있을 뿐, 나와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같다. 조금만 자신의 삶을 긍정했으면 하는 나의 오랜 친구.
 
 올여름, 애인들과 외할머니 집을 찾았다. 동생과 동생의 애인도 함께였다. 엄마는 모두를 반겨주었다. 애인들을 보더니 “승은이 너는 참 보는 눈 있다. 둘 다 개성 있어”라며 웃어 보였다. 외할머니가 누가 누구랑 짝이냐고 물어보셨는데, 엄마는 승희의 애인을 가리키곤 “승희 애인이야 엄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와 애인 둘을 가리키면서 “승은이 친구들이야. 모두 친구야, 친구”라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외할머니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 엄마의 대처에 함께 간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내조하는 엄마, 요리 잘하는 엄마, 몸짱 엄마, 불쌍한 엄마, 헌신하는 엄마 말고 알코올 중독 엄마, 담배 피우는 엄마, 폴리아모리스트 엄마, 잠수 타는 엄마, 욕망하는 엄마도 존재한다. 한 사람의 다양한 면만큼 엄마의 모습도 다양하지 않겠는가.
 
 집에 돌아오기 전 엄마가 내게 신발 한 켤레를 선물해줬다. 동생에게는 자신이 입고 있던 패딩을 줬다. 엄마는 우리를 보면 뭐든 다 벗어주려고 한다. 무법자인 나의 엄마는 꼭 헤어질 때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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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e③

분류없음 2017.10.30 17:12

Scale③

최초입력 2017-10-30 17:12

최종수정 2017-10-30 17:12


 

 

 

한동대학교 기숙사 행복관. 박스 여섯 개. 그 위에 놓여진 국화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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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e②

분류없음 2017.10.30 17:09

Scale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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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2017-10-30 17:08


 

 

 

 

한동대학교 효암채플 본관과 별관. 무지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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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e①

포토談 2017.10.30 17:05

Scale①

최초입력 2017-10-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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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 본관. God.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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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

[홍승희의 자살일기] 가사 없는 음악

최초입력 2017-10-25 15:51

최종수정 2017-10-25 15:53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스물네 살 여름이었다. 수면제 다량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전주에 가기 위해서다. 정동 성당, 왠지 죽는 장소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천국을 믿지 않지만, 성당 근처에서 죽으면 혹시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전주로 가는 동안에는 음악을 들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어야 한다. 멜로디가 내 생각을 따라오도록. 내가 가져온 짐은 핸드폰, 핸드폰 충전기, 일기장, 볼펜, 이어폰, 지갑이 전부다. 내일이면 없어질 것들이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해가 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정동 성당 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정동 성당에 도착했다. 밤에 보는 성당은 무겁고 습했다. 높은 성당 축은 뾰족하게 올라온 뿔 같다. 날씨가 싸늘해져서 옷을 여미고 성당 벤치에 누웠다. 가방을 열어 종이뭉치에 숨겨진 약과 슈퍼에서 산 청하 1병을 들었다. 한 알씩 먹을까 한꺼번에 먹을까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기도를 드리는데 ‘기독교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곳은 내가 죽을 자리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섰다. 어디든 안전하고 한적한 곳이 필요했다. 성당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걷다가 숙소를 발견했다. 숙소 벽에는 김지하 시인의 ‘새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새봄 3 - 김지하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시는 멜로디 없는 가사이지만 읽으면 음악이 느껴진다. 한참 시를 보다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주인은 쾌활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잡은 방은 따뜻했다. 가운데에 작은 정원이 있는 나무집이다.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노란 장판과 흰색 벽지, 아기자기한 화장실, 바닥에 깔린 푹신해 보이는 흰색 이불더미. 모든 것이 포근하다. 죽기에 안전한 공간은 따뜻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정한 주인이 마음에 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죽는 건 좀 미안하다. 자연 속에서, 바람 속에서 죽어가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천 위에 있는 다리를 걷다가 정자를 발견했다. 10평 이상의 커다란 정자에는 구석구석 사람들이 모여있다. 잘 곳이 없어서 거기서 자는 사람,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다. 사람이 많진 않으니 이곳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벗고 정자로 올라가 최대한 구석지면서도 의심받지 않을 만한 공간을 찾았다. 정자에 박힌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고 유서가 적힌 종이에 그림과 함께 낙서 비슷한 글을 끄적여 내렸다. 유서는 써놨지만 마지막으로 유서를 완성하고 싶었다.
 
 

<멜로디>, 2015, 홍승희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반복재생되었다. 따뜻한 자장가 같은 가사 없는 음악이다. 이제 약을 몇 개씩 집어 먹는다. 눈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무에 등을 바짝 기대니 몸은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 부는 여름밤, 나무에 기대앉아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마저 약을 집어 먹으려 하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아가씨, 이거 뭐에요?" 내가 죽는 약 먹은 걸 눈치챈 건가. 불안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뭐요?" "이거, 이 종이에 나무그림. 어 그림 참 희한하네~" 자세히 바라보니 아저씨의 얼굴이 빨갛다. 술 냄새도 난다. 이곳에서 장기 노숙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한참을 종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놀러 왔나? 여행?" 아저씨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불안해졌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눈감아버리면 이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 이런 식의 죽음은 싫다. 성추행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정도로 싫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엉금엉금 기다시피 정자를 빠져나왔다. 다리 힘이 풀리고 눈이 흐릿해 방향이 구분되지 않았다. 어떻게 숙소를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늦은 밤이라 아주 깜깜했을 텐데. 숙소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흰색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지고 온 청하 반병과 남은 약들이 검은 봉지에 담겨있다. 주섬주섬 약을 꺼내 먹고 눈을 감았다.
 
 눈이 떠졌다. 햇살이 쨍쨍하게 문지방을 비췄다. 여기가 어디지. 숙소인가. 나는 왜 안 죽은 거지. 갑자기 내 왼쪽 팔에 검은 벼룩이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주 많은 벼룩이 방바닥과 내 팔등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팔을 박박 긁으며 일어나려다가 다시 힘이 풀려 누웠다. 몸이 가늘고 심하게 떨렸다. 검은 벼룩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가 했다. 지금이 몇 시지, 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을 눌러봤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숙소 주인은 낮에 일을 하러 나간다고 알아서 체크아웃을 하라고 말했었다. 그럼 이 숙소에 아무도 없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약도 이제 없는데. 왜 이렇게 살아남은 거지, 눈물이 주룩 흘렀다. 살아남았으니 이대로 누워있다가는 피곤한 일만 있을 텐데 어떡하지. 이곳 주인을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핸드폰을 켜고 119에 전화했다. 119라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구급요청을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이상하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절실했다. 살게 되었는데, 살고 싶지 않지만 못 죽게 되었으니까 이곳을 나가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전화를 해서 겨우겨우 내 사정과 주소를 말했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나는 그들의 노동력에 의지해, 아니 그들의 시간을 빼앗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
 
 

<씨눈>, 2015, 홍승희


 
 응급실로 들어갔다. 환자들이 별로 없는지 병원 안은 조용했다. 이렇게 조용한 병원이 있었나.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채 눈을 떴다. 간호사의 손에는 청록색, 아니 회녹색의 커다랗고 긴 물병이 있다. 간호사가 물병을 나에게 건네면서 꼭 끝까지 다 마시라고 한다. 아무 감정 없이 물병을 집어 들었다. 회녹색의 물은 농도가 너무 진해서 콘크리트 진액 같다. 거칠고 따끔한 고체성 액체가 식도를 태우듯 몸 안으로 내려갔다. 생각이 느리게 찾아왔다. 이걸 왜 먹으라고 하는 거지. 수면제 때문에 독성 없애려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간호사가 내게 물병을 건네줄 때 독성을 없애는 약이라며 먹으라고 했던 것 같다. 너무 써서 중간에 먹는 걸 멈추고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나를 깨워 말을 걸었다.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고 내일이나 오늘 저녁에 퇴원하실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데리러 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요?" 친절한 말투에 놀랐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나를 사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가운에 새겨진 병원 이름이 들어왔다. 예수병원. 예수병원이라니. 따뜻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와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날 밤, 언니와 친구가 찾아왔다.
 
 언니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승희야 여기 예수병원이래.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네." 친구가 옆에서 따라 웃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어이없고 허무해서 웃겼다. 언니가 힘없는 나를 눈치 챘는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승희 수면제 먹었을 때 신고해준 사람이 있어서. 누가 해주신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내가 신고한 거라고 하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언니가 다시 물었다. "내가 했어." 대답하고 말았다. "응? 뭐가? 너가? 너가 신고를 했다고?" 언니가 친구와 한바탕 웃었다. 아. 이제 내 평생 놀림거리가 되겠구나 이것은.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몇 년 후 전주 숙소 벽에 그려져 있던 김지하 시인의 새봄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때 읽은 새봄은 새봄'3' 이었다. 새봄 8은 이후의 메아리다. 새겨울과 새봄을 오가면서 울리는 음악.
 
 
새봄 8 - 김지하
 
내 나이
몇인가 헤아려보니
 
지구에 생명 생긴 뒤 삼십오억살
우주가 폭발한 뒤 백오십억살
그전 그후 꿰뚫어 무궁살
 
아! 무궁
 
나는 끝없이 죽으며
죽지 않은 삶
 
두려움 없어라.
 
오늘
풀 한 포기 사랑하리라
나를 사랑하리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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