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의 자살일기] 나의 신앙 가피교

최초입력 2017-11-14 11:10

최종수정 2017-11-14 17:01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우울할 땐 어떻게 하세요?"
"그럴 땐 저보다 우울하고 허무해 하는 친구를 만나요."
강연이나 북 토크에 가면 종종 받는 질문과 늘 하는 대답이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가피’다. 나보다 더 우울한 가피를 만나면 깊은 위로를 받는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
 
 가피는 스물 한 살이다. 7살 차이가 나지만 영혼의 나이는 880살 정도로 나보다 700년은 더 살아온 것 같은 친구다. 가피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지 않고 주역, 사주 명리 등 운명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 출판, 점술을 양지화 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 가피가 17살, 내가 24살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지역에서 이런저런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활동을 할 때였다. 언니와 나도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기에 가피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2년 후 가피는 인문학카페 팀원들과 함께 활동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나도 이따금 만나던 가피와 서서히 가까워졌다. 평소의 가피는 웃음이 많고 거의 항상 즐거워 보였다. 그런 가피가 깊게 허무하고 절망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말로만 듣던 가피의 절망을 처음 마주한 건 가피가 만든 노래를 들었을 때였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이 있어
중력을 따라 추락
사과같이 달려있는 절망
그늘 밑에 앉아
너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
 

 
 가피의 노래 '중력' 가사다.  가피의 옛날 예명은 허무다. 허무는 우울한 노래를 만들어 와서 우리들 앞에서 불러주곤 했다. 가피의 노래는 검은 구름, 보라색 우주 같다. 절망이 가피의 정직한 목소리와 만나 따뜻한 멜로디가 된다. 노래는 내게 편지처럼 다가왔다. '중력처럼 절망은 필연적이에요. 사과같이 달려있던 삶은 언젠가 떨어지고. 날개가 없어서 혹은 중력이 있어서 날지 못하는 절망, 진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만연한 거짓 앞에서 절망하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피의 노래를 녹음해 인도여행 내내 들으면서 다녔다. 조급한 희망 없이 절망을 노래하는 가피에게 따뜻한 위로와 유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보호부적>, 2017, 홍승희


 
 가피가 쓴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거 알아? 지옥엔 비명이 없다는 사실.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때론 그 자체로 구원이 되어버리니까." 내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고, 넘어지기 위해 일어서고… 언니도 언니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길." 가피는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 언젠가 가피는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사는 강아지)허니가 있으니까요. (한참 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까지 살 수 있나 궁금해서요." 작년, 임신중절수술 후 부모님 뒤로 숨었던 전 남자친구를 함께 만났을 때도 떠오른다. 가피는 그때 나에게 빙의한 듯 포크를 책상에 찌르며 그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그때 나는 가피를 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깨끗해야 정직하게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정직하니까 따뜻하고 절망하고 분노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살아야지,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아직 젊은데 앞날이 창창한 걸.', '좋아하는 일을 해봐, 그럼 괜찮아질 거야.', '부정적인 생각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 기운 내서 열심히 해봐',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죽음, 자살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 정도면 자살 알레르기, 죽음 엄숙주의라 부를 만하다. 생의 역할극을 벗고 솔직하게 허무한 인생을 나누고 싶은데. 오랜 시간 손쉽게 돌아오는 진부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라는 말처럼, 나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고통의 경험도 있다. 이것을 '에셰크'라고 한다. 고통의 순간, 고통을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을 때, 공감 받지 못하고 그저 살라는 압박을 받을 때 사람들은 죽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고통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깊은 곳에 침잠해 있는 고독, 허무, 절망의 때를 누구와 나눌 수 없을 때 사람은 쉽게 시들어간다.
 
 

<함께실존>, 2014, 홍승희


 
 가피를 만나기 전까지 숨 막히는 허무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작은 나의 노트, 스케치북, 잠, 아니면 죽음뿐이었다. 실존적 고독과 허무, 절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고 혼자만 느끼는 것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오랫동안, 고요하고 치열하게 절망하는 가피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허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완전히 한몸이 되거나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불 꺼진 절망의 공간에서 더듬더듬 손을 잡을 수는 있다. 정말 놀란 것은 죽은 작가들의 흔적이나 보이지 않는 대중이 아니라 오늘 살아있는 '타자'와 고독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함께 방황하고 방랑하며 실존할 수 있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는 실존을 나누는 그 관계망이다.
 
 요즘 가피는 사주 명리, 주역 타로, 운명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며 지낸다. 나도 가피의 도움으로 알게 된 주역, 주역타로, 사주 명리를 공부하고 상담을 하고 있다. 여전히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요동치는 나와 달리, 가피는 허무의 끝까지 파고들어 간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가피도 말하지 못한 절망과 허무가 계속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나보다 정직하게 우울해할 존재가 있다는 마음에 든든해진다. 가피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가피가 계속 정직하게 우울하고 허무했으면 좋겠다. 나도 계속 정직할 수 있도록.
 
 
 
※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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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