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엄마는 무법자

최초입력 2017-11-02 19:26

최종수정 2017-11-02 20:16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승은아 너 정말 애인 두 명 만나?”
“응!”
“아이고…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렇지 말이 돼? 그러면 안 돼 승은아.”
“엄마, 폴리아모리는 별 게 아니야. 엄마 지금 애인 사랑하지?”
“응? 뭐 그렇지.”
“아빠는? 아빠는 안 사랑해? 아빠도 사랑하잖아. 다른 결이어서 그렇지.”
“응… 그런가?”
“그렇다니까. 언어를 몰라서 그랬지 엄마는 예전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어.”
“그래?”
“맞아. 아빠도 엄마가 다른 애인이 있는 거 알면서도 계속 엄마 사랑하잖아. 엄마도 그렇고. 이건 유별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일 수도 있어.”
“그런 게 있구나. 몰랐어.”
 
폴리아모리, 인공 임신중절, 성폭력과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누군가는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상심하겠느냐고 염려한다. 그런 염려는 적어도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미 나보다 더 많은 금기를 누비는 무법자이기 때문이다.
 
 엄마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골 마을에서 4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전형적인 가부장 교육을 받아왔던 엄마는 외할머니의 신신당부대로 ‘처음 몸을 준’ 남자와 결혼했다.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 스무 살 되던 해였다. 그해 엄마는 나를 낳았고, 2년 뒤 동생을 낳았다. 군인이었던 아빠는 가부장의 전형이었다. 결혼 전 감미로운 팝송을 곁들여 김밥을 먹여주던 아빠의 모습은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 회식 자리에서 대대장이 엄마가 예쁘다고 칭찬했다는 이유로 병사들 앞에서 엄마의 뺨을 때린 일을 시작으로 엄마의 친구들은 다 별 볼 일 없다며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했다. 아빠의 말대로 모든 관계가 단절된 채 군인이었던 아빠를 따라 열 번 넘게 이사하면서 가족 안에서만 2~30대를 보낸 엄마.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간 적도 있었지만, 우리가 눈에 밟힌다며 이틀 만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술에 눈을 떴다. 술은 엄마를 기존 세계로부터 이탈할 힘을 주었다. 그때부터 속에 있던 질문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내 인생은 뭐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그 무렵 엄마는 처음으로 다른 애인을 만났고, 아빠와 이혼했다. 이후에도 몇 명의 애인을 만나며 종종 나에게 보여주고, 연애 상담을 했다.
 
 이혼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쉽게 정을 떼지 못했다. 호모소셜 사회에서 자기 여자의 바람은 남성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경험이라고 하던가. 아빠에게 엄마의 외도는 사랑의 상처 이전에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주로 남성의 병으로 통용되는 알코올 중독이 엄마에게 있다는 것도 아빠의 부끄러움에 한몫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시선과 상관없이 아빠는 엄마를 향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집착인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아빠의 방식은 서투르지만 적어도 전처럼 엄마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빠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 맺고 있다. 각자의 애인을 만나면서도 서로를 떼어내지 못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나의 부모님. 칼로 자르듯 관계가 재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 아빠의 관계를 통해 배웠다. 세상 사람들은 ‘콩가루 집안’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만, 나에게는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일러스트 / 조재

 
 
“나는 엄마이고 싶지 않은데, 저희 아이들이 자꾸 저를 엄마라는 틀에 가둬요. 어떻게 하면 엄마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요?” 창원 여성 살림공동체에서 북토크를 할 때, 한 중년의 여성이 말했다. 항상 부모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던 청년 세대들만 만나왔는데, 자식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부모라니. 신선하고 반가운 질문이었다. 그만큼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글쎄요, 제가 어떻게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을까요….
 
 북 토크가 끝나고 오랫동안 그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내가 대답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인간으로 바라보기 위해 먼저 노력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틀을 벗어나서 마음껏 살았고, 나는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아무리 “너를 인간으로 존중해”라고 말해도 정작 자식이 자신의 뜻을 거스를 때 바닥이 드러나는 부모의 모습처럼, 내가 아무리 엄마를 인간으로 존중한다고 백번 말해도 말에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엄마가 가족을 이탈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이곳저곳을 누비며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축약하기에는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게서 엄마를 앗아간 게 아니라는 것을, 잠시 엄마였던 한 사람이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을 뿐이라는 것을.
 
 엄마는 아직까지 어릴 적 주입된 교육과 사회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해서 자주 나와 동생에게 미안해하고 자책한다. 우리의 청소년기를 든든하게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고 밖으로 다녀 미안하다는 엄마. 같이 담배를 피우자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화장실에 들어가서 혼자 피우고 나오는 엄마.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인받으려는 엄마. 그러나 자유로운 엄마. 엄마는 ‘엄마’라는 호칭을 달고 있을 뿐, 나와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같다. 조금만 자신의 삶을 긍정했으면 하는 나의 오랜 친구.
 
 올여름, 애인들과 외할머니 집을 찾았다. 동생과 동생의 애인도 함께였다. 엄마는 모두를 반겨주었다. 애인들을 보더니 “승은이 너는 참 보는 눈 있다. 둘 다 개성 있어”라며 웃어 보였다. 외할머니가 누가 누구랑 짝이냐고 물어보셨는데, 엄마는 승희의 애인을 가리키곤 “승희 애인이야 엄마”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와 애인 둘을 가리키면서 “승은이 친구들이야. 모두 친구야, 친구”라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외할머니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 엄마의 대처에 함께 간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내조하는 엄마, 요리 잘하는 엄마, 몸짱 엄마, 불쌍한 엄마, 헌신하는 엄마 말고 알코올 중독 엄마, 담배 피우는 엄마, 폴리아모리스트 엄마, 잠수 타는 엄마, 욕망하는 엄마도 존재한다. 한 사람의 다양한 면만큼 엄마의 모습도 다양하지 않겠는가.
 
 집에 돌아오기 전 엄마가 내게 신발 한 켤레를 선물해줬다. 동생에게는 자신이 입고 있던 패딩을 줬다. 엄마는 우리를 보면 뭐든 다 벗어주려고 한다. 무법자인 나의 엄마는 꼭 헤어질 때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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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