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의 자살일기] 가사 없는 음악

최초입력 2017-10-25 15:51

최종수정 2017-10-25 15:53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스물네 살 여름이었다. 수면제 다량을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전주에 가기 위해서다. 정동 성당, 왠지 죽는 장소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 천국을 믿지 않지만, 성당 근처에서 죽으면 혹시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전주로 가는 동안에는 음악을 들었다. 가사가 없는 음악이어야 한다. 멜로디가 내 생각을 따라오도록. 내가 가져온 짐은 핸드폰, 핸드폰 충전기, 일기장, 볼펜, 이어폰, 지갑이 전부다. 내일이면 없어질 것들이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해가 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정동 성당 가는 길을 물었다.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정동 성당에 도착했다. 밤에 보는 성당은 무겁고 습했다. 높은 성당 축은 뾰족하게 올라온 뿔 같다. 날씨가 싸늘해져서 옷을 여미고 성당 벤치에 누웠다. 가방을 열어 종이뭉치에 숨겨진 약과 슈퍼에서 산 청하 1병을 들었다. 한 알씩 먹을까 한꺼번에 먹을까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기도를 드리는데 ‘기독교는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이곳은 내가 죽을 자리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떡 일어섰다. 어디든 안전하고 한적한 곳이 필요했다. 성당을 등지고 이곳저곳을 걷다가 숙소를 발견했다. 숙소 벽에는 김지하 시인의 ‘새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새봄 3 - 김지하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시는 멜로디 없는 가사이지만 읽으면 음악이 느껴진다. 한참 시를 보다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주인은 쾌활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잡은 방은 따뜻했다. 가운데에 작은 정원이 있는 나무집이다.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노란 장판과 흰색 벽지, 아기자기한 화장실, 바닥에 깔린 푹신해 보이는 흰색 이불더미. 모든 것이 포근하다. 죽기에 안전한 공간은 따뜻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정한 주인이 마음에 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죽는 건 좀 미안하다. 자연 속에서, 바람 속에서 죽어가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천 위에 있는 다리를 걷다가 정자를 발견했다. 10평 이상의 커다란 정자에는 구석구석 사람들이 모여있다. 잘 곳이 없어서 거기서 자는 사람,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다. 사람이 많진 않으니 이곳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벗고 정자로 올라가 최대한 구석지면서도 의심받지 않을 만한 공간을 찾았다. 정자에 박힌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고 유서가 적힌 종이에 그림과 함께 낙서 비슷한 글을 끄적여 내렸다. 유서는 써놨지만 마지막으로 유서를 완성하고 싶었다.
 
 

<멜로디>, 2015, 홍승희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반복재생되었다. 따뜻한 자장가 같은 가사 없는 음악이다. 이제 약을 몇 개씩 집어 먹는다. 눈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무에 등을 바짝 기대니 몸은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 부는 여름밤, 나무에 기대앉아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마저 약을 집어 먹으려 하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아가씨, 이거 뭐에요?" 내가 죽는 약 먹은 걸 눈치챈 건가. 불안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뭐요?" "이거, 이 종이에 나무그림. 어 그림 참 희한하네~" 자세히 바라보니 아저씨의 얼굴이 빨갛다. 술 냄새도 난다. 이곳에서 장기 노숙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한참을 종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놀러 왔나? 여행?" 아저씨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질문했다. 불안해졌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눈감아버리면 이 아저씨가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 이런 식의 죽음은 싫다. 성추행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정도로 싫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 엉금엉금 기다시피 정자를 빠져나왔다. 다리 힘이 풀리고 눈이 흐릿해 방향이 구분되지 않았다. 어떻게 숙소를 찾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늦은 밤이라 아주 깜깜했을 텐데. 숙소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흰색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지고 온 청하 반병과 남은 약들이 검은 봉지에 담겨있다. 주섬주섬 약을 꺼내 먹고 눈을 감았다.
 
 눈이 떠졌다. 햇살이 쨍쨍하게 문지방을 비췄다. 여기가 어디지. 숙소인가. 나는 왜 안 죽은 거지. 갑자기 내 왼쪽 팔에 검은 벼룩이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주 많은 벼룩이 방바닥과 내 팔등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팔을 박박 긁으며 일어나려다가 다시 힘이 풀려 누웠다. 몸이 가늘고 심하게 떨렸다. 검은 벼룩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가 했다. 지금이 몇 시지, 겨우 팔을 뻗어 핸드폰을 눌러봤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숙소 주인은 낮에 일을 하러 나간다고 알아서 체크아웃을 하라고 말했었다. 그럼 이 숙소에 아무도 없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약도 이제 없는데. 왜 이렇게 살아남은 거지, 눈물이 주룩 흘렀다. 살아남았으니 이대로 누워있다가는 피곤한 일만 있을 텐데 어떡하지. 이곳 주인을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가 핸드폰을 켜고 119에 전화했다. 119라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이 살려달라고 구급요청을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이상하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절실했다. 살게 되었는데, 살고 싶지 않지만 못 죽게 되었으니까 이곳을 나가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전화를 해서 겨우겨우 내 사정과 주소를 말했다. 곧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나는 그들의 노동력에 의지해, 아니 그들의 시간을 빼앗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
 
 

<씨눈>, 2015, 홍승희


 
 응급실로 들어갔다. 환자들이 별로 없는지 병원 안은 조용했다. 이렇게 조용한 병원이 있었나.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 채 눈을 떴다. 간호사의 손에는 청록색, 아니 회녹색의 커다랗고 긴 물병이 있다. 간호사가 물병을 나에게 건네면서 꼭 끝까지 다 마시라고 한다. 아무 감정 없이 물병을 집어 들었다. 회녹색의 물은 농도가 너무 진해서 콘크리트 진액 같다. 거칠고 따끔한 고체성 액체가 식도를 태우듯 몸 안으로 내려갔다. 생각이 느리게 찾아왔다. 이걸 왜 먹으라고 하는 거지. 수면제 때문에 독성 없애려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간호사가 내게 물병을 건네줄 때 독성을 없애는 약이라며 먹으라고 했던 것 같다. 너무 써서 중간에 먹는 걸 멈추고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나를 깨워 말을 걸었다.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고 내일이나 오늘 저녁에 퇴원하실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데리러 와줄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요?" 친절한 말투에 놀랐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나를 사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는 느낌이 드는 사람.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가운에 새겨진 병원 이름이 들어왔다. 예수병원. 예수병원이라니. 따뜻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와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날 밤, 언니와 친구가 찾아왔다.
 
 언니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승희야 여기 예수병원이래.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네." 친구가 옆에서 따라 웃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어이없고 허무해서 웃겼다. 언니가 힘없는 나를 눈치 챘는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승희 수면제 먹었을 때 신고해준 사람이 있어서. 누가 해주신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 싫었다. 내가 신고한 거라고 하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언니가 다시 물었다. "내가 했어." 대답하고 말았다. "응? 뭐가? 너가? 너가 신고를 했다고?" 언니가 친구와 한바탕 웃었다. 아. 이제 내 평생 놀림거리가 되겠구나 이것은.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몇 년 후 전주 숙소 벽에 그려져 있던 김지하 시인의 새봄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때 읽은 새봄은 새봄'3' 이었다. 새봄 8은 이후의 메아리다. 새겨울과 새봄을 오가면서 울리는 음악.
 
 
새봄 8 - 김지하
 
내 나이
몇인가 헤아려보니
 
지구에 생명 생긴 뒤 삼십오억살
우주가 폭발한 뒤 백오십억살
그전 그후 꿰뚫어 무궁살
 
아! 무궁
 
나는 끝없이 죽으며
죽지 않은 삶
 
두려움 없어라.
 
오늘
풀 한 포기 사랑하리라
나를 사랑하리

 
 

 

 필자 홍승희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
지은 책으로 《붉은 선》, 공저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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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