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피임도 허락받아야 하나요?

 최초입력 2017-09-27 10:34

최종수정 2017-09-27 10:34


 
 
※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애인 S와 W도 마찬가지다. 결혼보다 동거가, 아이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삶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자연스레 다양한 피임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콘돔도 불안하게 느껴졌고, 경구피임약은 질염, 피부염,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정관수술. 정관수술은 여성의 난관피임수술에 비해 수술 과정이 간단하고 영구적이며 부작용이 덜하다. 몇 달 전부터 수술에 대해 알아보고 언제 받으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던 중, S가 먼저 수술을 하겠다고 나섰다. “나 내일 정관수술을 받을까 해. 어차피 앞으로 결혼할 마음도 없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으니까.”
 
 다음날 S와 함께 시내의 한 비뇨기과를 찾았다. 막상 수술을 받으려니 S는 떨린다고 했다. 단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전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상실감이 느껴진다고. 병원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파이팅을 외치고, 긴장하며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환자가 없어서 S는 금방 진료실로 들어갔고, 나는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상기된 얼굴의 S가 나를 깨워 나가자고 하더니 병원을 나서자마자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니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정관수술을 하겠다고 말하자,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비뇨기과 전문의는 다짜고짜 결혼은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S는 아이도 없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관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건 의사의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심이 어떤 거냐고 물으니, 미혼자에게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없애는 건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라며 그건 어느 병원에서도 비슷할 거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거냐고 묻자, 법적인 건 아니지만 의료윤리에 어긋난다는 말이 돌아왔다. 윤리가 무엇이냐고 따지자 그는 어쨌든 자기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덧붙여, 다른 곳에 가거든 결혼은 했다고 말하라며 팁도 알려주었다.
 
 당연히 수술을 받을 거로 생각하고 병원 앞에서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치고 들어갔던 우리는 멍해졌다. 부분마취를 한 뒤 10분 정도면 수술이 끝난다는데, 충분히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에 우리는 의료윤리가 무엇인지, 도덕이, 양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올라왔지만, 일단 근처의 비뇨기과를 알아봤다. 혹시 모르니 그곳에서는 병원에서 준 팁처럼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S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니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의사가 앉아있었다. 정관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의사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네.”
“두 분이 결혼한 사이이신가요?”
“네.”
“아이는 있으십니까?”
“아니요.”
“그런데 왜 수술하려고 하시죠?“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서요.”
“왜 그렇죠?”
“저희가 그러고 싶어서요.“
“아 그 유명한 딩크족인가 그런 건가요?“
 
 이 질문부터 대답하기 싫었다. 이어서 의사는 “두 분 초혼이시지요? 아이가 있어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요. 아이를 낳은 다음에 정관 수술했다가 나중에 딴소리 하는 분들도 있어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에요. 나중에 돈이 생기고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낳고 싶어질 수도 있어요. 사실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니니까요. 딩크족도 말로만 들어봤지… 의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니까요. 신념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는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생계형 비출산 부부로 생각했는지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갖고 싶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없는 아이를 죽이기까지 하며 수술을 말렸다. 의사는 아이를 낳는 게 정상적인 일이며,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숙고하라는 말을 열 번 이상 반복했다. 그가 물어본 ‘특별한 일’이 궁금했다. 만약 우리가 유전적 장애나 질환이 있다고 했다면 의사는 다르게 반응했을까. 의사가 S와 나를 어르고 설득하고 협박하는 사이 15분이 훌쩍 지났다. 우리가 끝까지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종이 한 장을 주며 “오랫동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그래도 하겠다면 서명해서 다음에 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의사에게 건네받은 ‘정관정제술 승낙서’에는 섹스를 ‘부부관계’ ‘부부생활’이라고 명시하고 있었고, 서약인의 서명란 옆에는 서약인 배우자의 서명란이 있었다. 그 전 비뇨기과에서 왜 거짓말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정관수술은 철저하게 아이가 있는 기혼자 위주의 수술이었다. 아이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정관수술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에서는 20, 30대 미혼여성이 영구피임수술(난관결찰술)을 받을 때 산부인과 의사와 갈등을 겪는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여성은 앞으로 임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의사는 미래의 배우자를 생각하라거나 아니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말한다. 기사 속 산부인과 의사의 반응은 내가 겪은 비뇨기과 의사와 무척 닮아있었다.
 

 

일러스트 / 조재

 

 
 기혼과 미혼에 대한 이중 잣대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겹쳐있다. 기혼 여성의 임신중절은 비교적 덜 비도덕적 일로 여겨지고, 심지어 국가가 종용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미혼여성의 임신중절은 법적, 도덕적 낙인이 따른다. S는 자기 몸의 통제권을 잃은 박탈감을 군대 이후 오랜만에 느낀다고 했다. 내가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에 나갈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듯싶다.
 
 의사들과 의도치 않은 갈등을 겪으며 기운이 쭉 빠졌다. 발걸음을 돌려 동생 승희의 집을 찾았다. 동생의 동거인 A도 몇 달 전 정관수술을 했기에 비슷한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A는 자신도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꾸 의사가 꼬치꼬치 물어봐서 “제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이제 속죄하면서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더는 죄를 짓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의사가 승낙해줬다고. 우리는 웃으며 그런 방법을 쓸 걸 그랬다고 말했지만, 그 방법이 통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거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A는 30대 후반이고 S는 20대 후반이다. 아마 둘의 나이는 번식과 부양 능력, 의사결정 능력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문득 정관수술을 받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스무 살 J가 떠올랐다. J가 병원에 간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거부당할 것이 뻔했다. 앞길이 창창하고, 아직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스무 살이기 때문에. 곧 정관수술을 받으러 갈 거라며 기대하던 J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의사가 말한 ‘딩크족’이 아니더라도 여러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은 많다. 주위에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아이가 없는 삶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사회가 납득할 만한 ‘특별한 이유’ 없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피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피임수술을 하겠다고 해도 말리고, 아이가 생기면 인공 임신중절수술도 불법이다. “아이를 낳으라”며 저출산 대책을 촉구하는 국가의 목소리는 의료와 법, 종교, 인식을 통해 개개인의 재생산권을 통제한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서로 비출산을 지향했기에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바로 수술을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다행히 테스트기의 이상이었고, 임신이 아니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와 그 애인에게 정관수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만약 받게 된다면 꼭 결혼했다고 거짓말해야 한다는 팁도 함께.
 
 임신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친구를 보며, 비뇨기과에서 생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여성을 예비 엄마로 점찍고, 여성에게 피임의 책임을 지우고, 임신중절을 선택하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이중 삼중의 구속에 다른 선택지가 있긴 한 걸까.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는 실재하는 걸까.
 
 
※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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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