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최초입력 2017-09-21 10:35

최종수정 2017-09-21 10:40


 
비기독교인은 ‘비기’, 기독교인은?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을 표방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 보니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를 가진 사람은 특이한, 혹은 소수의 존재가 된다. 이를 드러내는 단어가 ‘비기(비기독교인의 줄임말)’다. 한동대 밖에서는 듣기 어려운 이 단어는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정체성이 제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동대에서 그들은 ‘비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 마치 동등한 인간 이전에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으로 판단되고 규정되는 것처럼.

 
 ‘비기’라는 말은 한동대 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향한 기독교인의 일방적인 잣대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 신앙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된다. 16년 7월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대 대신전해드림에 익명으로 게시된 A 씨의 이야기는 한동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비기’)의 삶을 토로하고 있다. A 씨의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는 새내기OT(한스트) 기간 중 새내기에게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A 씨는 손을 들었고, 새섬은 그 자리에서 “비기네 비기”라며 A 씨를 규정했다. A 씨는 자신에게 ‘비기’라는 별칭이 붙은 것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비기’라는 독특한 그룹에 강제로 속해진 이후 한동대에서 시간은 좋지 못했다”라며 한동대에서 비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스트 이후에도 A 씨의 학교생활은 ‘비기’와 연결됐다. A 씨는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섬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A 씨가 비속어나 험한 말을 쓸 때면 새섬은 ‘비기’라는 말을 꼭 끼워 넣어 그를 몰아세웠다. 심지어 새섬은 A 씨에게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며 ‘비기’인 A 씨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와서 기독교에 대한 호감이 믿음으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동대에 온 첫날부터 ‘비기’로 불리며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라고 말했다. 고심 끝에 그는 반수를 결정했다. A 씨는 “기독교 대학에 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하루하루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그 나날들을 버리고자 다른 학교로 도망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A 씨는 한동대에 오자마자 ‘비기’라는 말에 갇히면서, 본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개종과 전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대상화
 

‘비기’라는 단어는 ‘대상화’의 일종이다. ‘대상화’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과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특정 목적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의미인 ‘인간의 대상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인간의 대상화’라 함은 인간을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과 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대상화는 상대방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에서 시작해 상대를 규정하고 통제하기까지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상대방을 특정한 의미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만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가사노동이 여성이 감당해야만 하는 역할이라고 규정하는 대상화의 대표적인 예다. 개별적인 여성을 ‘여자’라는 범주에 가두고, ‘여자’가 있어야만 하는 위치가 있다고 규정하는 발화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말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가로막는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개개인을 ‘성(性) 역할’이라는 범주 안에 가둔다. 쉽게 말해 대상화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사람은 ‘비기’라는 범주 안에 묶인다. ‘비기’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드러나는 두 대상 간의 경계는 명확하다.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기독교 신앙의 유무다. 한동대에서 다수인 기독교인은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의 경계를 단 하나의 단어로 구분 짓고 그들을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개인들의 특성은 쉽게 지워진다. 예컨대 ‘비기’로 묶인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동일하게 불린다. 설령 그들 중 하나가 불교를 믿다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더라도 표현은 바뀌지 않는다. ‘비기’란 애초에 기독교 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표현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은 한동대에 왔으면 기독교인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중심적 사고가 만연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편의대로 구성된 주장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B 씨(15 전산전자)는 ‘비기’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 때가 많다”라고 말한다. B 씨는 새섬이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 학기 목표”라고 말했을 때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라고 토로했다. B 씨도 A 씨와 마찬가지로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춰진 자신은 “선교의 대상, 전도의 대상,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불쌍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한동대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인식되고 곧바로 전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17년 새섬 지원서는 '비기독교인'과 음주/흡연/일탈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비기’라는 단어는 그저 서로를 편하게 부르기 위해 사용한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에게만 편의를 제공한다. B씨는 16년 12월에 새섬을 지원하려 했다. B 씨는 지원서의 질문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17년 새내기 섬김이 위원회(이하 새섬위)가 만든 열송학사 새섬 지원서 자기소개서 란에는 “만약 비기독교인 새내기가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과도한 음주 흡연 일탈 생활을 이어간다면 새섬으로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이 있다. ‘비기독교인’과 음주, 흡연을 하나로 묶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B 씨는 “저런 문항이 새섬 지원서에 있다는 것과 새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떻게 답변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속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교회 안 나가니까 거리낌 없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경향성을 일반화한 오류다.
 
 한동대 기독교인은 ‘비기’라는 단어를 기준으로 기독교인을 동질감을 느끼는 ‘우리’로 묶는 반면, 기독교를 종교로 두지 않은 한동대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끼는 ‘너희’로 구분한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C 씨(15 법)는 “(기독교인 친구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이 선을 못 넘으면(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방인이다. 그게 좀 서럽고 견디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우리’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그저 먼 이방인일 뿐이다.

 
 B 씨는 한동대 슬로건인 “Why not change the world?”가 “우리 같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가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와 ‘우리’라는 표현 안에 나는 속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비기’라는 단어는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동일한 정체성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비기’로 묶인 사람들의 선행은 “비기치곤 착하네”로 평가된다. 한편, 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비기라서 그래”로 낙인 찍는다. 한동대 기독교인에게 ‘비기’로 산정된 사람들의 삶은 동일한 정체성으로 일반화된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의 말로(末路)
 

기독교인이 아닌 한동대 학생 D 씨(15 콘융디)는 기독교인 룸메이트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독교인이 아닌 D 씨는 “돌아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는 기독교인에게 ‘비정상적’이며 ‘틀린’ 사람이었다. 대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다는 것이다. 대상을 명명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정상’혹은 ‘옳음’으로 여기고, 대상화되는 자를 ‘비정상’ 혹은 ‘그름’으로 여긴다. ‘비기독교인(非基督敎)’이란 단어에는 ‘아닐 비(非)’가 들어간다. ‘비기(非基)’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것(異)을 틀린 것(非)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대상화가 눈 녹듯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대상화는 진행되고 대상을 옥죈다.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처럼, 대상화는 은밀하고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라 물었던 A 씨의 새섬은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이 정도 감수하고 온 것이 아니냐”라는 말로 새내기를 강요했다. “‘비기’ 새내기를 전도시키는 것이 이번학기 목표”라 말했던 B 씨의 새섬은 ‘비기’를 전도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비기’를 향한 한동대 기독교인의 태도를 일면 보여준다.

 
 한동대 ‘비기’들이 겪는 불편함은 단순히 그들의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의 수많은 A, B, C 씨 그리고 D 씨는 여전히 대상화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 명백한 차별과 혐오로써 게이나 레즈비언, 장애인, 흑인 등의 단어를 누군가를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동대에서 ‘비기’라는 단어는 누군가를 옥죄는 단어가 되고 만다. 발화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기’의 정체성은 ‘비정상’으로 전락한다.

 
 대상화의 언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상화된 말로 ‘비기’라는 단어는 특정인을 ‘비정상(非正像)’으로 상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차별과 배제의 대상화 언어를 지양해야 한다. 언어를 바꾸며 일상의 습관을 고치는 노력은 대상화가 지닌 폭력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을 제멋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차별과 배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차별로 규정하는 대상화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선 각자의 진실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다.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고의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모든 유형의 행동과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늘 폭력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보다 기독교인이 훨씬 더 많다. : 15년 한동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채플에 앉아있는 당신에게’)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동대 학생 1,466명 중 90.8%(1331명)이 기독교인인 반면 비기독교인은 9.2%(135명)에 불과했다.

 
** 새내기 섬김이(이하 새섬): 한동대학교에 새로 입학한 신입생과 편입생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한 한동대 학생(2학년부터 지원 가능)을 일컫는다.  

 

 

하태현 기자 thappy@newdam.com
박다운 사진기자 wooniya@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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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