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의 불온한 아름다움]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최초입력 2017-09-13 11:47

최종수정 2017-09-13 11:48


 

 

2017년 하반기 <뉴담>은 정기 외부기고를 진행합니다. 올 하반기 함께 하는 분들은 작가 홍승은 씨와 홍승희 씨입니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가정을 지키기 위한 혐오

 

올여름 한동대에서 반동성애 특강이 열렸다. 마침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수백 명의 학생이 강의실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성애 바로 알기’ 특강을 기획하고 강의실 앞에서 출석 명단을 체크하던 사람들은 한동대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이하 아가청)’ 학생들이었다. 두 시간 내내 동성애는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다, 동성애 독재 시대가 온다는 혐오 발언이 퍼졌던 강연장 문틈에서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저는 드디어 동성애에서 벗어났어요. 감사하게도 그런 저를 받아주는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청혼했어요.” 강단에 선 탈동성애자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 대부분이 박수를 쳤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노골적인 혐오는 정상가족 예찬과 닿아있었다. 왜 학회 이름이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위한 혐오. 사랑을 위한 혐오. 도덕을 위한 혐오. 언뜻 입에 붙지 않는 조합이지만, 정상과 비정상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세계에서는 필연적인 연결이다. 이성애중심 가족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지 않은, 불결하고 더럽고 위험한 존재로 손가락질받는다. 견고해 보이는 정상의 범주는 누군가를 낙인찍어야만 겨우 유지될 정도로 취약하기에.

  

 

불온한 가족은 불행한 가족일까

 

내 가족은 ‘아름다운 가정’이 아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이혼했다. 나는 매일 밤 엄마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어릴 적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쩌면 엄마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닌, 가족 자체였던 걸까. 둘러앉아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일상은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볼 때, 끼니마다 냉장고를 뒤질 때, 아빠와 다툴 때면 눈에 띄지 않았던 엄마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범한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쉴 틈 없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엄마의 공백은 화목하다고 믿었던 가족의 이면을 비로소 인식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부모님의 이혼을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엄마는 4평 남짓한 부엌과 오롯이 자신의 공간일 수 없었던 집을 벗어나 거리를 활보하며 방황했다. 전보다 불안정했지만, 나는 그 불안정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생긴 여백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족에 대한 인식을 되묻게 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나로 살아갈 여유와 힘을 주었다.

 

 내 경험과 세상의 기준은 서서히 어긋났다. 엄마의 부재를 불행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졌다. “아휴, 불쌍해서 어떡하니. 딸한테는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라는 친척들의 말이, 엄마가 없기 때문에, 혹은 엄마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던 선생님과 친구들, 주위의 시선이 그랬다.

 

 정말 결혼과 가정은 아름답기만 할까? 주위의 ‘정상가족’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나는 의문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결혼식을 떠올리면 순백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꿈꿨다. 언제부턴가 나는 결혼을 떠올릴 때, 가정 폭력, 부부 강간, 3일에 한 번씩 일어나는 아내 살해,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불균형한 가사노동을 떠올리게 된다. 명절을 걱정하는 한숨소리. 내 주위를 둘러싼 신음소리는 견고한 가족신화 안에서 묻힌다. 어머니가 신성하다면 왜 아버지는 신성하게 생명을 돌보고, 따뜻한 밥을 짓고, 가사 노동과 감정 노동을 하지 않을까. 가족이 그렇게 아름답다면, 왜 나는 강연에 다닐 때마다 부모, 자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까. 평생 자기만 바라보며 산 엄마에게 미안해서라도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면, 왜 어머니를 평생 가족 안에만 살도록 모두가 방관했을까.

 

 세상엔 또 얼마나 많은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지.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미혼모, 동성혼, 비혼 등의 관계는 단지 형태의 다양성일 뿐, 그 자체로 행복이나 불행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불행하다면 ‘정상’이 뚜렷한 사회의 병적인 차별 때문이다. ‘이성애 연애, 낭만적 결혼,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허접한 이상은 이처럼 많은 사람을 삭제하며 유지된다.

 

일러스트/ 조재

 

 

 

나는 불온한 결혼과 가정을 꿈꾼다.
 

지난여름 인문학카페에서 페미니즘 그리기 모임을 진행할 때,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대부분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가족 모습을 그렸다. 단 한 사람만이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여성 세 명과 강아지와 원숭이를 그렸다.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닌가요. 당연한 듯 묻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한 가족의 모습이 혼인과 혈연으로 제한되어 있었다며 굳어진 인식을 돌아봤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상상은 단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하지 않을 자유를 가져야 하지만, 연애와 결혼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장애인에게는 이것 또한 인정받아야 할 권리이다. 주체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관계맺음이 이야기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는 존중 받아야 한다. 종과 섹슈얼리티, 관습 너머의 관계 맺음을 상상할 때, 다채로운 삶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을 때,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나는 비혼주의자다.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를 하고 있으며, 애인 두 명과 각각 동거하고 있다. 아직 동성을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정체성은 확실하게 구획되지 않고 흐르기에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나를 열어둔다. 성소수자인 J, 비혼주의자인 H와 L, 같은 폴리아모리스트 K와 T, J 그리고 내 애인 W, S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반려동물 달, 부엉이, 참새, 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가족이다. 어쩌면 나는 철저하게 불온한 연애와 가족 공동체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불온한 존재 그대로 남아, 그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아름다움이고 싶다.

 

 

 
 필자 홍승은
노래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여성혐오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몸에 깊이 밴 자기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숨지 않고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예술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찾는 일과 동물가족, 채식, 비혼 예술공동체에 관심 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공저로 《소녀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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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