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기사 2017.09.11 22:28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①

최초입력 2017-09-11 22:28

최종입력 2017-09-11 22:47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로 사는 삶이 당연한 행복이라고 배웠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하는 *달란트 시장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로 솜이 든 고무장갑을 산 적이 있다. 한 분기 동안 열심히 모은 달란트를 가지고 가판대 앞에 섰을 때, 엄마의 튼 손이 떠올랐다. 고무장갑을 사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참하고, 기특한 아이라며 ‘이제는 시집가도 되겠다’고 칭찬했다.
 

 당시의 나는 요리와 내조를 잘하는 인내심 깊고, 순종적인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좋은 엄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자랑스러워 했다. 나 또한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엄마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가도 될 아이’라는 칭찬이 정말 좋았다.

 

 칭찬을 들은 이후로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일들을 찾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청소하는 법을 터득하고, 과일을 예쁘게 깎아 내고, 요리하는 법을 하나씩 배웠다. 좋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꼼꼼하지 못했고, 과일 껍질을 깎는 일보다 뛰어노는 일이 즐거웠다. 인형보다는 팽이나 요요가 좋았다. 십자수나 바느질이 어렵고 힘들었고 발레보다 검도를 좋아했다. 치마보다 바지가, 분홍보다 파랑이나 녹색이 좋았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여성스럽지 못한 아이’였다. 성장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때마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생 때 피구보다는 축구가 하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선크림 바르는 일이 귀찮았고, 땀 흘리는 일이 즐거웠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고치는 일이 낯설었다. 여성스럽지 못해 속상했다.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내 모습은 ‘좋은 여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나와 여성 사이

 

진로를 생각하면서 나와 ‘여성으로서 나’ 의 갈등은 최고조가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봐왔던 언니들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기에 결혼하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위한 희생이 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대학에서 만난 지인이 “너는 엄마 잘 할 것 같아. 칭찬이야”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삶인데 왜 당황스럽고 불쾌한 마음이 드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내가 가진 차이는 성별 하나뿐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예견되고 확정됐다.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대화가 낯설고 불편해진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불쾌감은 당연히 따르던 여자의 삶에 대해, 또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지금까지 좇아오던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지, 그동안 나는 왜 부끄러워야 했는지, 왜 여자는 자신의 꿈을 꾸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자로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의무들이 버거웠고, 여성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괴로웠다.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던 불편함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었다. 처음 여성혐오를 접했을 때는 그저 여성을 혐오하는 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일로 이해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개념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모든 차별과 멸시, 고정관념까지 통틀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혐오에 물든 사회와 싸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별에 반대하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스러움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너 자신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여자라서’, ‘남자라서’라는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가, 아내가, 엄마가 될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위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또한 고통이다. 기존의 가치관과 싸워야 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여성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특히나 평생을 몸담은 교회는 말씀으로 여성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고 단죄하며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다. 교회는 독립적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돕는 배필, 순종하는 아내, 희생하는 엄마를 원한다.

 

 이미 여성혐오에 길들여진 나는 주어진 여성성의 틀에 맞추어 자신을 검열하는 데 익숙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렵다. 혼자서만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지만, 그를 표현하기는 두렵다. 혼자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슬퍼진다. 여성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은 여성스럽지 못하게 여겨진다. 나는 자꾸만 드세고 불편한 여자아이가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먼 사이가 된다. 섬세하지 못한 말들이 아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다.

 

 여성혐오를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그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남들을 지적하면서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여성혐오가 들어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여성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성혐오를 알아버린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혐오는 너무나도 만연하다. 숨 쉬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혐오때문에 숨이 막힌다. 여성혐오는 우리의 일상에, 관념 속에 존재하고, 심지어 강의실에도 존재한다.

 

 

 

*달란트 시장: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의 보상으로 달란트 시장에서 화폐에 상응하는 달란트를 지급하고, 학생들은 달란트 시장에서 달란트와 교회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교환할 수 있다.

 

  

다음 기사 - 불편함과 대면하는 일② 

 

 

유희애 기자 yhiae@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문수아 편집기자 jaydemoon@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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