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①

최초입력 2017-06-12 10:55

최종수정 2017-06-12 11:12


 

 

한동대 휴학생 A씨. 그(녀)는 동성애자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 7살때부터 20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동성만을 사랑했다. 선택이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성에게 마음이 향했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한동대에서 말하고 다니지 못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을 죄인이란 딱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을 숨기며 살아가야 했던 A씨의 한동대 일상은 어땠을까. 누군가에겐 친구, 누군가에겐 제자, 누군가에겐 선배 또는 후배, 누군가에겐 룸메이트, 혹은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던 일상

 

Q 한동대에서 동성애에 관한 대화로 불편을 겪으셨던 적이 있나요?

 

어디에나 동성애자가 있을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동성애자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해요. 자신의 주변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고 괜히 혼자 속으로 땀을 흘렸어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연기’가 늘어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정말 도망가고 싶은 기분일 거예요. 속으로 여러 다른 생각을 하며 침묵하게 될 것이고요. 지금의 저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표정관리’ 할 수 있게 됐어요.

 

Q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표정관리를 한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한동대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면 ‘생존’에 위협을 받아요. 특히, 한동대는 동성애가 죄라는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조심하게 돼요. 동성애자인 것을 들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저를 볼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무서워요. 제 이미지가 이전까지 아무리 좋았더라도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거죠. 기독교인이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낙인 찍잖아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들키는 순간 그 목소리가 저를 향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괜찮은 척 연기하고, 표정관리를 해요. 제가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면 정말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Q 동성애자로서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오래전 일이에요. 한동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동성애자들은 그 안에 귀신이 들어있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싶었죠.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결국, 제 이야기니까. 어차피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어떤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를 사탄의 하수인쯤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어요. 실제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며 책자를 뿌리는 곳도 많잖아요. ‘식성’이니 ‘에이즈’니 하는 이야기로 이게 바로 동성애자들의 실체라며 뿌리는 책자들이요. 저랑은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요.

 

 

"제가 동성애자인 걸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 뒤부터 친구한테 마음이 닫히더라고요."

 

 

뿌려진 혐오, 새겨진 낙인

 

Q 얼마 전 한동대에서 ‘동성애 바로알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열리고,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란 책자가 뿌려졌죠.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모든 동성애자도 다양해요. 그런데 극단적인 면만을 보고 모든 동성애자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탈동성애를 했다는 분이 동성애자의 삶을 폭로한다면서 동성애자의 문란한 삶을 이야기했죠. 왜 그 사람이 동성애자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저의 경우는 정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 다를 게 없어요. 저는 사람을 한번 좋아하면 정말 오래 좋아하고 그 사람밖에 몰라요. 아무리 짧아도 최소 2년은 계속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싫어요.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진 모르겠지만, 동성애라고 하면 대부분 행위에 관해 이야기하니까, 저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가진 적도 없어요.

 

Q ‘동성애자=에이즈’, ‘동성애자=문란한 성’이란 인식이 한동대에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성 간에도 사랑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죠. 성관계가 전부가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라고 아무에게나 마음이 가는 것도 아니고, 동성과 성관계를 하려고 난리가 난 것도 아니에요. 성관계와는 상관없이 그냥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왜 동성애라고 하면 다 동성애 ‘행위’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부끄러워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손잡고 싶죠. 좀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어요. ‘동성 간의 결혼도 안 되는데, 이미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죄인데, 무슨 혼전순결이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그래요.

 

Q 동성애자를 향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을 것 같아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향해 타인들은 ‘동성애자’라고 부르잖아요. “쟤 동성애자야”, “쟤 게이야”, “쟤 레즈비언이야”, 이런 식으로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한 인간을 동성애로 규정짓는 현상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이름이나 다른 특징들보다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거죠.

 

Q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한동대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뭐라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저는 우리의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서 조금 위로가 됐어요. 저와 같은 분들도 그분들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는 우울함과 고독함이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그런 분이 있다면요,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나는 ‘누구누구다’라고 말하길 바라요.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부르지 말고. 예전의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고, 지금의 저에게도 계속하는 말입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같이 힘내요.

 

 

 

한동대에서 동성애자로 살아남기②

 

 

 “제겐 동성애와 기독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동성애에 관한 한동대학교의 입장(이하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한동대 휴학생 A씨가 밝힌 소감이다. 동성애를 반기독교로 상정한 공지를 읽으며, 동성애자 A씨는 슬픔에 잠겼다.

 

 A씨는 기독교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A씨는 교회가 두려웠다.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A씨는 ‘동성애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설교를 들어야 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족을 의식해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그리고 17년 5월 24일. A씨의 모교인 한동대는 그(녀)를 또다시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친구, 선생, 선배, 후배, 룸메이트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A씨는 밖으로 밀려났다. 그(녀)가 온전한 존재로 디딜 공간이 한동대에는 없는 듯하다.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은 A씨는 동성애자로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오갔을까. A씨의 심경을 들어보자.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을 읽고 처음 받았던 느낌은?

 

처음 읽었을 땐 담담했어요. 교회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뻔하고 뻔한 내용. 기독교인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어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인에 동성애자는 포함이 안 되겠지만요. ‘죄는 죄라고 말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세상에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나름의 만족과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교의 사랑을 지켜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발표 내용도 정석 답변으로밖에 안 느껴져서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에요. 계속 씁쓸해요. 무슨 씁쓸함인가 생각해봤더니 ‘단절감’이에요. 공식 발표에서 말하는 ‘우리’에서 저는 철저하게 배제됐어요. 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한동대 학생인데, 지극히 타인이 된 느낌이었어요. 슬프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동성애를 원한 게 아니니까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역행하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성경을 보고 그렇게 말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근데 그렇다면 질문하고 싶어요. 저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스스로를 처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창조 질서에 어긋난다지만 이미 저는 존재하고 있네요.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네요. 제가 제 의지로 선택한 것도 아니죠. 이성애자도 성경의 가르침 때문에 이성을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예요.

 

Q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동성애로부터 치유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요. 동성애가 정말 치유돼야 하고, 치유가 가능하다고 쳐봐도요. 인권 보호 측면에서 동성애를 치유해야 한다는 의견은 말이 안 돼요.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인권 보호랑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죄인을 죄로부터 돌려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기독교 입장에서 말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이건 인권 보호보다는 치유에 방점이 찍혔다고 생각해요.

 확신할 수 있는 건, <동성애 한동대 입장>에 등장하는 ‘치유’라는 단어 속에서 저는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동성애 치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치유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했을지 의문이네요. 제가 느끼기엔 그냥 저를 철저히 대상화시킨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정작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관심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까요? 동성애자에게 동성애는 죄라는 사실을 계속 권고해주면 치유가 되는 건가요?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작 치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건가 싶네요.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를 치유할 사람은 그들이 아님이 분명해요.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제 성향을 밝힐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친한 친구이더라도, 동성애에 개방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제 성향을 밝히기가 조심스러운데.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제 성향을 밝힐 수 있겠어요. 누가 동성애자인지도 모를 텐데 어떻게 치유한다는 건지 의문이에요. 제가 기독교인이 아닌 상태에서 저의 성 정체성을 먼저 알았다면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교회에는 가지도 않았겠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니까요.

 

 

‘나=동성애자’가 아닌, ‘나=나’

 

Q 역설적으로,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고요?

 

저에게도 치유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었죠. 제게 치유는 제 친구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을 때 일어났어요. 제가 제 정체성을 친구에게 고백했을 때요. 친구의 대답이 무서워서 숨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어떠한 당황이나 망설임도 없이,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고 도망가지 말라’고 절 붙잡아줬어요. 그때의 친구 반응에 진짜 머리를 돌로 맞은 것 같았어요. 저에겐 성 정체성이 저의 정체성의 전부였는데. 친구의 반응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나=동성애자’가 아니라 ‘나는 동성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 나는 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가능했어요. 저의 성 정체성이 저의 전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과장이 아니라 그때 정말 구원받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동성애자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고,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닫았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제 정체성을 밝히지 않더라도 저의 다른 특성들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인식이 가능해졌기에 ‘하나님은 그래도 날 사랑하실 거야’라는 생각이 가능하지 싶어요.

 

 

"이것이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치유이지 싶어요. 나를 나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요."


 

Q 동성애를 ‘반대’하며 동시에 ‘치유’하자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서 참 부럽다, 운 좋은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성애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들은 동성애를 빗겨나가 다수의 입장에 서게 된 운 좋은 사람들이죠. 동성애자가 아니어서 동성애에 대해 죄책감 없이, 쓰라림 없이, 마음껏 죄라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치유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으셔서 부럽네요.

 확실한 건 저와 같은 동성애자들을 교회로부터 밀려나게 할 것이란 사실이에요. 교회 안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이미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가 동성애는 죄라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계속 죄책감을 주고,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면, 언제까지 교회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교회 밖 사람들이 저에게 더 열려 있고 친절하니, 저를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가 가야 할 곳은 교회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교회 밖에 있는 동성애자들도 충분히 힘들어요. 교회에서 굳이 죄인이라고 낙인 찍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겪어야 하는 힘든 감정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동성애 한동대 입장>은 이를 발표한 사람들과 동성애자들 사이에 견고한 벽 하나를 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네요. 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치유하려고 하는지.

 

 

 

박천수 기자 parkcs@newdam.com

김진서 편집기자 ginger@newdam.com

정광준 사진기자 kwang@newd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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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뉴담 Newdam